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지만, 많은 미국인이 지난 한 달이 1년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가 취임 당일부터 행정명령(executive order)과 각종 조치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한 달에 한 번 볼만한 큰 뉴스가 매일 쏟아지니, 정신적인 피로를 느낀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내리는 행정명령의 숫자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트럼프의 명령 중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다. 가령, '트럼프 폭풍'에서 이야기한 미 국제개발처(USAID)의 폐지가 그렇고, 지금 진행되는 공무원 대량 해고가 그렇다. 트럼프는 왜 자기 권한을 벗어난 명령을 내리는 걸까?

트럼프는 궁극적으로 행정부, 즉 대통령 권한의 확장을 노린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나온 뉴스만 해도 그렇다. 백악관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 통신위원회(FCC)와 같은 의회가 설립해 그 독립성이 보장된 기관들이 규제를 결정하기 전에 백악관에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의 관행에서는 엄연한 월권행위이지만, 트럼프는 이런 명령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키우려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를 그냥 보고 있어야 할까? 이를 저지할 방법이 있다. 헌법에 위배되는 행정명령을 막도록 연방 법원에 소송을 내는 거다. 그러면 연방 법원 판사는 사안을 살펴 일단 정지명령을 내려서 대통령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재판을 진행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들은 법원이 제동을 거는 것을 "대통령의 적법한 통치를 방해하는 불법 행위"라며 규탄하고—그런 규탄 자체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법원의 판단을 지켜본다. 만약 법원이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면 대통령의 권한은 그만큼 확대되는 것이고, 소송에서 패하면 거기까지가 대통령의 권한인 거다. 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는 전부 법으로 명확하게 정해진 게 아니고, 여야가 암묵적으로 합의된 규범을 따르는 것들이 많다. 트럼프는 이런 과거의 관행이나 규범을 모두 어기면서 대통령 권한의 한계선을 테스트하고 있다. 재판에 승소해서 합법성을 인정받으면 그만큼 대통령의 권한은 강화된다.

이게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마구 쏟아내는 이유다.

그렇게 나온 행정명령 중 하나가 '멕시코만(Gulf of Mexico)'을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막는 소송을 내기 위해서는 법을 잘 알고 경험이 많은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 거대한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두 명의 변호사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거대한 로펌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그런 일을 잘하기로 소문난 곳이 1920년에 설립된 비영리 인권 단체 미국 시민 자유 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이다.

"비영리 인권 단체"라는 말을 들으면 한국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같은 단체를 떠올리기 쉽다. 1988년에 설립된 민변은 인권, 시국 사건의 변론을 맡은 진보적인 변호사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ACLU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민변이라는 틀로 ACLU를 바라보면 큰 오해를 할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는 ACLU는 진보적인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ACLU는 "미국 최대의 공익(public interest) 로펌"이라고 불린다. ACLU는 미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진보적인 단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독재 체제를 경험했던 한국의 역사에 기반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장되어 왔기 때문에 그 방향을 '진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안에 따라서는 보수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가령, 미국의 총기 규제가 그렇다. 진보적인 미국인들은 총기 소지의 자유, 혹은 권리를 제한해서라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사실상 미국의 제외한 모든 선진국에서 그렇게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다면 그게 진보라고 생각하는 거다. ACLU는 이런 진보적 어젠다에 동의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미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와 자유만을 추구하는 단체라서 그렇다.

뉴욕에 본부를 둔 ACLU는 미국 전역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물론 미국에서도 1920년에 설립된 ACLU가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인종차별 등의 이슈를 두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워온 역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보적인 단체라고 보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21년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ACLU는 대표적인 인종주의 단체인 KKK와 미국 내 네오나치의 발언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진보적인 단체라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ACLU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ACLU의 변호사들은 그런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법에 명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옹호할 뿐이기 때문이다. 각종 기부금과 160만 명의 회원이 내는 연회비, 자원봉사로 이뤄지는 비영리 단체이고,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지원도 받지 않는다. 상근 변호사만 300명에 2,000명의 자원 봉사 변호사가 이 단체의 소송을 지원해서 한 해에 무려 2,000여 건의 소송을 진행하는 대규모 로펌인 셈이다. 한 설명에 따르면 ACLU는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미국의 연방 법무부 다음으로 가장 많은 소송을 진행하는 조직이다.


