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구 제조기업 존 디어가 하는 행동이 바로 빅테크 플랫폼이 하는 것이다. 소비자와 그들이 구매한 제품 사이에 개입해 조건을 모호하게 해서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트위들링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트위들링은 비즈니스의 룰을 갑자기, 멋대로 바꾸는 일이다. 이런 트위들링을 규제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플랫폼이 나빠지는 데 이바지한 세 가지 요소는 경쟁의 부재, 디지털은 다르다는 생각, 그리고 컴퓨터가 가진 보편성(universality)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다.

1. 경쟁의 부재를 보자.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테크 기업들이 경쟁기업들을 인수하게 허용했고, 약탈적인 가격 설정을 하는 것을 방치했고, 미국의 독점금지법을 위반하게 내버려 뒀다. 이유는? 레이건 대통령이 그 법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바이든이 집권할 때까지 모든 대통령이 레이건의 태도를 이어받았다. 그러니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2. 기업들이 룰을 멋대로 변경하면서 트위들링을 해도 디지털은 다르다는 생각으로 내버려 두었다. 사용자의 경험을 마음대로 바꿔도, 데이터를 마음대로 가져가도, 그리고 그 외에도 사용자에게 손해가 되는 방법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이를 제지할 법이 없다.

3. 우리는 튜링 완전성에 기반한 컴퓨터의 보편성을 활용하지 못한다. (미국) 의회가 테크 기업들이 트위들링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막지 못했다면 사용자가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플랫폼의 트위들링을 허용하지 않도록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플랫폼이 정보를 가져가려고 해도 내 컴퓨터가 거부하도록 우리가 직접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유럽연합은 개인정보 보호법(GDPR)을 만들어 웹사이트가 쿠키를 함부로 수집하지 못하도록 했고, 애플의 경우 앱이 사용자의 정보를 허락 없이 수집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를 통해 모두가 혜택을 보게 되었지만, 저자(닥터로우)는 그걸 기업이나 의회가 안 하면 기기를 소유한 사용자가 직접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옮긴이

플랫폼 기업들이 경쟁의 부재와 디지털 예외주의를 통해 사용자들을 자기 플랫폼 안에 몰아넣었다면, 컴퓨터의 보편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용자들이 플랫폼을 떠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플랫폼을 떠나는 순간,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를 떠나고 자기가 온라인에서 쌓은 역사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소피의 선택

사용자가 플랫폼 밖에서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파워벤처스(Power Ventures) 같은 회사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다른 플랫폼의 로그인을 하나의 인박스(inbox)로 모으고, 거기에서 메시지를 보내면 링크드인이나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각 플랫폼이 사용자를 추적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아주 훌륭한 도구였지만 페이스북은 파워벤처스의 서비스가 컴퓨터 사기 및 남용 행위법(Computer Fraud and Abuse Act)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말하자면 사용자들에게 소피의 선택을 하게 한 거다. 플랫폼은 사용자가 자기 개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해서 플랫폼을 떠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그가 속한 커뮤니티를 버려야 한다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피의 선택이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는 룰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개인정보 보호법이나 유럽연합의 GDPR 같은 법을 만들어서 "플랫폼이 사용자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사용자가 요구할 경우 플랫폼은 그 정보를 줘야 한다"고 규정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플랫폼들이 새로운 기술 표준을 따르게 만들고, 그 표준 아래에서는 사용자가 플랫폼을 떠나도 팔로워들을 데려갈 수 있고, 자기가 팔로우하던 사람을 계속 팔로우할 수 있게 하는 거다.

훌륭한 선례, 팟캐스트

요약하자면, 플랫폼을 사용하는 경험이 점점 나빠지는 현재의 추세를 되돌리려면, 온라인 광고가 우리의 일상과 개인정보를 추적하는 대신 과거처럼 우리가 온라인에서 접하는 콘텐츠의 맥락에 의존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호운용성을 법제화하고, 책부터 트랙터까지, 우리가 구매한 것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보장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셜 플랫폼에서 탈퇴하는 것은 그 플랫폼에 가입하는 것만큼 쉽고 간편해야 한다.

이런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압력을 행사해야 하지만 불가능한 게 아니다. 원래 우리는 그런 온라인 세상을 살고 있었다,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들에게 커뮤니티를 만들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의 발언권을 보장하고, 악당이 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던져버리기 전까지는. 하지만 현재 플랫폼의 관행이 지속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에 저항하는 성공적인 기술 표준이 없었을까?

