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미국의 케빈 버그라는 한 남성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중에서 편지 하나를 발견해서 자신의 플리커 계정에 공개해서 작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매리 V. 포드Mary V. Ford라는 이름의 이 할머니가 젊은 시절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에 애니메이션 제작 연습생으로 지원을 했는데, 디즈니 측에서 뽑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거절 편지였다.

당시 디즈니 프로덕션은 설립된 지 15년 된, 한창 잘 나며 인기를 끌고 있었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을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무수한 사람이 받았을 거절/탈락 편지 중 하나였을 이 편지가 21세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디즈니가 포드를 뽑지 않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여성이 당연히 결혼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Miss라는 호칭과 women과 더불어 girls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눈여겨 보시기 바란다:

친애하는 포드 양에게
포드 양께서 보내신 편지(지원서)는 저희 Inking and Painting 부서에서 답장을 드리도록 전달받았습니다.
여성들(women)은 상영용 카툰을 만드는 일과 관련해서 창작 일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 작업은 전적으로 젊은 남성들(young men)이 합니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girls)은 연습생으로 받지 않습니다.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캐릭터를 투명 셀룰로이드 시트에 인디아 잉크로 베끼는(tracing) 작업과 지시에 따라 시트 반대편에 물감을 입히는 작업뿐입니다.
"잉커(Inker)"나 "페인터(Painter)" 업무에 지원하려면 펜과 잉크, 수채화 물감으로 작업한 샘플을 가지고 저희 스튜디오에 직접 오셔야만 합니다. 하지만 지원하는 여자들(girls)의 숫자에 비해 자리는 극히 적기 때문에 그걸 들고 이곳 헐리우드까지 오시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월트 디즈니 프로덕션
매리 클리브

우선 이 편지는 월트 디즈니의 인기작 '백설공주'의 캐릭터들이 컬러로 인쇄된 아름다운 레터헤드를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미국이 대공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1938년에 거절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편지지를 썼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일 만큼 성의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이 할머니는 그래서 소중하게 간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용은 차갑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진다. "젊은 남성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받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기업들은 아직 있을지 몰라도 그걸 뽑지 않는, 아니 기회도 주지 않는 이유로 편지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지원한 여성에게 잔인하다 못해 마치 꾸짖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2020)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통해서다.

긴즈버그는 1956년, 당시 여성들에게 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진학한 극소수(5백여 명 중 9명)의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법과대학원 학장은 그 아홉 명의 학생과 가족을 초청한 자리에서 "남자들의 자리를 빼앗아가면서 법대에 진학한 이유가 뭔지 한 사람씩 말해보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여성이 학교나 직장에 가면 남성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1938년에 위의 편지에서 "젊은 남성들"을 언급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아직 미국 전체가 대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해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던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젊은 남성들이 전부 차지하는 창작 부서가 아니라 여성도 일할 수 있는 Inking and Painting 부서에서는 일할 수 있는데 헐리우드까지 찾아오지 말라고 한 건 좀 심하게 들린다. 역시 정확한 배경은 모르지만 거의 똑같은 내용의 다른 거절 편지(일 년 후인 1939에 보낸 편지)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아래의 편지는 'Miss Frances Drewer'라는 지원자에게 보낸 편지인데, 앞의 내용은 똑같지만, 마지막에는 "찾아오시면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겠다(We will be glad to talk with you further should you come in)"는 말로 끝낸다. 그런데 수신인의 주소가 미국 중부 캔자스주인 위의 편지와 달리 아래 편지의 수신인은 디즈니 프로덕션과 가까운 캘리포니아 밴나이즈에 사는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한 후 떨어뜨리더라도 캔자스에서 기차를 타고 며칠을 걸려서 온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덜 미안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938년 편지의 백설공주 레터헤드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아이러니는 피하기 힘들다. 상단 왼쪽에는 주인공 백설공주가, 하단 오른쪽에는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하는 마녀가 그려져 있다. '젊은 공주'와 '늙은 마녀'라는,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극단적인 시각을 대표하는 두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젊은 여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이든 일곱명의 남성("난쟁이")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를 너무나 잘 반영한다. 여성은 젊을 때 가치가 있다는 것, 남성들의 시선(gaze)을 받는 객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은 뮤즈(muse)이고 묘사의 대상이지 창작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상영용 카툰을 만드는 일과 관련해서 창작 일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 작업은 전적으로 젊은 남성들이 합니다"라는 디즈니 직원(이 직원도 여성이다. 타이핑은 오래도록 여직원의 일이었다)의 편지 내용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모델이 된 만화가 레터헤드를 통해 더욱 강조된다. 물론 1930년대만 해도 이런 아이러니를 느낀 사람들의 거의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남성은 창작자이고 여성은 창작/묘사의 대상이라는 구도는 20세기 말까지, 아니 지금도 끈질기에 많은 사람의 편견에 남아있다. 이에 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미술사'에 게재된 내용이다.


지난 9월 세계적인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가 세계에서 가장 혁신을 주도하는 리더 100명의 리스트를 발표했다. 이런 리스트는 항상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것을 선정하는 주체 선발의 공정성, 객관성에 신뢰가 가든 가지 않든 사람들은 누가 리스트에 포함되었는지 알고 싶어서 일단 클릭을 한다. 사실 그런 호기심을 잘 알기 때문에 매체들은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인물’ 따위의 리스트를 꾸준히 만들어 발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잘 팔리는 기사다.

