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 댓글 1개 보기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10월, 미국 예일 대학교 병원의 불임 클리닉에서 일하는 마취과 의사가 병원에서 사용하는 진통제인 펜타닐의 약병(바이알)이 너무 쉽게 열리는 것을 발견했다. 불임 클리닉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시술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아편계 진통제인 펜타닐을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마약, 특히 요즘에는 아편계 마약 중독이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펜타닐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마취과 의사가 약병이 쉽게 열린 사실에 주목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의사가 병원에 보고하면서 시작된 조사 결과, 그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5개월에 걸쳐 무려 175병의 펜타닐을 훔치고, 약병에 식염수를 채워 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명 병원에서 환자에게 투여되던 펜타닐의 75%가 마약 중독에 빠진 간호사의 손에 훼손된 상태였다.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시술에 쓰이는 중요한 진통제가 도난당한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5개월이나 걸렸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마취과 의사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게 분명한 환자들을 통해 문제를 발견한 게 아니라, 약병을 살펴보면서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두 개의 의문에 대한 답은 하나다. 의사들은 여성 환자가 겪는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진이 진통제라고 믿고 식염수를 주사했다면 환자들은 당연히 고통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작은 고통에도 불평한다'고 생각한 의사들이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런 얘기를 항상 들었던 여성 환자들 중에는 아파도 입을 열지 않고 참았을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 모든 다이내믹을 잘 아는 간호사는 들키지 않을 것을 알고 마음 놓고 진통제를 훔쳤을 것이다.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기사가 나간 후에 많은 여성들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후속 취재 결과, 기자는 미국에서 임신, 출산과 관련해서 산부인과를 찾은 여성 중에는 마취제나 진통제가 듣지 않아 수술 내내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가 무려 8%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자가 너무 아프다고 말하는데도 의사나 간호사가 듣지 않는 이유는 'It's all in her head,' 그러니까 의사가 대처해야 할 심각한 통증이 아니라, 환자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혹은 증폭시킨) 통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통증은 머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진통제는 통증의 원인을 없애는 게 아니라, 머리가 감지하게 하지 못하는 약이다. 따라서 여성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의료진이 'It's all in her head'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큰 문제다.
오늘 소개하는 책,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의 원제가 바로 'All In Her Head'다. 저자 엘리자베스 코멘(Elizabeth Comen)이 종양내과 전문의로서, 자기가 배우고 성장한 서구 의학계가 여성과 여성의 몸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된 원인과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흔히 하는 농담 중에 "남자들은 감기만 걸려도 죽는 시늉을 한다"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 아픈 데가 전혀 없다가 남자들은 그냥 흔한 감기에 걸려고 드러눕고 생난리를 떠는데, 크고 작은 통증에 익숙한 여성들은 (실제로 여성이 진통제를 더 많이 복용한다) 그냥 알아서 약을 챙겨 먹고, 가사 노동을 한다는 거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두통, 생리통을 비롯해 각종 통증에 시달리는 여성에 비해 남성은 특별한 병이 없는 한 만성적인 통증이 흔하지 않다는 사실이 있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작동할 수 있다. 여성이 더 많이 표현하고, 더 쉽게 진통제를 찾는 것일 뿐, 통증 자체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이다. 여성과 남성은 생리학적, 해부학적으로 크게 다른 존재인데 둘을 같은 존재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코멘에 따르면 서구 의학에서 이런 사고방식의 뿌리는 아주 깊어서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지금도 많은 의사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은 (남성의) 기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살구색, 연주황색으로 부르는 색깔을 우리는 한때 '살색'이라고 불렀다. 그게 피부색의 표준이면, 다른 피부색은 기형이거나 변이가 되는 것처럼, 인체를 남성을 기준으로 이해하면 여성의 신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혹은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어처구니없지만, 이게 서구 의학의 역사를 지배해 온 접근법이다.
