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우비 입력기보다 한어병음 입력기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애초에 한어병음을 학교에서 가르치게 했던 이유와 같다. 바로 중국어 통일 작업 때문이다.

중국어의 종류로 북경어(Mandarin)와 광둥어(Cantonese)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방언이 존재한다. 이들 중 많은 방언이 우리식의 사투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발음을 갖고 있어서 구어로는 대화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지역 사람들끼리도 글로는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한자야말로 중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국 문화의 핵심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드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문화 요소가 있다면, 그건 말이 아니라 글, 즉 한자다.

중국에 지역별로 존재하는 다양한 방언들 (이미지 출처: That's)

하지만 중국 정부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구어도 북경어 하나로 통일하려 하고 싶어 한다. 다양한 민족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 차이를 없애면 하나의 정부, 하나의 국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효과적으로 잠재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어쩌면 서로 말이 다른 지역들은 완전한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잉글랜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 영상을 한 번 보라), 웨일즈 사람들이 사용하는 웰시(Welsh)라는 언어는 영어가 아니다. (이 사람의 말과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영어 자막을 비교해 보라.) 물론 일부 지역이 종종 독립을 시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국이 현대 국가로서 통합을 유지하는 방법은 언어의 통일이 아닌 민주주의에 기반한 의사결정과 합의다.

한어병음 입력기는 그런 의도를 가진 중국 정부가 북경어 사용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푸젠성 등지에 사는 주민이 자신이 말할 때 사용하는 민어(閩語)의 발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입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북경어 발음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만 한어병음을 가르치고 만다면 곧 잊고 살겠지만, 컴퓨터에서 한자를 입력하려면 반드시 북경어로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반면 왕용민이 개발한 우비 입력기를 사용하면 한자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북경어 발음은 몰라도 된다. 이런 장점과 함께 타자 속도도 빠른 우비 입력기를 중국 정부가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언어(구어)의 통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비 입력기의 등장과 함께 없애버렸던 중국어 개혁 위원회도 부활시켰다.

쿼티 효과

별생각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키보드, 혹은 입력기가 정말로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일까? 2000년대 초 영국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웹에서의 쿼티 효과(The QWERTY Effect on the Web)'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쿼티 키보드의 사용자들이 키보드 오른쪽에 배치된 글자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고, 이 때문에 이 글자들로 구성된 단어들에 대해 무의식적인 호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L, P, O, K, J, M 같은 글자가 들어간 단어를 Q, W, E, X, Z, R이 들어간 단어보다 선호한다는 얘기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이 논문의 저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령 E보다 O를 선호하는 경향이 영국과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인들에게서 나타났다. 언뜻 생각하면 오른손잡이가 보이는 선호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른쪽 배치 글자에 대한 선호는 왼손잡이들 사이에도 똑같이 나타난다고 한다.

논문 링크

그렇다면 애초에 쿼티 키보드를 디자인한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글자들을 오른쪽에 배치했기 때문 아닐까? 그런 것 같지 않다. 몇 년 전에 나온 연구에서는 1960년대부터 2012년까지 미국의 사회보장국(주민등록제도가 없는 미국에서는 가장 방대한 이름 정보를 갖고 있다)에 등록된 미국인들의 이름들을 분석했는데, 쿼티 키보드가 보편화된 1990년을 기준으로 그 이후부터 오른쪽에 들어간 글자로 시작하는 (가령 Leah, Paul 같은) 이름에 대한 선호가 급증했다고 한다. 이게 위의 논문 저자들이 주장하는 '쿼티 효과'다.

중국의 한자 입력기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존재할까? 이를 연구하려던 대학원생들이 있었지만, 워낙 다양한 입력기가 사용되고 있어서 적절한 연구방법론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입력기 발전 상황을 보면 쿼티 효과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바로 AI를 사용한 클라우드 입력(cloud input) 때문이다.

클라우드 입력은 우리가 항상 사용하는 구글 검색 창의 자동 완성과 다르지 않다. 가령, 누구나 잘 아는 유명한 가수의 발언, 혹은 범죄행위가 큰 뉴스가 되었다고 하자. 어느 사용자가 구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구글의 AI는 이 특정 사용자는 과거에 그 이름을 검색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갑자기 검색하는 이유를 추론한다. 그리고 오늘 같은 이름을 검색한 다른 사용자들이 이 가수와 관련한 어떤 내용, 뉴스를 검색했는지 확인한 후 이 특정 사용자도 같은 내용이 궁금해서 검색한 것으로 추정하고 다음에 쓸 내용을 먼저 추천한다. 그렇게 하면 사용자는 키보드를 더 누를 필요 없이 원하는 내용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만 보게 되는 이 기능이 키보드를 사용할 때마다 끊임없이 사용해야 한다면? 그런데 이게 중국의 한자 입력기가 발전해 온 방향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창작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키보드를 사용해 텅 빈 화면에 글자로 적어 넣는다. 문장을 어떻게 끝낼지 모르고 쓰기 시작했는데 내 머리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가는 AI가 내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적절한 다음 단어를 제시한다면 어떨까?

작년 말부터 전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는 챗GPT의 별명이 "glorified autocomplete"이다. 그러니까 좀 나은, 미화된 자동완성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건 GPT 기술이 우습다는 게 아니라, GPT의 작동 방식이 다음에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를 예측하는 것이고 의식이 있는(sentient)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는 거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새로운 세대의 한자 입력기 역시 발전된 자동완성이다. 그리고 클라우드 입력이 적용된 한자 입력기를 사용하는 중국인들은 이미 AI와 함께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이 글의 바탕이 된 에피소드는 챗GPT의 열풍이 불기 이전인 2020년에 방송되었다. 여기에 인터뷰이로 등장한 스탠포드 대학교의 톰 멀레이니(Tom Mullaney) 교수는 글쓴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를 입력기가 빠르게 보여준다면 입력기는 함께 글을 쓰는(co-writing) 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적절한 단어를 나보다 더 빨리 생각해 내는 존재가 나와 함께 글을 쓴다면 나는 AI의 조종을 받지 않고 글을 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오피스 프로그램에 넣기로 한 기능을 발표했는데, 그 이름이 Copilot(부조종사)이었다.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말하자면 중국은 이런 작업을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 셈이다. 중국으로서는 컴퓨터 세상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한자 입력이라는 거대한 용을 무찌르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기술만 습득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무기까지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 정부는 중국의 기업들이 개발하는 생성 AI가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의 법제화를 위한 원칙을 발표했다. "생성 AI가 만드는 콘텐츠는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를 구현해야 하며, 국가 권력을 전복하거나 사회주의 체제의 전복을 옹호하거나 국가의 분열을 조장하거나, 국가의 통합을 저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내세우는 이런 원칙이 클라우드 입력기에 적용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검색어 자동 완성 역시 AI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 기술을 만든 사람들, 그 기술을 통제하는 사람들의 견해와 생각, 주장은 어떤 방법으로든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누구나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절차가 그 사회에 얼마나 굳건하게 존재하느냐일 것이다. 인류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얕잡아 봤을 때처럼 잠든 채 새로운 기술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이런 다짐과 노력 없이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건 순진한 희망사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