그런데 이번에 포브스가 발표한 기사는 큰 역효과가 나버렸다. 포브스가 발표한 100명 중에 여성은 단 한 명밖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혁신적인 인재의 99%가 남자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에 사람들은 “남성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근래 들어 달 착륙부터 인터넷 발명까지 ‘남성들의 작품’처럼 여겨진 인류의 많은 업적들에 여성들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것이 책과 영화로 등장하는 일이 흔한데, 포브스의 선정은 그런 세계적인 추세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포브스는 비판을 받자마자 “우리가 일을 그르쳤다(We blew it)”고 시인하는 발표를 했고, 앞으로 기준을 좀 더 정확하게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미술관에 소개된 아티스트들 중 여성은 5%인데 누드화에 등장한 인물의 85%가 여성임을 지적하는 ‘게릴라걸스’의 포스터(1989)

그런데 왜 주요 업적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름은 빠지고, 잊혀지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남성중심사회의 오래된 선입견이다. 가령, 같은 일을 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도 여성이면 ‘저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 단순 업무를 하는 사람이겠지’하고 단정 짓는 버릇이다. ‘여성은 남성들이 하는 업무를 보조한다’는 오래된 선입견은 남성 직원과 똑같은 일을 하는 여성 직원이 앉아 있으면 “커피 하나 갖다 달라”고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여성 과학자, 엔지니어, 최고경영자(CEO)가 하는 일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단면적일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2019년에 포브스의 리스트가 문제가 되었다면 34년 전인 1985년에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리스트가 문제가 되었다. 미술관에서 ‘전세계의 최신 그림과 조각 동향’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거기에 들어간 165명의 현대 작가들 중에 포함된 여성 숫자는 10%도 되지 않는 13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전시회를 준비한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회에 포함되지 않은 예술가들은 그(자신)의 커리어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their career’라는 중성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his career’라는 남성형을 사용한 것이 큰 분노를 일으켰다. 예술가는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드러냈고,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술을 포기하라는 폭언과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그 큐레이터의 기준이 얼마나 공정할 수 있느냐’이다.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을 ‘예술가는 남성’이라는 선입견에서 출발했다면 여성작가들이 내린 미적판단은 ‘다른’ 것이 아니라 ‘덜떨어지는’ 혹은 ‘함량미달’의 것으로 봤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근래에는 그나마 미투운동을 통해 여성들이 겪는 성희롱, 성폭행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특정한 커리어에 있는, 특히 전문적인 일을 하는 여성의 경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원 조교가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은 계속해서 학계에 살아남을 수 없게 되는 한국적 상황, 영화배우가 힘있는 제작자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그것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배우 경력은 끝나게 되는 헐리우드의 상황 등이 미투운동이 있기 전에 가해자들이 마음놓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뉴욕 현대미술관은 세계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이 있는 기관이다. 그런 미술관이 권위를 가지고 미적인 판단을 내려서 개최한 전시회를 두고 그 선발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나는 미술계를 떠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제기하기로 한 여성들은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바로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가면을 쓰고 시위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냥 가면도 아니고 시각적으로 충격을 줄 만한 무서운 고릴라 가면이었다.

게릴라걸스는 21세기 들어와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아카데미상의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헐리우드의 광고판 (2002)

그래서 탄생한 것이 ‘게릴라걸스(Guerilla Girls)’라는 단체다. 그들은 대규모 정규군에 맞선, 작고 힘없는 저항군이 택하는 전술인 ‘게릴라’ 전술을 이용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어서 현대미술관의 권력에 저항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말에서는 고릴라와 게릴라가 완전히 다른 발음으로 들리지만, 영어에서는 둘 다 ‘거릴라’에 가깝게 발음하기 때문에 게릴라걸스는 고릴라걸스로 들리기도 하는 걸 이용해서 고릴라 가면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정체를 감추고 미술계의 남성중심 권력구조를 비판하기 시작한 게릴라걸스는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지난 30년 넘게 전세계 미술관과 갤러리들의 작가 선정과정에 개입된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폭로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거장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누드화 ‘그랑 오달리스크’(1814)를 차용한 포스터다. 모델의 얼굴에 게릴라걸스가 사용하던 고릴라 가면을 씌운 이 포스터는 뉴욕의 또 다른 대표적인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편견을 이렇게 지적한다. ‘(이 미술관의) 현대미술 섹션에 소개된 아티스트 중 여성은 5%밖에 되지 않는데, 그 섹션에 소개된 누드화 속 인물은 85%가 여성이다. (결국)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인가?’

이 지적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남성 중심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길게 설명하지 않고 5%와 85%라는 충격적인 숫자로 문제의 핵심을 직관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은 “여성은 바라보는 대상이지, 창작의 주체가 아니다”라는 인류 역사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차별적인 편견이다.

게릴라걸스는 ‘여성 아티스트가 가진 장점’이라는 리스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 아티스트가 겪는 어려움을 비꼬아 제시한 이 13개 항목의 ‘장점’들에는 “성공에 대한 부담이 없다”(거의 불가능하니까), “80세가 넘으면 유명해진다”(여성은 평생을 바쳐야 죽기 전에 간신히 유명해진다), “뭘 만들어도 여성성을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남성)들이 가져다 사용해준다,” “천재라는 부담스러운 찬사를 들을 필요가 없다”처럼 재치있고 뼈아픈 지적들이 가득하다.

21세기에 들어온 지도 20년이 다 된 시점에 포브스가 발표한 남성중심의 편견이 가득한 리스트를 보면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포브스의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은 더 이상 고릴라가면을 쓰지 않았고, 포브스라는 전통 매체가 하루이틀 만에 사과했을 만큼은 변했다. 사회는 그렇게 아주 조금씩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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