치명적인 결정
• 댓글 남기기지난주 금요일(22일) 모스크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대형 공연장에서 총격과 방화 사건이 발생해서 최초 133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경찰과 정보국은 현장에서 총격 용의자 4명을 포함해 11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즉각 이 사건이 우크라이나의 소행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범행의 용의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로 달아나다가 잡혔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테러 개입을 부인했고, 무엇보다 해외 정보기관들은 범인들이 전혀 다른 쪽에서 왔다고 분석했다. 바로 IS(이슬람국가, ISIS)다.
우선 텔레그램 등에서 습득된 정보에 따르면 러시아 경찰은 범인들이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에서 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IS가 과거에 출몰했던 지역이다. 게다가 IS의 분파인 IS-호라산(ISIS-K)이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달 초, 모스크바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여섯 개의 서방 국가 대사관, 영사관에서 모스크바에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극단주의자들이 콘서트를 비롯해 큰 규모의 모임을 표적으로 삼는 임박한 공격 계획을 세웠다는 보고를 받고 지켜보는 중"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정보였다고 한다. 미국은 적성국이라도 테러와 같은 중대 위협과 관련된 정보는 제공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무'에 따라 러시아 정부에도 이를 전달했다.
따라서 푸틴은 이런 경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자신에게 쏟아질 비판을 회피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런 정보를 받은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IS는 왜 러시아를 공격했을까? 가디언의 설명에 따르면 IS 호라산은 미국이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로 러시아에 집중해 왔다. 2015년, 파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무장 단체들이 결합해서 형성된 IS 호라산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꾸준히 테러를 저질러 왔다. 특히 이들은 미국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에 근거지를 만들었고, 이를 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알다시피 아프가니스탄에는 탈레반이 있다. 미국이 떠난 후에는 이들이 아예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IS 호라산은 자신들이 탈레반에 대항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샤리아법을 강력하게 집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할 뿐 아니라, 탈레반이 러시아와 관계를 호전하는 것에 반대한다. 2022년 수도 카불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자살폭탄테러를 일으켜 러시아 직원 두 명을 죽인 것도 IS 호라산이 벌인 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 이란과의 관계도 개선하려는 시도에 반대하지만, 특히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이 크다. 푸틴이 시리아 문제에 개입한 것도 IS 호라산의 분노를 샀다.
따라서 이번 테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무관하다. 중동 지역이 테러의 온상이 된 것은 이 지역의 과거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중동 정책
2015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생이자,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젭 부시(Jeb Bush)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2016년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던 때 일어난 일이다. 네바다주 리노시 타운홀 미팅에서 유권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젭 부시는 그 자리에 있던 대학생으로부터 느닷없이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다. "이라크의 군인이었던 3만 명이 갑자기 해고되어 직업도, 수입도 없는 처지에 놓였는데, 무기를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후보님의 형이 IS(이슬람국가)를 만들어낸 거 아닌가요?"
당시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는 IS가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고, 오바마의 임기 말년에 대선을 준비하던 젭 부시는 중동의 혼란이 2011년 12월에 미군을 철수한 오바마의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민주당 지지자로 밝혀진 이 대학생은 젭 부시의 그런 주장이 틀렸다고 반박한 것이다. "의미도 없는 전쟁을 벌인 후에 그 자리에 미군이 남아있지 않아서 IS가 생겨났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이 질문에 부시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하기 전만 해도 그 지역은 위험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IS를 만들어 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논란을 재점화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IS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불안은 실패한 미국의 중동 정책, 특히 조지 W. 부시 정권의 치명적인 실수가 만들어 낸 것이 맞다. 트럼프가 미국과 세계의 민주주의를 흔든 나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무모하고 의미 없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조지 W. 부시야말로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위의 대화가 오가던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말은 미국 정부가 중동 지역에서 실패했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모든 게 오바마 탓"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엄밀하게 말해 오바마가 중동에서 했던 잘못은 이전 정권이 망쳐놓은 중동 지역에 평화를 회복하지 못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부시 정권은 어떤 시도를, 왜 한 것일까? 당시 나온 복스의 기사가 이를 잘 설명한다.
