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는 미확인 미행 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 즉 하늘에 떠다니는데 그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물체를 말한다. 이를 외계인과 동일시해서 "UFO의 존재를 믿느냐"라고 묻는 건 잘못된 질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이유는 다양할 수 있고, 외계에서 온 비행체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UFO를 외계인과 동일시하는 건 이 현상이 대중문화에 비쳐진 방식 때문이다. 그 결과, 군이나 정부 관계자가 이 현상을 진지하게 논의하려고 해도 "UFO"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사람들은 "외계인"이라고 이해해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고민 끝에 미국 정부는 이런 문화적 함의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냈다. 바로 UAP (unidentified aerial phenomenon), 미확인 공중 현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unidentified anomalous phenomenon, 미확인 특이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UFO가 친숙한 명칭이고, 그래서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UAP를 검색하면 UFO 페이지로 이동한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해야 한다. 오히려 모호한 게 더 나은 경우가 없는 건 아니어도 대부분은 오해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발표나 발언이 오해되어서 생길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져야 할 책임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그렇다. 미국은 최근 영공을 침입하고 있는 풍선 등의 비행체를 계속 격추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이를 발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은 "미확인 물체" 혹은 "고고도(high-altitude) 물체"였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를 단순히 "물체"라고만 부르는 이유를 "우리는 이게 누구의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달 미국을 가로지른 후 격추된 고고도 풍선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언론은 이들 비행체가 중국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한다. 제일 처음 격추한 풍선이 중국의 것임은 이미 중국 정부가 인정했고, 그 일 이후에 중국이 비슷한 풍선을 세계 여러 지역에 많이 날려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각 비행체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중국의 것이라고 함부로 발표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사실과 다를 경우 정부 발표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중국이 항의할 빌미를 줄 수 있어서 그렇다. (첫 풍선을 떨어뜨린 이후에 미국이 추가로 격추한 비행체들은 중국의 풍선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보도가 있다.)

흥미로운 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날아오는 풍선들에 긴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내가 2017년에 어느 과학 팟캐스트(Radiolab)를 듣다가 알게 된 내용이다. 글에서도 설명하겠지만 당시 이 이야기가 팟캐스트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난생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음모론이나 허위정보는 아니었고, 그 일이 처음 일어났을 때 미국 정부가 국민에게 극비로 취급하는 바람에 알려지지 않았고, 훗날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잊혔을 뿐이다.

사건의 핵심은 2차 세계 대전의 일부였던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과 싸우던 일본이 1944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풍선에 폭탄을 실어 미국의 본토에 보낸 일이다. 미국은 이때 일본이 하늘에 띄운 풍선은 약 9,000개로 추산하고 있다. 요즘 중국이 전 세계로 보내고 있다는 풍선의 개수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숫자다. 그중 대부분이 태평양을 건너는 중에 실종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소 수백 개의 풍선이 미국 대륙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미국의 전시 정보통제가 그만큼 철저했다는 얘기다. (정부 비밀 요원이 나타나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클리셰는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다.)

함부로 입을 열면 배가 침몰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 포스터는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 정부가 국민에게 적국의 정보 수집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선전)의 일환이었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본의 풍선 공격은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본토에서 민간인 사망자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일본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쳤고, 무엇보다 미국인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려던 심리전은 미국 정부의 철저한 대응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이 극비로 취급했던 일본 풍선의 공격 이야기는 결론보다 훨씬 흥미롭고, 당시 사회의 모습과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소개하기로 한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지금 중국과 미국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일과 닮은 구석이 많다.

아래의 글은 앞서 언급한 팟캐스트를 중심으로 풀어가되, 몇 개의 다른 자료들을 참고로 사용했다.


1944년 12월,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의 작은 도시 서모폴리스(Thermopolis) 외곽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 세 명이 근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다가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1~2km 떨어진 계곡 반대편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해가 지고 있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낙하산 비슷하게 생긴 흰 물체가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게 낙하산이라 생각한 광부들은 차에 올라타고 추적했으나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국 와이오밍주 서모폴리스 (이미지 출처: YouTube)

비슷한 시점에 약 800km 떨어진 콜로라도주에서도 똑같은 폭발음이 들렸고, 네브래스카주, 몬태나주, 아이다호주, 캘리포니아주, 애리조나주, 심지어 중서부 미시건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목격한 사람들의 설명은 조금씩 달랐지만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폭발이었기 때문에 미군은 전국 지역 경찰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정보를 전달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유타주의 한 보안관(sheriff, 도시를 담당하는 경찰과 달리 카운티 전체를 담당한다) 워렌 하이드는 한 농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 농부는 자기 농장에 이상하게 생긴 물건이 떨어졌다며, 그 모양이 풍선 같기도 하고 낙하산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하이드는 바로 차에 올라 농장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 지금이 약 10m에 달하는 커다란 풍선이었다. 하지만 풍선이 전부가 아니었다. 풍선 아래로 연결된 약 12m의 밧줄에는 금속으로 된 샹들리에처럼 생긴 물건이 매달려 있었고, 거기에는 여러 개의 폭탄이 붙어있었다.

하이드는 이 풍선을 끌어 내리기 위해 밧줄 중간 부분을 붙잡았는데 그의 위에는 풍선이, 아래에는 폭탄이 매달린 채로 허공으로 몸이 떠버렸다고 한다. 그가 매달린 상황에서 바람에 풍선이 하늘로 떠올라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어느 순간 그는 잡고 있던 밧줄을 놓아서 떨어지다가 다시 밧줄의 아랫부분을 붙들었고, 그 힘으로 풍선을 끌어 내려 근처 잡목에 고정할 수 있었다.

1945년 캔자스주에 떨어진 풍선 (이미지 출처: Military.com)

하이드 보안관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끌어내린 풍선과 폭탄 장치를 메릴랜드주 애버딘에 있는 육군 연구소에 보냈고, 그 공로로 당시 FBI의 국장이었던 J. 에드가 후버에게서 감사장을 받았다. 미국 정부는 그렇게 전국에서 습득한 풍선과 폭탄 장치를 살펴보며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했다.

우선 폭탄이 일본에서 만든 것임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태평양 너머에 있는 일본이 어떻게 미국 본토에 풍선을 보낼 수 있었느냐였다. 지금은 성층권에 제트기류(jet stream)가 흐른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풍선을 일정 고도 이상으로 띄우면 며칠 만에 미국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일본이 잠수함으로 태평양을 건너 폭탄이 장착된 풍선을 날렸거나, 미국 내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풍선을 날렸을 가능성, 심지어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일본계 미국인 강제 격리 수용소에서 풍선을 띄웠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들을 적국의 국민으로 취급해서 미 전역에 있는 수용소에 격리했다.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에 있었던 수용소들의 규모가 크고 잘 알려져 있었다. (이미지 출처: History.com, Los Angeles Times)

그러던 중 풍선이 출발한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를 찾게 되었다. 폭탄이 매달린 풍선 하나가 알래스카에 착륙한 것을 원주민이 발견한 것이다. 다른 풍선들과 달리 이 풍선에는  모래주머니가 두 개 매달려 있었다.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모래주머니는 풍선이 고도를 유지하며 태평양을 건널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의 일부였다.)

그 안에 든 모래가 비밀의 열쇠를 갖고 있었다.

일본이 미국 본토로 보낸 풍선의 구조. 맨 아래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Reddit)

'풍선의 습격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