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끝나는 날
• 댓글 남기기지난 여름 폭스바겐이 현대모비스의 배터리시스템을 사용하기로 한 것을 두고 "더 이상 독일차의 기술 우위를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이 나왔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로 넘어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힘들 거라는 전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다. 아래 글에서 이야기하지만, 폭스바겐 그룹의 CEO 토마스 셰퍼도 심각한 상황을 경고했다. 정말로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유럽의 카메라, 시계 산업처럼 쪼그라들게 될까?
독일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 잘 설명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제목은 'What if Germany stopped making cars? (독일이 자동차 생산을 중단한다면?)'이다.
"폭스바겐 브랜드의 미래가 위험합니다." 지난 7월 초,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 폭스바겐의 CEO 토마스 셰퍼(Thomas Schäfer)가 한 말이다. 셰퍼는 폭스바겐이 처한 위기를 돌려 말하지 않았다. 비용은 올라가고, 수요는 떨어지고, 경쟁은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이다. 셰퍼는 한 마디로, "우리 지붕이 불타고 있다"고 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 말은 2011년에 스티븐 일롭(Stephen Elop)이 노키아의 CEO에 취임한 직후에 했던 "우리 플랫폼이 불타고 있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당시만 해도 노키아는 세계 최대 모바일 폰 제조사였다.
노키아의 경우 CEO의 경고는 효과가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회사는 해체되었고, 모바일 폰 사업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렸다. 훗날 마이크로소프트도 역시 모바일 폰 사업을 접었다. 폭스바겐처럼 막강한 회사, 더 막강한 폭스바겐 그룹도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될까? 아니, 가장 강력하다는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노키아처럼 문을 닫게 될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유럽 최대의 독일 경제는 어떻게 될까?
자동차 산업 하나가 즉각 붕괴할 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폭스바겐은 2022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 기업이고, 회사를 지탱할 만한 자금은 충분하다. 지난 7월 27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18% 성장한 1,560억 유로(약 220조 원)이었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독일의 다른 자동차 기업들 상황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독일 자동차 업계는 다가오는 재앙을 무시하기 어렵게 되었다. 7월에 독일의 씽크탱크인 이포경제연구소(Ifo Institute)가 발표한 산업신뢰지수는 3개월 연속 하락이었다. 독일의 기업 대표들은 폭스바겐의 셰퍼와 비슷한 우려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무능한 관료주의, 대중국 교역의 지정학적 문제 등을 걱정하고 있다. 독일 산업이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자동차 업계가 유독 큰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이 업계가 여러 가지 변화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델들을 전기차로 전환해야 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법을 익혀야 할 뿐 아니라, 현재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는 다른 곳에서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자동차 공장들은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폐쇄해야 할 수 있고, 내연기관과 기어박스(gearbox)용 부품을 만드는 공급업체들은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
게다가 독일 자동차 산업은 점점 커지는 중국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중국의 빠른 성장으로 덕을 봤다. 단적인 예로 2022년 독일 자동차 3사가 벌어들인 수입의 40%가 중국에서 왔다. 이제 독일 기업들은 그런 행운이 역전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폭스바겐이 최근 해외 매출 목표를 낮춰잡은 가장 큰 이유는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 때문이다. 현재 일어나는 지정학적 변화는 가뜩이나 나쁜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중국의 자동차 기업들의 해외 판매, 특히 유럽에서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중국이 세계에 수출한 자동차는 약 300만 대로, 260만 대를 수출한 독일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비중
이 모든 문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곳이 폭스바겐의 본사가 위치한 독일의 볼프스부르크(Wolfsburg)다. 셰퍼가 "우리 지붕이 불타고 있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도한 언론사에 따라 다르지만, 폭스바겐 그룹의 전기차 판매는 기대보다 30~70% 낮고, 고질적인 소프트웨어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폭스바겐은 지난 5월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카리아드(Cariad)의 경영진을 교체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중국의 전기차 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폭스바겐은 중국 전기차 시장의 2%만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 자동차 산업이 정말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일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다르다. 독일 내에서 자동차 제조 부문이 직접적으로 고용하는 노동자의 숫자는 90만 명이 채 되지 못한다. 그중 2/3가 자동차 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1/3은 부품공급업체 소속이다. 이는 독일 전체 노동력의 2%에 불과하다. 전 세계에서 독일 자동차 브랜드를 달고 팔리는 차의 약 3/4이 해외에서 생산된다. 작년 한 해 독일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350만 대로, 1970년대 중반 수준이다.