있다. 거대 테크 플랫폼의 인쉬티피케이션를 견디고 있는 훌륭한 사례가 바로 RSS(Really Simple Syndication)에 기반해 만들어진 팟캐스트다. 팟캐스트는 누구나 콘텐츠를 온라인에 올려놓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술 표준으로, 이를 설계한 사람들은 기업들이 사용자를 자기네 플랫폼 안에 가두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팟캐스트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두었다.

특정 플랫폼에 묶이지 않는 RSS 팟캐스트의 작동 방식 (이미지 출처: Buzzsprout)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들이 이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애플, 스포티파이, 유튜브 같은 플랫폼들은 조 로건 같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주면서 이들의 방송을 자기네 앱 안에 가두려 한다. 일단 팟캐스트를 기업이 통제하는 앱 안에만 가두어 두면 기업은 사용자들을 상대로 다양한 짓을 할 수 있다. 사용자들의 행동을 감시할 수 있고, 팟캐스트에 삽입된 광고를 건너뛰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BBC의 사례를 보자. 지난 수십 년 동안 BBC는 과거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민영화된 방송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고민해 왔다. 그런 존재론적 고민의 결과로 BBC 월드와이드, BBC 아메리카 같은 민영화된 자회사가 탄생하기도 했다. 영국 국민을 상대로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교육과 정보, 오락을 제공하면서 미국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BBC 아메리카가 제공하는 프로그램들 (이미지 출처: Amazon.com)

또 다른 시도가 BBC 사운드라는 앱이다. 내가 좋아하는 BBC 프로그램 중에 뉴스 퀴즈 프로그램이 있는데, BBC 사운드 앱을 통하면 바로 들을 수 있지만, 자체 앱이 아닌 공개된 팟캐스트를 통해 들으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방송 시점에 뉴스가 되는 이슈에 관해서 묻는 퀴즈 프로그램을 한 달 후에 들으려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걸 들으려고 BBC 사운드 앱을 설치하지도 않는다.

결국 청취자들은 떠난다. 재미있는 팟캐스트는 세상에 널렸기 때문이다.

BBC 사운드 앱

똑같은 일이 스포티파이 팟캐스트에서도 일어난다. 스포티파이는 팟캐스트 프로덕션과 유명 크리에이터들을 자기 플랫폼에 데려오기 위해 수억 달러를 지불했다. 유명한 팟캐스트를 자기네 담장 안에 가두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그런 생각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럼 안 듣고 만다며 지나치기 시작했다. 요즘 스포티파이를 보면 그렇게 가두었던 팟캐스트를 서서히 다시 플랫폼 밖으로 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일부 에피소드를 외부에도 공개하는 거라고 체면치레를 하지만, 결국 팟캐스트를 예전으로 돌려놓기로 한 거다.

스포티파이가 그렇게 하는 건 어쩌면 언론사가 겪는 것과 비슷한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공짜 콘텐츠에 익숙한 청취자들이 세상에 널린 콘텐츠를 대신 선택하는 것일지 모른다. 다른 모든 디지털 미디어는 플랫폼의 장악 시도에 넘어갔지만 팟캐스트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플랫폼이 망가지는 인쉬티피케이션은 그렇게 강력한 기업들과 세상을 장악하려는 자본주의자들, 그리고 소비자의 필요와 요구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온라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낙관보다 희망

내게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낙관주의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희망이란 이런 거다. 우리가 사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물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더 멀리 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조망을 통해 (그 작은 변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소설가이지만, 동시에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소설의 플롯을 만드는 것과 사회 운동을 계획하는 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설에서는 변화가 깔끔하게 만들어지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도 작동 방식이 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을 둘러보고 지금보다 좀 더 개선할 수 있는 걸 찾으면 된다. 그렇게 작은 개선이 이뤄지면 그 위에 올라서서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찾는 거다.

나는 현재 유럽연합이 논의하고 있는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 Act)에 큰 희망을 갖고 있다. FTC의 리나 칸과 미 법무부가 추진하는 반독점 재판에 대해서도, 중국 사이버스페이스법,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사인 액티비전(Activision)을 인수하려는 시도를 막으려는 영국 정부의 노력에도 기대가 크다. 일론 머스크 같은 기업가들을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 플랫폼 사업을 하는 자칭 천재들에게 꺼지라고 외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내게는 많은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