조지 W. 부시는 중동 지역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다. 그 결과 이라크는 내전에 빠졌고, 이란은 힘을 키워 사우디아라비아와 경쟁을 시작했고, 그 결과 중동 지역 전역이 테러와 혼란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2010년 '아랍의 봄'이 중동을 휩쓸며 각국의 정부가 무너졌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부정적이었다. 부시의 새로운 중동 비전도, 냉전 시절 미국의 중동 정책도 이 문제를 해결할 답을 주지 못했다.
20세기 중후반 미국은 미국에 호의적이라면 독재자라도 상관없이 지지하는 정책을 유지했다. 이 전략은 적어도 냉전 중에는 주효했고, 미국은 소련의 확장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냉전이 끝난 후에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중동의 석유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미국은 상황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미국이 그동안 유지하던 중동 정책은 테러를 일으키는 지하디즘(jihadism,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투쟁)을 낳았고,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게 부시 정권의 평가였다. 이들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중동'을 건설하는 첫걸음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부시가 2003년에 일으킨 이라크 전쟁은 그렇게 중동의 정세를 바꾸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부시의 판단은 이랬다. '중동 지역에 독재자들을 그대로 놔뒀더니 그들의 압제하에 있는 사람들이 지하디즘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이들을 제거하고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으면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정책이 모든 국가에 적용되지는 않았다. 중동의 석유 부자이자 부시 가문과 가까웠던 사우디 왕조는 중동의 여느 국가와 다름없는 독재국가였고, 심지어 테러리즘을 직접적으로 지원했음도 밝혀졌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9/11을 총지휘한 오사마 빈라덴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미국은 눈감아준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아주 편리한 선택이었다. 침공의 진짜 이유가 뭐였든, 부시는 이라크를 중동을 대표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사담 후세인을 끌어내리고 민주주의 정부를 설립하면 이라크를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퍼져나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었고, 전쟁 이전보다 더 폭력적인 무장 단체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훨씬 더 나빠졌다. 미국의 20세기식 중동 정책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민주주의 어젠다' 조차 실패했으니, 사실상 중동 정책 자체가 실종된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부시에게서 물려받은 게 이런 실패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치명적인 결정
부시 정권에서 사실상 대통령이었다고 하는 딕 체니(Dick Cheney) 부통령이 이라크 침공 직전에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해방자로 환영을 받을 것이다." 체니의 이 발언은 2022년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환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정복(正服)을 챙겨갔다는 얘기를 연상하게 하는 강대국의 오만한 발상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뉴요커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고 해서 반드시 이 지역이 무법천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다. 미국은 침공 후 19일 만에 사담 후세인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며칠 만에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군을 해산하기로 결정한다. "그 결정으로 3만 명의 군인이 직업을 잃었다"는 그 대학생의 말은 틀렸다. 이라크군의 해산으로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은 군인은 25만 명에 달한다. 부시의 결정은 이들에게 직업과 소득을 잃는 모욕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내린 최악의 결정이었다.
이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훗날 그때의 결정이 불가피했다고 변명했다. 이라크군은 이미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뉴요커 기자가 당시 미군의 지휘관들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이라크군의 사단급 지휘관들이 미군을 찾아와 협조를 약속하며 지시를 내려달라고 했다. 일선에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미군 지휘관들은 이라크군이 해산되어서는 안 된다며 백악관의 결정에 반대했다. 직업을 잃은 젊은 남자들이 미국에 반대해 총을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이라크군을 해산했다. 그리고 미군 지휘관들의 예상대로 전직 이라크 군인들은 무장세력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훗날 이 지역을 휩쓰는 IS의 기초가 되었다.
뉴요커의 기사는 이런 상황이 단순하게 전개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IS는 미군이 철수하기 전에는 세력이 줄어들고 있었고, 나중에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그렇게 강력해진 IS가 다시 이라크로 돌아와 전직 이라크 군인들을 흡수하는 과정이 있었다. 부시의 결정이 이라크의 반군 세력들을 키워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조지 부시가 IS를 만들어냈다"라고는 주장할 수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반군 세력에 힘을 실어준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좀 더 노력했더라면 IS의 성장을 저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분명한 명분, 혹은 근거 없이 (여기에 관해서는 오터레터의 '전문가'를 참고) 이라크를 침공해서 무너뜨린 후에는 중동 지역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고, 이라크군의 해산은 사태의 악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에는 중요한 경험이고 교훈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의 사람들, 그리고 세계가 치르고 있다. 그 끝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모스크바의 콘서트홀이었지만, 다음은 어디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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