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의 아이들 ①
• 댓글 7개 보기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빙하기 시대의 아이들 이야기다. 인류학, 고고학이 오터레터에서 다루는 영역은 아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독자들도 이해하실 거라 생각한다. 빙하기 아이들의 이야기는 전달하려는 교훈을 떠나 무척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기억이 가물가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먼저 이 시기를 정의하면서 시작해 보자. 지구는 여러 차례의 빙하기를 겪었지만, 우리 인류가 겪은 빙하기는 한 번이다. '제4기 빙하기' 혹은 '마지막 빙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1만 년 전인 홍적세(플라이스토세)에 시작되어 약 10만 년 정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 마지막 빙하기는 인류의 진화에서 구석기 시대, 그리고 중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해당한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인류의 진화 단계상 현생 인류가 등장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 빙하기 시대에 태어난 아기를 타임머신으로 데려와 지금 키우면 다른 아이들과 아무런 차이 없이 자랄 수 있다는 얘기다. 유전적으로 우리와 동일했던 그들과 우리의 차이–아마도 지적 능력–는 오로지 교육 등의 문화적, 즉 외적 요인이다. 당시 인류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신체 조건과 두뇌를 가졌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는 축적된 문화적, 기술적 도움이 없이 짧은 여름과 길고 긴 겨울을 지나야 했다.
여기까지가 간략한 배경지식이고, 아래 등장하는 내용은 캐나다의 빅토리아 대학교(University of Victoria)에서 구석기 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 에이프릴 노웰(April Nowell) 교수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노웰은 최근 이온(Aeon)에 'Children of the Ice Age (빙하기의 아이들)'이라는 글을 게재해서 많은 관심을 모았고, 방송에 출연해서 이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아래의 글은 그의 글과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풀어 쓴 것이다.
노웰이 이온에 게재한 글은 마지막 빙하기 어느 날 성인 남녀와 세 명의 아이들(약 3살, 6살, 그리고 11세 미만의 아이)이 동굴에 들어가 진흙 바닥을 걸어 벽에 손자국을 남기는 장면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족으로 짐작되는 이 다섯 명은 일렬로 (가장 어린아이가 맨 뒤에 있었다) 동굴에 들어갔고, 부모가 숯으로 동굴 벽에 손자국을 만드는 동안 어린 아이들은 바닥에 있는 진흙을 가지고 놀다가 동굴에 자란 석순에 흙 자국(과 함께 자신의 손자국)을 남겼다.
21세기 인류 사회와 구석기 시대의 사회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인구의 구성일지 모른다. 현대 세계에서 15세 미만의 아이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5%에 불과하지만, 기대 수명이 짧았던 구석기 시대의 사회에서는 약 절반에 달했다. 구성원의 절반이 아이들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너무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선사시대, 그러니까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그런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 고고학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고고학은 꽤 오랫동안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20세기 고고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성인이 남긴 유적, 유물에만 관심이 있었다. 학자들은 특정 시기를 연구할 때 그 시기에 가장 발전된 형태의 기술을 확인하고 싶었지, 아이들이 남긴 흔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Why Don’t Anthropologists Like Children? (인류학자들은 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가?, 2002),' 'Where Have All the Children Gone? (아이들은 전부 어디로 간 걸까? 2001)' 와 같은 연구 논문까지 나왔을까?
성인들이 남긴 흔적도 찾기 힘든 고고학에서 아이들의 흔적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뼈라는 게 원래 쉽게 부서지고 썩어 없어지지만, 아이들의 뼈는 훨씬 더 쉽게 소멸한다. 크기도 작을뿐더러, 뼈가 아직 단단하게 차지 않아서 성인의 뼈보다 흙 속에서 분해되기가 더 쉽다. 아이들의 뼈는 코끼리의 뼈보다 새의 뼈에 가깝다. 뼈가 남아있지 않으면 발굴하는 장소에 아이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알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고고학자들이 아이들이 남긴 흔적을 연구할 수 있게 된 데는 조사에 사용되는 기술의 발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에 더해 노웰은 현대인들의 사고방식, 혹은 태도가 선사시대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은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아무런 의무나 역할을 부여받지 않고 놀며 지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 사회는 '미성년 노동(child labor)'을 대하는 태도를 크게 바꿨다. 우리는 아이들은 이런 부담 없이 뛰어놀며 성장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에서 아이들은 일을 하며 가정 경제의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의 아이들이 어느 쪽에 가까웠는지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만약 어린 아이들이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유적을 살핀다면 그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훨씬 더 힘들어진다.
아이들의 노동과 학습
다행히 고고학에서 이런 선입견이 수정되면서 아이들의 흔적을 더 많이 찾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석기(石器) 제작 흔적이다. 구석기 시대의 아이들은 흑요석(obsidian)과 같은 돌을 뭉툭한 돌로 정확하게 내리쳐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런 도구를 박편(flake)석기라고 부른다.
단순해 보여도 이런 도구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재현한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날카로운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흑요석처럼 결이 있는 돌을 수직으로 내려쳐서는 안 되고 옆으로 살짝 비껴서 가격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노웰 같은 고고학자들은 이런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이는 유적을 살펴보면서 아이들의 학습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비껴서 가격하지 못하고 흑요석의 중앙을 내리쳐서 쓸모없는 결과물이 나왔고, 어떤 돌의 경우 각도는 제대로 잡았지만 너무 세게 때려서 너무 짧게 되거나, 너무 약하게 때려서 제대로 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연습을 계속하면서 점점 기술이 나아지고, 비로소 쓸 만한 도구가 나오는 과정이 발굴지에 흩어진 수천, 수만 개의 조각을 통해 드러났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스승의 존재였다. 프랑스 남서부에 솔비유(Solvieux)라 불리는 유적지는 약 15,000년 전 거주지로 추정되는데, 아이, 혹은 청소년이 유적지의 한구석에서 석기를 만드는 연습을 한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아이는 유적지의 한가운데, 즉 불을 피우던 곳 바로 옆에서 일하던 성인에게 가져와 방법을 물어본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솜씨로 쪼갠 박편과 어설픈 솜씨로 만든 박편이 한 곳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승'에게서 배운 이 아이는 그의 옆에서 가지고 온 재료를 소진할 때까지 계속해서 연습한 것으로 보인다. 노웰은 연습생이 만든 결과물은 그 자리에 떨어져 남아있지만, 스승이 능숙한 솜씨로 만든 도구는 남아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져간 것 같다고 한다.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그럴 거다. 스승과 제자가 더 가깝게 앉아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도 있다. 함께 일하면서 이야기도 들려주고 노래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물론 초심자들이 모두 어린 아이였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의 생존 환경을 생각해 보라. 인류가 혹독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냥을 하고, 사냥한 동물의 고기를 자르고, 식용 식물을 다듬고, 뿌리를 캐내는 등의 많은 작업을 해야 했고, 이런 작업에는 도구가 필요했다. 즉, 석기의 제작은 당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따라서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도구를 만드는 법을 배웠을 것이 분명하다. 노웰은 아이들이 여덟, 아홉 살 정도 되면 날카로운 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인지적, 신체적 조건이 되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들어갈 때쯤이면 자신은 물론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럼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일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빙하기의 아이들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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