ACLU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단체가 탄생한 1920년 당시 미국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이었다. 우리에게는 민족자결주의로 잘 알려진 사람이지만, 사실 미국에서의 평가는 좋지 않다. 민주당 출신이지만, 당시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입장은 지금과 거의 정반대였기 때문에 (당시 공화당은 링컨을 배출한 정당답게 진보적이었다) 윌슨이 KKK같은 백인우월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왼쪽)과 그의 법무장관 A. 미첼 파머
이미지 출처: Library of Congress

더 중요한 건 그의 집권기(1913~1921)가 러시아가 혁명을 통해 공산화된 시기라는 사실이다. 당시의 공산주의는 20세기를 통과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훨씬 더 이상주의적인 성격이 강했고, 한반도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많은 사상적 동조자를 갖고 있었다. 이런 공산주의 사상이 미국에 침투하는 것을 크게 경계한 우드로우 윌슨은 법무장관 A. 미첼 파머(A. Mitchell Palmer)에게 지시해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을 체포하게 한다. 1919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미국에서는 법무장관의 이름을 따서 '파머 습격(Palmer Raids)'이라 부른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졌던 좌파 지식인 중에는 동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가 많았고, 아나키스트들 중에는 이탈리아계가 많았다. 게다가 노동자 권리의 확장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에서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이민자들이다. 따라서 우드로우 윌슨이 주도한 파머 습격이 미국인들 사이에 퍼져있던 인종주의적, 반이민주의적 성격을 띈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윌슨 대통령의 지시로 파머 장관이 진행한 대대적인 습격, 수색 작전으로 미국 전역에서 약 5,000명이 체포되었다.
이미지 출처: Explore PA History

윌슨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따르는 사람들이 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급진주의자라고 생각했고, 미국의 간첩법(Espionage Act)와 선동법(Sedition Act)를 사용해 이들을 체포, 구금한 것은 물론이고, 일부는 아예 해외로 추방하기도 했다. 그들의 사상이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믿었던 거다. 지금은 당시 윌슨의 정책을 '제1차 적색공포(First Red Scare. 제2차 적색공포는 한국에서도 악명 높은 매카시즘)'으로 분류하지만, 미국 연방정부의 이런 행동이 시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분노한 사람들, 특히 법률가들이 단결해서 1920년에 결성한 단체가 바로 ACLU다.

당시 미국의 분위기와 트럼프 2기를 맞은 현재 미국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백인우월주의에 편승한 대통령이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인의 불만을 이용해 미국 시민이 가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월권행위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고립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까지 똑같이 닮았다. 즉, 지금 미국의 상황은  ACLU가 탄생한 시점과 아주 흡사하다. 많은 미국인이 ACLU의 역할에 주목하는 이유가 그거다.

무엇보다 현재 ACLU를 이끌고 있는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앤서니 로메로(Anthony Romero)가 바로 그 사람이다.

앤서니 로메로 ACLU 디렉터
이미지 출처: APB Speakers
ACLU는 회장과 전무이사가 지휘한다. 2024년 3월 기준으로 데보라 아처와 앤서니 로메로가 각각 그 자리를 맡고 있다. 회장은 ACLU 이사회의 장(長)으로서 자금 조달을 총괄하고 의제 설정을 촉진한다. 전무이사는 조직의 일상적 사무를 관리한다. 이사회는 미국 각 지부의 대표를 포함한 80인으로 구성된다. (출처: 위키피디아)

'가장 사나운 로펌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