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포인트
• 댓글 남기기지난 토요일 블룸버그 뉴스가 미국의 신차 시장(new car sales)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5%를 넘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특정 트렌드가 폭발적으로 유행해서 대중화되는 지점)를 통과한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는 더 빨라서 2021년에 이미 8%에 근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0년에 3.9%였던 전기차의 신차 시장 점유율이 1년 만에 두 배가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중국이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전기차 666만 대 중에 절반이 중국에서 팔렸다. 이렇게 전기차가 빠르게 확산되는 중국과 달리, 전기차의 바람을 몰고 온 주역인 테슬라의 나라 미국에서는 확산이 빠르지 않았다. 왜일까?
우선 아무래도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 전기차의 확산에 유리하다. 가령 자동차 당 평균 이동거리가 짧은 유럽에서는 주행거리 불안(range anxiety)이 판매에 큰 장애가 되지 않지만 미국은 다르다. 충전소망에 묶이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많은 미국에서 테슬라는 꽤 오랫동안 진보적인 부자들의 과시소비 수단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고가로 팔릴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잘 알았던 테슬라가 고성능을 강조한 고급차 시장에 먼저 진입해서 인기를 얻고 차근차근 가격을 낮춘 대중화된 모델을 선보인다는 전략을 추진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2022년에도 여전히 고급차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전기차는 유지비가 적게 들어간다고 알려져 있지만 테슬라를 사는 사람은 유지비를 걱정하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전기차의 완전한 대중화는 "전기차가 더 싸기 때문에" 전기차를 사는 시점에 완성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싸다"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신차의 가격이 싼 것과 유지비가 싼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유지비는 내연기관(ICE)* 차량에 비해 저렴할 수 있어도 구매 가격이 높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고 돈을 절약하려면 오래 유지해야 한다.
요새는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을 줄여서 ICE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과거에는 모든 차량이 이런 방식이었기 때문에 ICE라는 표현을 보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EV가 아닌 차를 ICE 차량, 혹은 그냥 ICE라고 부르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디지털시계가 나온 후 전통적인 바늘 시계를 아날로그시계라고 부르게 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베인앤컴퍼니에서 2019년에 발표한 자료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한다. 소수의 얼리어답터를 제외하면 ICE 차량에서 전기차로 옮기는 그룹은 두 그룹으로 분명하게 나뉜다. 하나는 상업용 구매자(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 구매자다.
위의 표에서 가운데를 보면 2018~2022년까지 전기차로 전환하는 동력은 rational switching, 즉 합리적 판단에 의한 전환이다. 이런 전환을 하는 주체는 대개 상업용으로 많은 차량들(fleet)을 운행하는 기업들이다. 전기차는 연료비만 절약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엔진오일 교체와 같은 정비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들기 때문에 당장 신차를 구매할 때는 비싸도 장기간 유지하는 과정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이 분명하다면 투자의 개념으로 사는 게 합리적이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에서 돌아다니는 우버(Uber), 리프트(Lyft) 차량 중에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다. 전기차만큼은 아니어도 일반 ICE에 비해 좀 더 비싼 차량이지만 휘발유값에 따라 매일매일의 수익이 영향을 받는다면 하이브리드로 운영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표의 오른쪽을 보면 2022년을 지나면서는 budget switching, 즉 저렴한 가격 때문에 전기차로 이동하는 시기가 온다. 2018~2022년까지는 전기차가 유지비는 적어도 구매비용은 높았다면, 2022년을 통과하면서 구매비용도 낮아지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블룸버그 뉴스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차가 본격적인 대중화의 단계로 넘어가는 이 시점, 즉 티핑포인트는 바로 신차 시장 점유율 5%다.
물론 이미 많은 나라들이 이를 넘어섰고, 여기에는 전기차 점유율 6.5%인 한국도 포함된다. (한국이 5%를 넘어선 시점은 작년 2분기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빠른 전기차 전환국가인 노르웨이는 2013년에 이를 통과했고 현재는 무려 83.5%에 달하고, 초대형 자동차 시장인 중국의 경우 2018년에 티핑포인트를 통과해 현재 16.7%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왜 5%일까? 블룸버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 TV, 인터넷, 모바일 폰, LED 전구처럼 새로운 기술의 대중화 과정을 보면 대부분 S-커브를 따른다. 초기에는 아주 느리게 증가하다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주류가 되는 지점이 있고, 전기차 보급에서 이를 통과한 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5%가 되는 지점이 바로 티핑포인트로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통과한 19번째 국가다.
블룸버그 기사는 대중의 구매 패턴뿐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서도 티핑포인트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제조사들의 경우, 유럽시장에서 팔리는 자사 모델 중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10%를 넘은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30% 선을 넘기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은 인류가 최소한 자동차에서 화석연료를 졸업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좋은 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장 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가 완전하게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거리에서 전기차가 예전에 비해 눈에 더 많이 띄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구매할 생각을 해보면 다르다. 요즘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의 "저렴한" 대안으로 떠오른 현대의 아이오닉5나 폭스바겐의 ID.4의 가격은 4만 달러(약 5천 200만 원)에서 시작한다. 이는 미국에서 중산층 승용차의 대명사인 토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 현대 쏘나타에 비해 1만 5,000 달러나 비싼 가격이다. (좀 더 정확한 자료에 따르면 약 22% 더 비싸다고 한다). 럭셔리 승용차 가격대라고는 하기 힘들어도 위에서 언급한 베인앤컴퍼니의 자료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기차가 구매 가격도 싸기 때문에" 전환할 만큼의 가격대는 아직 아니다.
이유가 뭘까? 전기차가 ICE보다 비싼 이유는 리튬이온 배터리라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팩의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80% 가량 감소했다. 그런데 왜 전기차의 가격은 여전히 비싸게 느껴질까?
팬데믹과 함께 시작되어 여전히 전 세계 제조기업들을 괴롭히고 있는 공급망(supply chain)의 문제가 크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까지 겹쳐서 자동차 가격은 내려올 줄 모른다. 하지만 쿼츠의 기사 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한다. "미국에는 여전히 높은 가격의 고급 전기차를 사려는 돈 많은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테슬라와 리비안(Rivian)처럼 10만 달러가 쉽게 넘는 차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제조사들이 굳이 생산라인을 수익률이 고급차보다 낮은 대중용 차량에 할애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 시장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블룸버그 뉴스가 말하는 "전기차 대중화의 티핑포인트 5%"를 넘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베인앤컴퍼니가 말하는 budget switching이 일어나는 단계에 확실하게 진입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즉, 숫자로는 기대했던 티핑포인트는 넘었지만 대량 전환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조건이 갖춰지지는 않은 림보(limbo, 불확실한 상태)에 빠져있는 셈이다. 중산층이 좋아하는 일본차업체들이 전기차 생산에 늦은 것도 중요한 이유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유 가격이 치솟고 있는 상황은 신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ICE에서 전기차로 돌리게 하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중산층이 아직 충분히 떨어지지 않고 있는 전기차 가격과 계속 오르는 휘발유 가격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에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