하지만 독일 업계를 걱정시키는 지표는 따로 있다. 자동차는 독일 수출의 16%를 차지한다. 자동차 산업이 독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에 GDP의 4.7%로 정점을 찍었지만, 통계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인 2020년을 기준으로 여전히 독일 경제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는 자동차 강국인 일본과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보다 약 1%가량 높은 수치로 추정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자동차 산업은 단순히 숫자 이상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포경제연구소를 운영하는 올리버 팔크(Oliver Falck)는 자동차 산업은 독일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나 다름없다"라고 한다. 독일 경제와 기관들의 주요 부분이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거다.
우선 폭스바겐을 비롯한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에 의존하는 건 부품을 직접 공급하는 기업들만이 아니다. 최근 통계는 구하기 어렵지만 독일경제연구소(IW)를 비롯한 씽크탱크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독일 자동차에 대한 수요 때문에 독일의 금속과 플라스틱 업계가 얻는 부가가치는 16% 이상이고, 그로 인해 160만 개의 일자리가 간접적으로 발생한다. 그걸 모두 계산하면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250만에 달하고, 이는 독일 전체 노동력의 5%에 해당한다.
일자리 이상의 가치
그뿐 아니다. 독일의 투자와 혁신 또한 자동차 업계와 묶여있다. 독일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은 2020년 제조업 총 고정 자본 형성의 35%를 차지했다. 연구재단들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독일 제조업 연구 개발(R&D) 투자의 42%가 자동차 업계에서 왔고, 제조업 외의 기업, 기관의 R&D 비용의 64%도 자동차 업계에서 지원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특허 출원은 2005년에 독일 전체의 1/3을 차지했고, 2017년에는 이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자동차 산업은 독일이 자랑하는 사회 모델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 간 균형이다. 독일에서 자동차 공장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폭스바겐이 있는 볼프스부르크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렇게 세워진 자동차 공장들은 지역 경제를 끌어 올리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독일의 400개 도시 중 48개가 자동차 산업에 고용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볼프스부르크의 경우 인구의 47%가 자동차 산업에서 일한다. 따라서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쇠퇴하게 된다면 많은 지방 도시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독일은 노사관계는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지만, 강력한 자동차 산업이 없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벤츠와 포르쉐, 대형 부품업체 보쉬(Bosch)가 위치한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산별노동조합 IG메탈(금속산업노조)을 이끄는 로만 지첼스버거(Roman Zitzelsberger)와 같은 노조 지도자들은 자동차 산업이 금속산업노조의 "허리"라고 말한다. IG메탈은 조합원 200만 명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산별노조로, 조합원의 1/3이 자동차 산업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기업들에 따라서는 노동자의 90%가 노조에 가입해 있는데, 그런 막강한 영향력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 있고, 이런 노동조건은 노조가 강하지 않은 다른 기업이나 업종으로 확산된다.
자동차 산업은 노동자들이 노조 대표를 기업의 이사회에 포함시키는 독일 특유의 공동결정 모델을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에서도 폭스바겐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폭스바겐의 경영평의회는 IG메탈에 자금부터 정보까지 중요한 자원을 제공한다. 이 회사의 감독위원회(감독 이사회) 20명 중 절반이 노동자 대표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기업의 상황과 관련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받고, 전략 결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회사 지분의 12%를 갖고 있는 니더작센주도 이사 두 명을 임명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힘의 안배가 깨질 경우 독일 노동시장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게 된다는 것이 노조 씽크탱크 한스 뵈클러 슈티프퉁의 연구원 세바스티안 둘리엔(Sebastian Dullien)의 생각이다. 그는 "조금만 과장하자면, 폭스바겐이 변신하는 데 성공하느냐, 아니면 테슬라에 밀려나느냐가 관건"이라고 한다. 테슬라는 최근 베를린 근교에 유럽 최대의 공장을 설립한다는 발표를 한 상황이다. 독일의 제조업 노동자들이 다른 유럽의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시절은 머지않아 끝난다는 게 둘리엔의 전망이다.
