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ppers
• 댓글 남기기페이스북의 광고 알고리듬은 대개는 아주 투명하게 작동한다. 내가 웹에서 검색한 제품이 바로 페이스북에 뜨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유튜브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영상광고인 만큼 모든 제품이 광고로 뜨지는 않는다.
가장 흔한 건 내가 특정 자동차 모델을 검색하면 경쟁사의 경쟁 모델이 광고에 뜨는 식이다. 인기있는 제품은 소셜미디어에 광고비를 많이 쓰지 않기 때문에 덜 유명한 경쟁사의 제품이 광고로 등장할 때가 많다. 게다가 유난히 소셜미디어를 통한 광고를 많이 하는 제품군이 있다. 가령 일반 자전거를 검색한다고 해서 자전거 광고가 뜨는 일은 별로 없고, 대신 (스피닝용) 실내 자전거가 많이 뜬다. 실내 자전거를 비롯해 집에서 사용하는 운동기구를 만드는 기업들은 팬데믹 기간 중에 소셜미디어에 엄청난 광고를 하고 있다.
나는 최근들어 과거에는 한 번도 찾아본 적 없는 제품군을 뒤지고 있다. 잔디밭과 정원을 가꾸는 제품들, 가령 리프 블로워(leaf blower)나, 잔디씨앗과 비료 같은 것들이다. 그랬더니 내 유튜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정원관리회사의 서비스나 제품 광고가 들어가는 건 이해를 하겠는데, 이런 광고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비상식량 광고다. 저 위의 한 봉투면 3일을 생존할 수 있다는 그런 제품이다. 미국이 도시화가 안된 지역이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 최강대국인데 국민들이 이런 비상식량을 준비할 만큼 위험할까? 그렇지는 않다. 그럼 이런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프레퍼(prepper)들이다. 직역하면 '준비하는 사람들'인데, 과거에는 흔히생존주의자(survivalist)들로 불리곤 했다. 핵전쟁이나 대형재난, 국가붕괴 등의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대형 지하벙커를 만들거나, 비상식량과 무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20세기 냉전시절에 흔했다가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렇게 종말을 대비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오히려 늘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눈여겨 봐야 할 건 이 제품의 이름과 모토다. 브랜드는 4Patriots (아마도 for patriots, 즉 '애국자들을 위한'의 의미로 사용한 듯)인데, "우리는 자유와 자립(독립)을 지지합니다(We Champion Freedom and Self-Reliance)"라고 밝히고 있다. 애국, 자유, 자립은 종말의 날에 대비하는 사람들(doomsday preppers)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에 이 제품은 이들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의 본사도 미국 남부 테네시주에 위치해있다.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 식량을 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농장 구석 땅속에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적, 혹은 약탈자들이 집에 쳐들어와서 식량을 다 빼앗아가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북부군(정부군)이 남부의 농장을 쳐들어와서 약탈했다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 백인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망상증(paranoia)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런 피해망상은 트럼프가 패배한 지난 선거 이후에 심해졌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궁금한 것은 내가 정원관리를 위한 제품을 검색하고 관련 영상을 본 후에 이런 비상식량 광고가 내 유튜브에 등장한 이유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집 앞 잔디밭 관리에 더 관심이 있는 걸까?
우선 블루컬러, 특히 건설직 관련 노동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형 하드웨어 매장인 홈디포(Home Depot)나 로우즈(Lowes)에는 군인과 군인가족들에게 대부분의 제품을 10% 할인한 가격에 파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이들 매장을 이용하는 주요고객들이 누구인지를 잘 아는 거다. 따라서 내가 홈디포와 로우즈의 웹사이트를 뒤지고 야외노동에 필요한 제품을 뒤졌다면 이런 노동을 하는 고졸의 군 출신 백인 남성, 즉 이 비상식량 브랜드의 잠재고객으로 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보수적인 사람들의 집과 정원의 크기다. 아래의 퓨리서치Pew Research 조사자료에서 보듯 보수주의자들은 아무래도 도시보다 농촌지역에 살 가능성이 높고 집과 집 사이가 멀고, 이는 돌봐야 할 잔디밭이 넓다는 얘기다. 생존식량 판매 업체는 실내 자전과 요가 매트를 검색한 사람과 잔디깎는 도구를 검색한 사람 중 누구에게 광고를 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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