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의 아이들 ②
• 댓글 남기기이탈리아와 프랑스에 흩어져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에는 어린아이와 십 대의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던 흔적, 진흙 바닥에 완벽한 발자국(우연히 남겨진 것과 구분된다)을 남긴 흔적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진흙을 뭉쳐서 서로에게, 혹은 동굴 속 석순에 던진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던진 흙덩이 중에는 석순에서 빗나가 땅에 떨어진 것도 있다.
민족지학(ethnography) 연구를 통해 우리는 많은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아이들이 진흙을 가지고 논다는 것을 안다. 아이들은 진흙으로 동물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며 논다. 그렇다면 어떤 유물이 아이들이 만든 것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고학자들이 그걸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 유물이 발견된 장소다. 성인의 체구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지점에 남아있는 흔적은 아이들의 작품이라는 것.
프랑스의 한 유적지(에티올, Étiolles)에서는 이게 좀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이곳을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은 여러 사람이 모여 살던 거주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확히는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 지점에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을 찾아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솜씨로 만든 석기가 있었고, 동물의 뼈(식사 흔적)도 남아 있었다. 스페인에서 발견된 비슷한 장소에는 어린아이들의 손자국이 어른은 들어갈 수 없는 낮은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의 놀이 행동은 20세기 고고학자들이 선사시대 아이들의 흔적을 무시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는 게 에이프릴 노웰의 설명이다. 학자들은 아이들이 진지한 생각 없이 무작위적으로 행동한 결과로 만들어진 유물에 대해서는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고학자들이 하는 농담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으면 '예식(ceremony)'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된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학자들은 이상한 장소에서 발견된 유물은 아이들 놀이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물들은 유적지를 왜곡(distort)하고 연구를 방해하기 때문에 이런 동떨어진 사례는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게 좋다는 태도다.
심지어 이를 증명하는 논문도 있었다. 노먼 해먼드(Norman Hammond)는 아이들이 놀이를 한 결과로 남긴 유물을 연구자들이 잘못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 살짜리 아들(논문에 제1 저자로 등장한다)을 잡동사니가 쌓인 곳에 놓아두고 아이가 물건들을 어떻게 재배치하는 살폈다. 그리고 이런 '구조화되지 않은 아이들의 놀이(unstructured child-play)'의 결과물이 고고학자의 눈에는 구조화된 의식(structured ritual)처럼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웰을 비롯한 일부 고고학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선사시대 아이들이 남긴 흔적이 고고학적 발견을 "왜곡"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고고학의 목적이 성인들의 행동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한정 짓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의 목표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아이들이 만들어낸 흔적은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선사시대 인구의 절반이 15세 미만의 아이들이었다면, 그리고 인류 역사의 99.83%가 선사시대에 해당한다면, 아이들이 남긴 흔적을 고고학자들이 무시하는 것은 인류가 살아왔던 삶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를 무시하던 고고학계가 태도를 바꾸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1970, 80년대에 고고학계에 여성학자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과 젠더를 연구하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특히 마거릿 콘키(Margaret Conkey), 루스 트링엄(Ruth Tringham), 로즈매리 조이스(Rosemary Joyce)처럼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활동하던 여성 연구자들이 선사 시대에서 여성의 역할을 찾아내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계 내 젠더 다양성이 우리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는 것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가 있을까?
학습과 혁신
선사시대 아이들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동물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지도, 가장 발달한 팔 근육이나 가장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지도 않은 인류가 지구를–좋은 의미에서든, 좋지 않은 의미에서든–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학습된 행동과 이를 통해 만들어 낸 문화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가 앞선 세대의 경험을 후세가 학습하고 더욱 발전시켰던 것이라면, 인류 차별화의 비밀은 아이들에 있다. 아이들이 무의미해 보이는 장난을 하며 뛰어다니고, 어른들에게 꾸지람과 격려를 받으면서 학습하는 과정이야말로 우리를 이 자리까지 데려온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학자이신 조수미 독자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예전에 공유하신 글을 전해주셨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웹사이트에 게재한 기사 내용을 재인용하신 걸 그대로 옮겨 보면 이렇다: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발견된 21,000년~23,000년 전의 발자국.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흔적이고 미대륙의 인간 거주 타임라인을 1만 년 정도 앞당기는 발견이라고 한다. 성인보다는 청소년과 어린이의 발자국이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되는데, 어른들이 한자리에서 일을 하는 동안 큰 애들한테 뭘 가져와라 옮겨라 심부름을 시키고, 작은 애들은 그냥 뛰어노느라 발자국이 많이 남은 것 같다고 한다."
선사시대의 사회에서도 아이가 자라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온전한 구성원이 되기까지는 많은 학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순진한 학습자(naive learner)'인 아이들은 어떤 행동이 공동체 내에서 적절한 행동이고 어떤 지식이 중요한 지식인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잘 아는 성인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렇게 배우는 아이들도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니라 무엇을 배울지, 누구에게 배울지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지식의 이동 경로가 수직적(부모→아이)이었다가, 조금 자라면서 또래에게서 배우는 수평적(아이→아이) 학습 형태가 나타나고, 청소년기에 들어가면서 사선형(부모가 아닌 다른 성인-아이) 학습이 일어난다. 특히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사선형 지식 전달 과정에서는 아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배우려는 기술의) 혁신자인 어른을 찾고, 이들의 앞선 기술은 자식이 아닌 공동체 내 다른 아이들에게도 확산되는 것이다.
인류는 구석기 시대에 지구 곳곳으로 이동하면서 확산했는데, 새로운 환경에 도착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내에서 누군가 찾아낸 가장 좋은 방법이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전수되는 데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사선형 학습이 중요했다. 어떤 식물이 독을 가졌고, 어떤 동물을 피해야 하는지, 가뭄일 때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와 같은 지식은 한 개체가 생각해 내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 간의 공유와 전수가 중요하다. 하지만 수직적으로만 기술과 지식이 전달된다면?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을 거다.
예나 지금이나 성인보다 청소년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다. 빙하기의 아이들이 습득한 지식과 기술은 문화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인류의 생존과 빠른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인간 문명을 진화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새로운 기술은 아이들을 통해 습득되어 후세에 전달되었고, 과거에 존재하던 기술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버린 것도 아이들의 선택이었다. 그 아이들이야 말로 빙하기의 "인플루언서"였다.
에이프릴 노웰의 글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그 아이들은 사랑했고, 사랑받은 아이들이다. 이들은 살면서 배고픔과 고통을 느꼈지만 기쁨도 느꼈다. 게임을 했고, '작품'을 만들었고,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는 비밀 공간에 모여 놀았다. 이야기와 음악을 들었고, 사냥하는 법과 물고기 잡는 법, 열매를 모으는 방법을 배웠고, 토기와 석기를 만들었고, 가끔은 진흙 바닥에 작은 발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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