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C의 전략적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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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CDC의 마스크 관련 결정, 발표 과정은 전문가 중심의 의사결정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바이든이 백악관에서 사람들과 마스크를 쓰고 회의를 하던 도중에 발표가 나왔고, CDC의 바뀐 권장사항에 따라 회의 도중에 마스크를 벗었다고 한다. 회의를 시작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는 모두가 맨 얼굴이었다. CDC의 발표가 나오기 전에 백악관과 어떤 종류의 "교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백악관은 이 결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완벽한 옵틱스였다. 백악관도 국민들과 똑같이 발표를 듣고 알았다는 것, 그리고 백악관도 CDC가 권장하면 즉시 따른다는 건 이 과정이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따르지 않았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CDC의 마스크 미착용 허용에는 몇 가지 단서가 붙는다. 1) 백신을 모두 접종한 후 2주가 지나야 하고 2) 평소 면역체계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고 3) 항공기를 포함한 대중교통, 요양원, 의료시설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 게다가 특정 영업장에서 "우리 시설에 들어오려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걸 따라야 한다. CDC의 권고는 법이 아니지만, 사업장은 자신만의 룰을 정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반 대중이 이런 세세한 단서를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CDC가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는 아주 거친 헤드라인이 언론에 등장할 것을,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만 볼 것을 알고도 이렇게 권고를 바꿨을 때에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이득이 계속해서 마스크를 쓰라고 할 때 얻어지는 이득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DC의 베팅
하지만 CDC의 결정이 다소 뜻밖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이제까지 집단면역(herd immunity)의 기준을 70%(혹은 80%)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는데 접종을 끝낸 미국인들이 3분의 1을 넘어 이제 막 절반에 도달하려는 중에 이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CDC의 이런 결정에 일부 전문가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집단면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가이드라인이 나가면 혼선과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마스크 없이 매장에 들어간다면? 당장 아직 백신 접종 연령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위험에 처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접해야 하는 매장 직원들 역시 위험해진다. 집단 면역 70%라는 기준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CDC는 이미 다른 쪽에서도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마스크 착용권장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거다.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데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도 마스크는 계속 쓰라"고 권하는 것은 백신 접종에 인센티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대중이 백신의 효용성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거다. 백신이 확산된 후 지난 2주 동안 미국 내 확진자는 3분의 1이 줄었다. 아주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확진자들 중에서는 백신 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99%일 만큼 백신의 효용은 확실하다는 것. 따라서 "백신 접종을 완전히 마친 사람들이라면"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권고는 현재 상황에서 실보다 득이 훨씬 큰 베팅인 셈이다.
그럼 나는 벗어야 할까?
하지만 확진자들 중에서 백신을 접종을 마친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0%는 아니다. 인간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개인차로 인한 예외가 발생할 수 있다. CDC는 이 정도면 실보다 득이 많겠지만, 당장 나 자신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아무리 적은 확률이라도 굳이 위험한 베팅을 할 이유는 없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에서도 "당신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마스크를 벗어도 되지만, 쓰고 있는 편을 택하는 게 좋을 수 있다"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기사를 끝낸다.
하지만 미국의 접종이 워낙 빠르게 이뤄지고 있어서 그 확률 역시 빠르게 내려가고 있고, 이 시점에서 이런 발표를 해줘야 아직까지 백신을 불신하고 버티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사회가 최종 장애물을 넘을 수 있다. 게다가 날씨까지 더워지는데, 만약에 이 시기를 놓쳐서 결정적인 순간에 백신에 대한 기대가 떨어지게 만들면 70%를 향한 행군의 동기가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미국사회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이번 발표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을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그만큼 고도의 전략이다.
CDC는 개인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질병과 관련해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최대치가 되도록 하는 기관이다. 백신을 빨리 맞고 조심할 사람들은 어차피 조심할 사람들이다. 문제는 남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거고, 이를 위해 CDC는 고난도의 PR작전을 사용한 거다.
아주 안전할 만큼 충분한 데이터에 기반한 결정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랬을 거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마스크를 벗지 않을 거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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