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산다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부유층 주택가를 보자. 어마어마한 부지 위에 지어진 대저택에 자가 발전기가 있다. 미국의 송전 인프라 노후화가 심각해 잦은 정전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화 송전선은 건조한 계절이면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송전 전력망이 1950~1970년대에 건설되었는데, 보통 송전 전력망의 설계 수명은 50년, 변압 설비는 25~30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늦어도 2000년대에는 대규모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져야 했다.

미국의 낡은 송전 전력망은 캘리포니아에서 잦은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국의 베이징-상하이 간 고속철도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간 고속철도 건설산업은 거의 비슷한 시기(2007~2008)에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하지만 베이징-상하이 간 고속철도가 2011년에 이미 개통되어 매일 40만 명이 넘는 승객을 수송하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수송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건설 중인 제2고속철도도 2027년 완공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간 고속철도는 아직 제1공구조차 개통하지 못하고 있다. 제1공구 개통 예상 시기는 빨라야 2031년, 전 구간 완전 개통은 문자 그대로 기약이 없다.

“주택 위기(housing crisis)”라고 하면 중국에서는 너무 많은 집을 지어서 남아도는 바람에 주택 가격이 폭락해서 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가리키지만, 미국에서는 구매력 대비 주택이 부족해서 집값이 급등하는 것을 말한다. 주택만이 아니다.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공중화장실 등등 사회에 꼭 필요한 기반 시설들이 형편없이 낡았거나 부족하다. 뉴욕의 지하철 역에 가보면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맞는지 눈을 의심하게 된다. 중국이 미국의 두 배에 달하는 고속도로, 일본 신칸센의 20배에 달하는 고속철도, 그리고 전 세계 다른 모든 국가들을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를 건설하는 동안, 미국은 온라인 가상 세계와 금융 서비스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인들은 산업 문명의 폐허 속에서 살고 있다. 사회 기반 시설들은 유지, 관리를 포기하다시피 했고, 질적·양적 확장이 거의 없으며 있더라도 창피할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예산을 초과한다”고 꼬집는다. 지금 미국에서는 일반 서민의 삶의 질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 유럽이나 아시아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주택을 비싼 값에 사야 하고, 대중교통 시스템이 엉망이니 좋으나 싫으나 자동차를 소유해야만 한다.

뉴욕 지하철 승강장 모습

산업 문명의 폐허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소수의 예외적인 분야를 제외하면 미국의 제조업 기반은 완전히 녹슬고—러스트벨트의 rust 는 '녹'이라는 뜻이다—말았다. 미국의 제조업은 왜 무너졌을까?

한두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첫 번째 화살은 일단 월스트리트로 돌려보자. 금융 투자자들은 거액의 자본 지출(CAPEX)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자본 투자로 최대한의 수익을 끌어낼 수 있는 산업을 선호한다. 즉 수조 원을 들여 공장을 지어야 하는 제조업보다는 소셜미디어, 검색엔진, 반도체 설계 같은 “소프트 산업”을 좋아한다.

산업의 금융화는 그나마 살아남은 제조업의 질적 퇴보와도 관련이 있다. 보잉은 안전과 품질에 집착하는 엔지니어들이 이끄는 회사였지만, 지금은 좋은 비행기를 만들기보다는 주주 가치를 어떻게 올리느냐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경영진들이 포진해 있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마진이 낮고 주기적으로 설비 교체와 업그레이드 등을 위한 거액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제조업은 저임금 개발도상국들에게나 던져주고 서비스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도 한때 이런 주장이 꽤 힘을 받은 적이 있다.)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 제조업 쇠락의 이유로 중국을 탓하지만, 사실 미국의 제조업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한참 전인 1980년대였다. 레이건 행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이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에 금융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인수합병이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투자 은행가와 기업 변호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GE는 잭 웰치가 앞장서서 M&A에만 골몰하다가 주요 사업부문을 모두 매각 또는 합병하면서 사실상 공중분해되고 현재는 항공기 엔진과 의료기기 부문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철강 공장 쪽에서 바라 본 클리블랜드의 도심

그 후 40년. 이제 미국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제조업을 부활시키려 한다. 과거에 제조업으로 번영했던,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낙후해 버린 지역에서 다시 고용을 창출하고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고양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정치인들도, 기업가들도, 투자자들도 Process Knowledge의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제조업은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실리콘밸리 정신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제조업은 기업 하나, 공장 하나가 독자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 부품, 공급망, 숙련노동 등이 모두 제 역할을 해야만 기능하는 생태계다. (몇몇 천재들이나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일 뿐이고, 제조업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는 애초에 그런 해결책을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 미국은 이 제조업 생태계가 무너진 지 최소 40년이다. 한 세대 이상이 문자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전부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아랫세대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줄 시니어들이 아예 없다는 뜻이다.

