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의도에서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허위, 조작, 가짜뉴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개정안의 배경에는 소위 '조국 사태'를 통해 보인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가 2022년 대선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될 수 있다는 여당, 특히 친노-친문의 경계심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법으로 처리해야 하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가짜뉴스의 문제는 심각하지만 강력한 법의 존재는 언론의 역할 자체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흥미로운 것은 한국과 미국의 언론 지형의 차이다. 미국은 기본적은 "메이저 언론사들은 리버럴"이라는 생각이 강하지만, 한국은 "메이저 언론사는 보수의 편"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라면 집권 민주당이 이런 법안을 들고나올 리 만무하지만, 한국에서는 집권 민주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노력 중이다.

이런 구도에서 관심이 가는 건 한국에서 대체로 리버럴로 분류되는 한겨레의 입장이다. 관련한 사설을 보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에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오늘날 언론이 보여주는 폐단은 뿌리부터 난마처럼 얽힌 수많은 문제에서 비롯된다. 구조적 접근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대증요법만으로 언론개혁은 불가능할뿐더러, 자칫 문제만 훨씬 복잡하게 키울 수 있다. 언론에 의한 피해를 막으면서 모두를 위한 언론자유도 신장하기 위해 지금은 큰 밑그림부터 그려야 할 때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는 이를 위한 기회를 민주당 스스로 걷어차는 일임을 다시 한번 밝혀둔다.

대표적인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도 연일 사설을 통해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강하게 표현하는 중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같은 의견을 낸 특이한 사안이지만, 사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지지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은 이후로 한겨레는 현재의 집권당과 그 지지층에게서 그다지 신뢰를 받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단체들도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위헌적 입법"이라는 공동 성명을 낸 만큼 이번 개정안은 대부분의 언론인이 반대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 대해서 많은 글을 쓰지 않는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였다. 나도 우리나라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문제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 해결책이 더 강한 법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언론사들의 주장처럼 강력한 법이 언론의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이 과연 언론뿐이냐는 것과 그 법이 과연 가짜뉴스를 뿌리 뽑는 역할을 하겠느냐는 의심 때문이다.

그런데 9월 초에 한겨레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의 언론학자 한 사람과 인터뷰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배경은 이렇다. 나는 2019년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의뢰를 받아 현재 시라큐스 대학교 조교수인 언론학자 휘트니 필립스(Whitney Phillips)의 3부작 리포트를 책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증폭의 산소(The Oxygen of Amplification)라는 제목의 이 리포트는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가 어떻게 트럼프를 도왔는지를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언론이 의도치 않게 가짜뉴스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음을 자세하게 분석한 것으로,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가장 잘 정리한 논문으로, 미국에서 이 주제로 이야기할 때마다 인용되곤 한다.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번역본은 여기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나는 국내의 문제를 논의할 때 서구의 학자에게 묻는 습관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휘트니 필립스가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안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로 가장 심각한 결과(=트럼프의 당선과 4년의 임기)를 겪은 나라의 학자라면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제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인터뷰에 동의했다. (화상 인터뷰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과거에 해보니 옮겨 적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들어가서 이메일로 주고받기로 했다).

참고로 이 인터뷰는 한겨레의 3부작 보도 중에서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1부2부 기사도 읽어보시길 권한다. 아래 내용은 여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여당이 밀어붙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국내외 비판에 역풍을 맞았지만, 한편으론 한국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언론중재법 개정이 초래할 갖가지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쏟아냈음에도, 국민 다수가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언론의 위상 하락을 해결할 주체는 정치권이 아니라 언론 그 자체임을 입증해야 할 시점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휘트니 필립스 교수(시러큐스대)가 2018년 쓴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The Oxygen of Amplification)는 가짜뉴스의 온라인 확산과 미디어의 역할을 분석한 탁월한 저서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미디어스타트업 투자 전문가인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이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을 계기로 필립스 교수를 지난 6~13일 2차례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필립스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인한 새로운 정보 증폭 기제에 의해 불합리한 여론 지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언론이 여기에 어떻게 복무하는지를 깨달아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에선 ‘허위·조작보도’라는 개념을 추가해 언론 보도 피해자에 대한 배상액을 크게 높인 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짜뉴스’(fake news)는 더 큰 문제의 증상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법을 만든다고 해서 ‘증상’이란 표면 밑에 존재하는 진짜 ‘원인’이 없어지지 않는다. 문제 해결은커녕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가짜뉴스의) 피해가 온라인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이유는 정보의 확산 속도 때문이다. 또한 대중이 (가짜뉴스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스미디어를 ‘청소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한국의 기자들 역시 페이지뷰(PV)나 클릭수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언론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는가?

