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의 시간 ③
• 댓글 2개 보기이번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요 어젠다로 삼은 전략에 대해 버니 샌더스는 "카멀라 해리스뿐 아니라, 민주당이 이 나라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노동자 계급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점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하는 정당으로 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노동자들이 민주당을 떠나는 추세는 백인 유권자들에게서 처음 나타났지만, 이제는 히스패닉과 흑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민주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여성의 권리와 성소수자의 인권 등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샌더스의 생각이고, 앞으로도 더 큰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회주의자답게 그 문제를 이렇게 해석한다. "노동자 계급의 상당수가 흑인, 히스패닉, 여성이다. 이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두 어젠다에서 모두 진보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게 민주당이 승리하는 방법인데,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정체성 정치만 하는 정당으로 보이는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실패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인종주의자, 성차별주의자, 성소수자 혐오 세력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트럼프 지지자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게 샌더스의 설명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 계급이다." 그런 그들에게 경제 문제를 이야기해야지, 성정체성 어젠다를 가지고 접근하면 그들은 민주당의 엘리트가 설교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고, 선거 결과를 보면 샌더스의 생각은 크게 틀린 것 같지 않다.
민주당이 정체성 정치에 몰두하는 것을 본 트럼프는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이 추구하는 DEI(Diversity, Equity, Inclusion,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를 나쁘고, 불공정한 것으로 묘사해서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했다는 건데, 샌더스는 그런 트럼프의 전략이 성공한 것은 민주당이 일반 유권자들이 느끼는 고통을 인정하고 그걸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게 비판의 핵심이다. 트럼프가 DEI를 공격해도 민주당이 유권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의 패배는 커뮤니케이션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계급의 권익을 위해서 (적어도 트럼프와 공화당보다는 더) 노력하고도 정체성 정치를 내세우는 바람에 상대의 공격에 노출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면 이쯤에서 팟캐스트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업계에서는 이번 선거를 팟캐스트 선거라고 부를 만큼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한 미디어가 팟캐스트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 1위의 팟캐스트가 된 조 로건(Joe Rogan)의 팟캐스트는 도널드 트럼프와 러닝메이트 JD 밴스를 각각 초대했고, 이들과 대화를 나눈 진행자 로건은 트럼프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의 팟캐스트를 들은 사람 중에 실제로 투표소가 간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정말로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분석을 해봐야 하겠지만, 전통 미디어에서 오디언스가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팟캐스트의 위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선거는 그런 팟캐스트의 영향력을 재확인해 준 선거다.
그럼 카멀라 해리스는 팟캐스트를 무시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해리스는 여성이 진행하는 콜허대디(Call Her Daddy)에 출연해서 젊은 여성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하지만 콜허대디의 도달할 수 있는 오디언스는 조 로건의 팟캐스트(Joe Rogan Experience)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청취율에서 1위와 29위의 차이다.) 그렇다면 해리스는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도 출연했어야 한다는 게 버니 샌더스의 아쉬움이다. 조 로건이 카멀라 해리스를 팟캐스트에 초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로건은 해리스를 초청했지만, 해리스가 거절한 것이다. (샌더스를 인터뷰한 뉴욕타임즈의 기자는 로건 팟캐스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해리스가 출연할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을 우려한 결정이라고 추측한다.)
샌더스는 그 결정을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한다. 2020년 대선 때 뉴욕타임즈는 경선에 나선 주요 후보들을 불러서 20명의 기자들과 한 자리에서 대담을 하게 한 후, 각 기자에게 표를 두 개씩 주고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게 했다. 샌더스는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1, 2위를 달리는 인기 후보였지만, 뉴욕타임즈 기자들에게서는 총 40표 중 단 한 표를 받는 데 그쳤다.
"뉴욕타임즈는 저를 그 정도로밖에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지금 뉴욕타임즈 팟캐스트에 나와서 기자님과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뉴욕타임즈 팟캐스트에 나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조 로건 팟캐스트에 나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조 로건은 2016년에 샌더스를 공개 지지했다. 로건의 정치적 성향이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당 지지에서 트럼프의 공화당 쪽으로 옮겨간 것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겠지만, 샌더스 보기에는 도달력이 큰 미디어가 있는데 출연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게 샌더스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하는 방식이다. 평생 미국에서 인기없는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주류 언론의 외면을 받았던 샌더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태도일 거다.
하지만 샌더스는 해리스가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 출연하지 않은 것을 민주당의 단순한 전술적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나가면 조 로건은 "왜 과거보다 소득 불균형이 심각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선진국 중에서 미국만 온 국민에게 의료보험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까?" "왜 미국에서는 같은 약에 훨씬 더 많은 돈을 내야 합니까?" 같은 질문을 던질 텐데, 보험업계와 거대 제약사의 로비 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은 그런 질문에 솔직한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가지 않았다는 거다.
버니 샌더스는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의 실패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의 실패를 지적하는 것이고, 그 문제의 핵심에는 자본과 정치의 결탁이 있다. 이는 낸시 펠로시가 샌더스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 혹은 그의 지적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펠로시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유권자 다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버몬트주에서 해리스는 샌더스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In fact, Kamala Harris ran ahead of Bernie Sanders in Vermont)"는 말로 표현했다. 민주당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그 얘기를 꺼내자, 샌더스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홍보비로 한 푼도 쓰지 않고 선거에서 63%를 득표해서 당선되었습니다." 해리스와 민주당이 기업과 부자의 기부금에 의존해서 효과가 불분명한 정치 홍보에 돈을 쓰고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는 펠로시를 잘 알고 오래 함께 일하면서 중요한 정책을 함께 추진했음을 이야기하며 펠로시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펠로시와 자기가 가진 미래에 대한 비전은 다르다고 말한다. "워싱턴 안에서는 펠로시의 견해가 우세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정치 컨설턴트와 방송에 나와서 얘기하는 사람들(pundits)은 펠로시의 말에 동의하겠죠. 하지만 워싱턴을 벗어나 미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시면 대부분의 유권자는 제 생각에 동의할 겁니다."
그럼 민주당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어떤 정치인이 그 역할을 하게 될까?
기자의 이 질문에 샌더스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된다"면서, 노동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정치인, 현재 미국에서 지나치게 커져 버린 대자본(big money)의 이해와 영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인을 기대했다. "AI와 로봇의 등장으로 이제 우리는 모두가 충분히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고, 빈곤을 없앨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기술을 누가 통제하고, 누가 그 기술로 이익을 얻느냐, 입니다. 우리는 기업가 정신을 환영하지만, 탐욕은 통제해야 합니다. (기업가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버니 샌더스의 바람대로 민주당은 노동자 계급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인을 내놓을 수 있을까? 샌더스는 앞으로 2년 안에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 사이 공화당에서는 트럼프주의를 이어갈 정치인이 힘을 키우게 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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