남성이 이해하는 여성의 몸
미국의 어느 코미디언이 여성의 해부학 구조는 남성 의사들의 이름으로 가득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팔로피오'관, '그라프' 난포, '바르톨린' 선, '코벨트' 정맥총, 그리고 그 유명한 G(Gräfenberg)스폿까지, 여성의 각종 해부학 구조에는 그것을 "발견한" 백인 남성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백인 남성들이 여성의 해부학에 집중하고 자기 이름을 붙이던 때는 유럽 국가의 대항해, 그리고 식민지 개척 시대와 겹친다. 식민 지배자들이 선주민이 살고 있던 땅을 발견했다며 앞다투어 자기 이름을 붙이던 행동과 서로 먼저 발견했다며 자기 이름을 붙이려고 다투던 남성 의사들의 행동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두 경우 모두 이름 붙이기는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은 백인 남성의 시각에서 대상을 바라봤고, 그 대상은 주체성을 상실한 채 객체로 전락했다. 수천 년 이어진 문화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미개한 전통처럼 보이듯, (환자이든 혹은 여성의 몸을 잘 아는 산모이든) 여성의 의견은 의학을 공부한 남성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여성의 몸은 그들이 발견한 미지의 세계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남성 의사들이 객관적 관찰자, 편견 없는 과학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남성 중심의 세계관, 인체관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서양 의학은 단순히 여성에게 불리한 것을 넘어 심각한 차별의 역사를 낳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은 남성 의사들이 여성 환자를—나중에는 여성 동료를—어떻게 생각하고 취급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 환자가 어떻게 오해받고, 끔찍한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를 역사와 생생한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남성 의사가 여성 환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는 귀를 뒤로 붙이는 성형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유방 확대 수술을 받으라고 권하는 의사다. 환자는 두 번이나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남성 의사는 "유방 확대 수술에 동의하면 귀 수술도 해주겠다"고 강권한다.
유명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싶었던 그 여성은 결국 동의한다. 저자는 성형외과의 남성 의사들은 환자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여성의 신체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영화배우 샤론 스톤(Sharon Stone)이 자서전에서 밝힌 자신의 성형수술 경험담이다.
2001년 가슴에서 거대한 양성 종양이 자라는 것을 알게 된 스톤은 이를 제거한 후 원래의 가슴 형태로 복원하기 위한 유방 재건 수술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의 가슴이 한 컵 사이즈 더 커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의사가 환자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더 큰 보형물을 삽입한 것이다. 이를 항의하는 샤론 스톤에게 집도한 의사의 답변은 "당신의 골반 사이즈에는 더 크고 '더 나은' 가슴이 더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자신의 취향대로 여성 환자의 몸을 바꾼 것이다.
남성 의사가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을 만들려는 노력은 성형외과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19세기 말 의학서적에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하면서, 과도한 운동으로 "안구 돌출, 정신 붕괴, 생식기 기형"을 겪은 환자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실존하지 않는 환자를 꾸며낸 허구의 사례였다.
엘리자베스 코멘은 당시 의학서적이 가상의 환자를 만들어낸 이유를 설명하면서,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이야기한다. 인체에는 유한한 양의 에너지가 있는데, 여성이 운동을 하면 그 귀중한 자원이 생식 기관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낭비된다는 게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이어져 온 '의학 상식'이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에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자, 여자가 자전거를 타면 피로와 신경과민, 불안증, 갑상선종, 염증, 이질 등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얼굴이 변한다며 "자전거 얼굴"(bicycle face)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걸 왜 그토록 싫어했을까? 한 의사가 (아마도 무의식중에) 솔직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는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골반이 변형되어 아이를 낳기 힘들어진다"라는 다른 의사들의 주장은 틀렸다면서, "자전거를 타는 여성이 자전거에서 내려 임신을 하고 충분한 수의 자녀로 구성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즉, 남성 중심의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여성이 하지 않게 될 것을 우려한 거다.

남성들의 걱정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학계는 자전거의 안장이 여성에게 성적 흥분을 유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남자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을 읽다 보면 남성 의사들이 여성의 자위를 아주, 아주 많이 걱정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피부와 뼈, 근육처럼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기관계로 시작해서 점점 그 차이가 극명해지는 기관으로 옮겨가는데, 의사들의 무지와 편견은 뒤로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한다. 남성 의사들이 갱년기 여성에게 호르몬 요법을 권장했던 이유는, 호르몬 요법을 통해 여성들이 "함께 살기에 훨씬 유쾌할 것이고, 지루하거나 매력 없는 여성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여성은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여성이라는 태도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은 단순한 폭로나 고발이 아니라, 지식 부족에서 출발한 편견이 시스템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가 예로 드는 남성 의사 중에는 환자의 이빨을 모두 뽑아버리는 광기에 찬 사람도 있지만, 진지한 노력을 통해 현대 의학을 발전시킨 위대한 사람들도, 당대 기준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남성들도 있다. 그들은 의사라는 자신의 업에 충실했지만, 편견에 기반한 시스템 안에서 그들의 선한 의도조차 왜곡된 결과로 이어졌다. 심지어 현업 의사이자 여성인 저자(4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도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5장(숨–호흡계)에는 이 책이 가진 중요한 교훈을 보여주는 사례가 등장한다. 남편이나 동거인이 목을 졸라 응급실에 실려 온 여성 환자들은 저산소증으로 인해 공격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게 폭행 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의사가 폭행의 흔적이 되는 그 흔적을 쉽게 놓친다는 것인데, 한 응급실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목 졸림 사건에서는 보통 손자국이 보여요. 하지만 무엇을 찾아내야 할지 알고 눈여겨보아야 보입니다." 이 말을 한 의사도 여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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