측정하기는 힘들지만 중요한 요소가 있다. 독일의 자동차 산업이 축소될 경우 발생할 심리적 영향이다. 독일의 공업은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배기가스량 조작 사건)로 이미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의 뤼디거 바크먼(Rüdiger Bachmann) 교수가 작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배기가스량 조작 사건으로 16만 6,000대의 판매 감소를 겪었고, 77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2014년 총 매출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베를린의 사회과학센터 WZB의 볼프강 슈뢰더(Wolfgang Schroeder)는 만약 독일의 자동차 산업에 사라진다면 "유럽 경제에 거대한 구멍이 나게 된다"고 우려한다. 독일의 정치인들은 그런 일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중이다. 디젤게이트 이후로 독일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지원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직원이 자기가 일하는 회사의 차량을 구입할 경우 세금을 감면해 주는 보조금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보조금 때문에 노동자들은 임금의 일부를 포기하는 대가로 고급 차를 탈 수 있다. 독일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2/3는 기업이 구매하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된다.
니더작센주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커서 망하게 놔둘 수 없는 존재다. 폭스바겐은 볼프스부르크에서만 5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니더작센 전체에서 13만 명을 고용한다. 지역 경제가 흔들릴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는 바로 옆에 있는 튀링겐주를 보면 알 수 있다. 독일의 극우 정당인 AfD(독일을 위한 대안)는 튀링겐주에서 34%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사양길에 접어드는 자동차 산업
하지만 독일 자동차 산업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정부의 보조 정책이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바크먼 교수는 독일 정치인들은 자동차 산업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빈 공간을 시장의 힘이 채울 수 있음을 믿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컨설팅 기업 TLGG의 크리스토프 보른샤인(Christoph Bornschein)은 자동차 산업이 한 때는 독일의 힘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독일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자동차는 독일이 기계공학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큰 징후"라고 설명한다. 폭스바겐이 소프트웨어 부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 정밀하게 작동하는 고가의 기계 장치를 만들어내는 데 최적화된 경제 시스템은 갈수록 디지털화하는 세상에서 거듭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자동차 산업이 독일 경제를 지배하지 않게 되면 대안이 들어설 여지가 늘어나게 된다. 자동차 산업으로 들어가는 보조금이 줄어들면 스타트업에 더 많은 자본이 들어갈 수 있다. 기계 공학을 전공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컴퓨터 공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날 거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자동차 관련 특허를 받으려고 애쓰는 대신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힘을 쓰게 된다.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Eindhoven)이 그런 자유방임적 접근법으로 성공했다. 에인트호번에서는—현재 볼프스부르크에서 폭스바겐이 그렇듯—한 때 전자산업의 대명사였던 필립스가 경제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수천 개의 작은 기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반도체 제조 장비를 만드는 기업 ASML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극자외선 노광장비 제조업체인 ASML은 현재 유럽에서 기업 가치가 가장 큰 회사 중 하나다. 핀란드의 에스포는 노키아로 성장했지만—노키아는 여전히 이곳에서 네트워크 장비를 만들고 있다—지금은 새로운 스타트업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물론 자동차 산업은 (노키아의) 모바일 폰을 만드는 생산공정에 비해 훨씬 더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하락세가 완만하다면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보쉬나 콘티넨탈(Continental) 같은 부품공급업체들은 테슬라와 같은 외국 기업들과 협업을 이어나갈 거고 (테슬라는 초기 부가가치의 80%가 보쉬에게서 왔다고 전해진다) 그보다 작은 공급업체들은 독일의 소기업("미텔슈탄트")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만의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거다. 그리고 독일은 저렴한 자동차의 생산을 중단하고, 마진율이 높은 소수의 고급차 생산에 집중하게 될 거다. 폭스바겐은 폭스콘(Foxconn)이 애플의 아이폰을 만드는 것처럼 다른 브랜드의 전기차를 만들게 될 수 있다.
독일 자동차 업계에는 벌써 폭스바겐 없는—적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의 폭스바겐이 없는—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연구기관인 ISF 뮌헨의 안드레아스 보에스(Andrea Boes)는 독일이 "자동차를 중심으로만 전략을 세우는 건 그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동차 업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임원, 전문가들과 함께 "모빌리티 선언문(Mobilistic Manifesto)"을 발표했다.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 안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사게 만드는 대신, 사회 전체가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방식을 고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독일의 자동차 기업들은 항상 사람들의 이동을 도와왔는데, 그 일을 앞으로 더 똑똑한 방법으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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