제조업을 요리에 비유해 보자.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냄비, 프라이팬, 칼, 오븐 등의 장비다. 두 번째로는 기술, 즉 레시피다. 세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실무지식(process knowledge)이다. 직접 요리(실무)를 오랫동안 하면서 얻은 숙련도이며, 하루 아침에 타인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완벽한 주방과 최고급 조리도구, 상세한 레시피를 주면서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보라고 해보자. 과연 어떤 달걀 프라이가 나올까?

실무지식의 중요성을 인지한다는 것은 '기술'을 파괴적 혁신의 관점이 아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실무지식은 어딘가의 데이터센터 속 서버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 손끝,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것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어 본 사람이 바로 인텔의 전설적인 전 CEO 앤디 그로브이다.

그로브는 지금의 중국처럼 미국이 “발명과 생산에 모두 진심이었던 시대”, 즉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인텔과 같은 기술 기업들이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대규모 인력을 고용하고, 국방부와 NASA에 납품하며 국가의 안보 요구에 부응하던 시기였다. 2010년 그로브는 미국이 “신화적인 창조의 순간”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로브는 애플과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기술 발명만 앞서가면 제조는 저임금 국가에서 해도 된다”는 실리콘밸리식 사고방식을 뼈아프게 비판했다. 기술 발명이 생산으로 이어지며 실질적인 실무지식으로 재현되지 않을 경우 생태계는 녹슬어버린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가져오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다. 그런데 만약 오늘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한다고 가정했을 때, 미국이 확실하게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2022년 기준 중국이 건조 중인 군함은 약 1,800척이었다. 반면 미국이 건조 중인 군함은 단 5척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미국의 빈약하기 짝이 없는 군수 물자 현황이 드러났다. 미국이 한 달 동안 생산하는 포탄의 수는 우크라이나가 딱 이틀이면 다 써버릴 분량에 불과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은 미군과 중국군이 맞붙게 된다면 "군수품 재고가 매우 빠르게 고갈될 것"이라고 대놓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매년 거의 1조 달러에 달하는 국방 예산을 지출하는데, 이러한 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공군은 주문한 전투기가 엄청난 납기 지연으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비용을 감수해야 하고, 해군 역시 모든 군함과 잠수함의 건조가 예정보다 수년씩 늦어지고 있다고 보고한다.

오랫동안 미국 산업의 보루였던 군수업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실제로 전쟁이 났을 때 효율적인 물자 공급에 최적화하는 대신 의회에서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생산량을 나눠 가지기 위해 타협을 남발했기 때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군수 공장들이 생산의 노하우를 전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산업 역량은 곧 군사 역량이다. 중국이 생산하는 스마트폰, 배터리, 차량, 드론은 언제든지 군수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산업 생산 능력의 45%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대만 등을 다 합쳐도 38%에 그친다. 심지어 중국은 친환경 에너지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이 중국이 태양광, 풍력 등 저탄소 에너지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탄소 중립의 선두 국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군사적 충돌의 시기에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현재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로 해상 수송로 대부분이 포위된 상태이므로 유사시 석유 수입로가 막힐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또한 역대 중국 왕조들의 몰락에는 언제나 식량 위기가 동반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수십 년간 중국 역시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도시 근교의 토지는 농업 용도로 묶어놓고 있으며 호구 제도를 통해 농촌 인구 역시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각 성의 식량 자족을 장려하고 있으며 주요 대도시 역시 지역 재배 농산물이 일정량 이상 공급되어야 한다. 모두 식량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장치들이다.

식량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와 중국 기업들은 다양한 상품의 재고를 충분히 보유하여 회복력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재고는 악"(Inventory is evil)이라는 미국 기업의 철학과는 정반대이다. 즉 모든 제조업이 유사시 국민의 일상생활이 최대한 영향을 받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시진핑 주석이 농업 현장을 시찰하는 모습

저자는 시진핑이 궁극적으로 중국이라는 나라를 하나의 거대한 요새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코비드19 팬데믹 때 국가 전체를 봉쇄하는 '실험'을 함으로써 이러한 요새화 전략이 실현 가능한지를 테스트해 보았다는 것이다.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중국은 이 테스트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미래에 대비하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이제 아무 희망이 없는 것일까?


마지막 편, '변호사와 엔지니어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