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붙잡고 "인공지능에 직업을 뺏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질문을 해보면 반드시 듣게 되는 대답 중 하나는 "창의력을 기르라"라는 말일 거다. 미드저니, 달리(DALL·E),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흉내 내는 게 인간의 창의력이지만, 인간은 기계와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여전히 창의력(creativity)에 매달린다. 마치 창의력이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인 것처럼.

하지만 정말로 인간을 기계와 구분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창의력일까? 우리는 그렇다고 배웠다. 농업경제를 졸업하고 공업화에 성공한 사회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창의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한때 한국 사회가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라는 단어에 집착했던 것은 단순히 특정 정권의 홍보 노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20세기 후반 제조업으로 성장한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국형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 먼저 선진국이 된 나라들은 어땠을까? 그들도 어느날 갑자기 창의력과 창조경제에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답은 '그렇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창의력이 모든 문제의 해답인 것처럼 여기게 된 것 자체가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 이 단어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The Cult of Creativity (창의력 컬트)'라는 책에서 저자 새뮤얼 프랭클린(Samuel W. Franklin)은 미국인들이 창의력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도 아닌, 20세기 중반이라고 설명한다. 창의력이라는 건 인류가 뒤늦게 "발명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아랫 글은 그가 Throughline에서 했던 인터뷰를 요약한 것이다. 이 인터뷰에 등장하는 사례나 관련된 내용은 이 기사이 기사에서도 볼 수 있다.


창의력과 관련한 영상, TED 토크, 사내 강연, 혹은 관련 서적을 펼쳐 보면 반복해서 듣게 되는 몇 가지 내용이 있다. 그중 하나가 "창의력에 관한 잘못된 신화 깨기"다. 가령 조나 레러(Jonah Lehrer)의 이 말이 그렇다. "창의력에 관한 오랜 신화가 영(0) 아니면 일(1)라는 생각입니다.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있고,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죠."

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게 "창의력은 예술가만이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깨는 것이다.

저자 새뮤얼 프랭클린과 그의 책

창의력 강사들은 더 나아가서 창의력은 누구에게나 아주 중요한 것이고,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의 일에서 창의력이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매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도, 프로 운동선수도 매일 결정을 하고 문제를 푸는 데 창의력을 사용한다"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창의력은 특별한 사람들만 갖고 있다는 생각을 고치고 싶어한다. "스티브 잡스나 밥 딜런 같은 사람들만 창의력이 있다는 것은 착각"이며 누구나 창의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창의력을 활용하지 못할 뿐이니, "스스로에게 창의적이 되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누구나 창의적인 사람이 되면 자기가 하는 일에서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먼저 창의력(creativity)이라는 단어를 보자. 아주 오래된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이 단어가 지금처럼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그것도 20세기 중반의 일이다. 1950년대 이전까지 이 단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단어가 아니다. 그랬던 단어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누구나 좋아하는 단어일 뿐 아니라, 아무도 창의력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건 좀 수상하지 않은가?

창의력의 발명

창의력이라는 단어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점은 미국 역사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문화적 순응(conformity, 사람들이 사회의 대다수가 가는 방향을 따르는 현상. 서구에서는 TV와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발달로 모두가 비슷한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위기감이 20세기에 들어와 커졌다–옮긴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던 시점과 겹친다. 이 시기에 미국인들 사이에는 진정으로 미국적인 가치, 미국을 특별하고, 다른 나라보다 뛰어가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인지에 관한 관심이 폭발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돌아온 군인들이 일제히 결혼하면서 주택이 부족해졌고, 미국 정부가 이들을 위한 주택을 보급하는 과정에서 교외지역(suburb)이 탄생했다. 이런 판에 박은 듯한 똑같은 삶의 방식은 이렇듯 같은 환경에서 같은 문화를 습득하면서 확산되었다. (이미지 출처: The American Yawp)

미국인들이 그때 발견한 것이 창의력이었다. 당시 창의력은 예술과 시,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자기 창조(self-creation)와 같은 낭만적인 사고방식과 미국인들이 오래전부터 중요하게 생각해 온 독창성과 발명 정신, 그리고 기계 기술의 혁신을 뭉뚱그려서 표현한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창의력이라는 표현에는 실용적인 것과 비실용적인 것, 진지함과 엉뚱함, 이윤의 추구와 자기만족의 추구처럼 상반된 요소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세상은 이렇게 상반된 가치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의력을 사용하면 이렇게 다양한 인간의 욕망을 아우르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에서 1950년대와 60년대를 지나면서 굳어졌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사람들은 창의력이 마치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창의력은 이렇게 '발명'된 것이다.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만들고, 새로운 발명을 하는 일이 20세기 중반에 처음 시작된 건 물론 아니다. 인류는 태곳적부터 자신을 표현해 왔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영리하게 일을 쉽게 하는 방법을 찾아 내 왔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노력에는 어떤 공통된 요소, 즉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욕망과 능력이 있다는 생각도 예전부터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르네상스나, 계몽주의, 낭만주의 시대도 따지고 보면 과거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창조'를 인간도 할 수 있다는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사람들은 여기에 'creativity'라는 '명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비로소 이 단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영역을 불문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특성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 거다. 왜일까?

1960년대 소련이 발사한 보스토크 우주선 모형.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이미지 출처: BBC)

미국인의 불안감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소련과 기술 경쟁에 돌입한다. 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호가 우주로 날아올라 미국을 가로질러 지나간 후 미국은 경쟁에서 뒤지고 있다는 심각한 위기감에 빠졌다. 게다가 모두가(사실은 백인들에 국한된 얘기다–옮긴이) 교외 지역에 살면서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며 똑같은 물건을 사고, 똑같은 TV와 영화, 책, 잡지를 흡수하는 소비문화가 미국인의 삶이 되면서 모두가 생각 없는 로봇이 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또한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컴퓨터는 인간과 경쟁하면서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었기 때문에 컴퓨터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이 모든 변화의 결과,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핵심, 영혼(soul)을 잃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겼고, 이를 한 방에 해결해 주는 답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창의력이었다. 창의력이라는 단어 안에는 혁신도 있었고, 초월적 자기표현도, 개성(individualism, 개인주의)처럼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것들, 컴퓨터가 흉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미국 정부는 잭슨 폴록의 그림을 미국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외에 적극 홍보했고, 이 작업에 CIA가 관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지 출처: Sotheby's)

미국은 오래도록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였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개성에 대한 강조는 극에 달했다. 소련의 인재와 기술력에 놀라 더 많은 수학자, 과학자를 배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미국은 공산주의, 전체주의 국가들과 달리 개인의 존엄성과 선택을 억압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한마디로 미국은 소련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고, 같은 기술을 추구해도 미국답게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고 믿었다. 창의력이야말로 미국의 특징이기 때문에 이를 추구하다보면 그 부산물로 소련보다 우수한 기술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는 거다.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이런 자신감은 두 가지 믿음에 근거했다. 하나는 미국인들은 항상 기계를 잘 다뤘고, 발명에 능하다는 생각이다. "유럽 사람들은 시와 예술에 능하지만, 미국인들은 기계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하다"라는 믿음은 그 근거가 희박하지만 어쨌든 '실용적인 미국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다른 하나는 19세기 때부터 내려오는 '초월주의(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 사고방식이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시인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초월주의 철학은 미국인은 개성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이라는 낭만적 사고를 형성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인의 믿음에 불과하다. 미국인이 정말로 창의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업에 뛰어든 사람들이 심리학자와 기업가들이다.


'창의력의 짧은 역사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