“미국도 정보 지형이 클릭을 위해 설계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클릭할(혹은 가장 웃기는, 가장 분노를 유발하는, 가장 황당한) 콘텐츠에 주목한다. 다양한 경제적 압력이 언론사 기자로 하여금 특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낚시성 기사는 많은 부작용이 있지만, 안 쓰면 그만이라고 할 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쉬운 문제였다면 미국의 기자들 또한 이 문제를 벌써 해결하지 않았겠나.”

한국에서는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미국의 기자들도 대중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했는데.

“미국의 경우 지난 수십 년 동안 공적인 시스템, ‘기관’(institution)들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이렇게 기관들을 의심하게 되면 시민사회가 작동하지 않게 되고, 허위정보와 음모론을 키우기에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더 큰 문제는 집단들마다 허위정보를 믿는 이유가 다르기에 모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휘트니 필립스 교수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에도 허위·조작보도를 미국에서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다른 법이 존재하는가?

“미국에는 이미 명예훼손죄가 존재한다. 고의로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퍼뜨릴 수 없고, 그렇게 한다면 고소를 당하게 된다. 반면, 미국의 수정 헌법 제1조(종교·언론·출판·집회 등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는 언론인과 시민을 구분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대폭적으로 허용하며, 이 조항의 보호 대상에는 모욕적이고, 유해하고, 사실이 아닌 표현도 포함된다.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해로운 것들을 법으로 금지하길 바라는 심정은 이해한다. 미국인 중에도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대응은 헌법에 위배되는 복잡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저서에서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디지털미디어가 정보의 지형을 바꾸고, 그 결과 저널리즘이 취약한 환경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언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16년 대선을 계기로 언론인들은 오염된 정보나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정보를 보도하면 발생할 영향을 알았고 대부분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외면함으로써 더 나쁜 정보가 생겨날 가능성을 허용하게 된다. 보도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언론인들이 극우의 여론몰이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인터넷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단순히 전달하는 대신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인들이 저널리즘이라는 시스템이 여론 조작자들에게 공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신뢰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가령 <뉴욕 타임스> 같은 매체를 불신하는 건 특정한 팩트에 관한 게 아니라 개개인의 정체성이나 그들이 확고하게 지닌 믿음에 관한 문제다. <뉴욕 타임스>가 편집 프로세스를 아무리 투명하게 공개해도 그 신문사가 발행하는 모든 기사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이 <뉴욕 타임스>에 대해 생각을 바꾸려면 사실 그들 자신의 세계관 전체를 바꿔야 한다.”

한국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불명예스러운 표현을 달고 산다. 인터넷 댓글의 표적이 되고 성적 모욕을 당하는 여기자가 생겨나고 심지어 정치인들마저 특정 기자에 대해 ‘좌표를 찍어’ 소셜미디어에서 공격한다. 이런 행위를 멈추게 할 방법은 무엇인가?

“미국 언론인도 유색인종, 여성일 경우 집단적 괴롭힘을 더 많이 경험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콘텐츠 관리(moderation)에 느리고, 어떤 콘텐츠에 개입하느냐에 대한 기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언론사가 개별 언론인, 특히 여성 언론인을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책임을 분담해서 기자 개인이 이런 종류의 폭력을 혼자 감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괴롭힘이 일어날 경우 기자들이 직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높은 상황이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기자들은 사회적 이익, 잠재적 피해 등을 고려해 보도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여론을 조작하거나 편견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이나 가해자를 보도할 때 기사에 그들의 말을 반드시 인용해야 하는지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언론의 책임 강화가 오로지 언론의 몫만은 아니다. 시민들 사이에 퍼지는 이슈들 역시 기사화되기 때문이다. 즉,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다.”

―언론의 위기 극복과 관련해 취재기자-편집기자-편집자-발행인-언론사 경영진 모두 각 단위 책임을 골고루 강조한다. 언론계 전체가 함께 나서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언론은 거대한 산업이다. 2016년 미 대선 보도와 관련해 내가 인터뷰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이 자신을 너무 탓할 필요는 없다. 기자들은 주목경제가 요구하는 것을 했을 뿐이다. 누군가 잘못을 했다면, 미디어 기업의 사업 방향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잘못이다.’ 언론을 제도적으로 개보수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너무 적은 임금을 주면서 너무 많은 일을, 너무 빨리 해내도록 요구하는 착취적인 노동 관행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뉴스 회사의 단기적 경제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저널리즘 플랫폼과 언론 전체의 장기적 이익에는 부합할 것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