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 년이 되어가는 일이지만,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해 크게 당황했다. 2008년에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미국이 확고한 진보를 이룩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미국이 탈 인종주의(post-racial) 시대에 접어들었고, 다시는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잘 알다시피 이 믿음은 8년 후 산산조각 났다.

특히 진보적인 미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2008년에 오바마에게 표를 주었던 사람들이 2016년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의 임기 중에 특별한 실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의료보험을 저소득층—많은 경우 트럼프 지지층—에 확대하는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이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건 충격이었다. 미국은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 4년을 보냈다. 대부분 경제적 원인, 특히 백인들의 경제적 소외에 초점을 맞췄고, 분명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지만, 유권자들이 사회가 이룬 진보적 성취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된 심리 자체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이를 잘 설명한 건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었다. 그가 저술을 잠시 중단하고 팟캐스트에만 집중하면서 내놓은 'Revisionist History'(수정주의 역사)의 첫 에피소드는 사회가 구조적인 변화 없이 상징적인 진보에 머무르는 사례를 이야기한다. 글래드웰이 사용한 예가 180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보낸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톰슨(Elizabeth Thompson)이다. '레이디 버틀러'(Lady Butler)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화가는 당시 남성 화가들만 그렸던 역사화 등의 주제에 도전해서 평론가의 찬사는 물론,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