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 ①
• 댓글 남기기37세의 나이에 총리가 되어 화제를 모았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뉴질랜드 총리가 재선에 임하지 않고 총리직을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리더들이 그렇듯 국내에서는 해외에서 만큼 지지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사퇴를 하라는 큰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 총리가 재임 중에 남자친구(약혼자)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은 것도 큰 화제였고, 총리가 미국의 유명 토크쇼 호스트와 인터뷰를 하면서 직접 작은 전기차를 몰고 와서 운전을 하는 모습도 참 신선했는데, 이번에는 외부의 압력 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발표를 해서 또 한 번 큰 관심을 모았다.
70, 80대의 노인이 대통령을 하고 있고, 90이 되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사람도 상원의원직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는 미국에서 볼 때 이제 42세에 불과한 젊은 정치인이 부정부패 스캔들이나 외부의 압력도 없이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것은 신선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하다. 아던 총리는 자신이 인생에서 한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한 총리직을 왜 사퇴했을까?
그 이유는 사퇴 성명에 다 나와 있다. 물론 그의 말처럼 발표를 해도 "진짜" 이유가 뭐냐며 캐물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신다 아던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진짜 이유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 담백하고 좋아서 전문을 번역했다. 앞부분은 올해 있을 총선거 일정과 관련된 내용이고, 뒷부분은 자신의 사임과 관련한 내용이다. 뒷부분만 번역하려다가 전부 하기로 한 이유는 딱딱하고 지루한 절차에 불과한 얘기를 참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때문이고, 민주주의 정치에서 중요한 (문서에는 보이지 않는) 관례를 만들고 지키는 장면을 직접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던 총리의 발표문은 일종의 서문이다. 원래 소개하려던 글은 이어지는 2, 3편에 있다. 미국 NBC 방송국의 장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에서 작가로 일했던 제시 클라인(Jessi Klein)이 그 일을 그만두기로 한 얘기인데, 흥미롭게도 두 사람 모두 40대이고, 자신이 꿈꾸던 일을 자발적으로 그만두기로 한 이야기다. 남들이 탐내는 자리임에도 그만두기로 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공감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먼저 아던 총리의 사퇴 성명부터 읽어보자. 영상은 본문에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두 개의 중요한 발표를 하려 합니다.
하나는 선거 일정입니다. 지난 정부 때부터 선거가 있는 해에는 연초에 투표일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거일을 일찍 발표하면 선거관리위원회와 관련 기관, 그리고 정당들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저는 따라야 할 좋은 관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거가 있었던 2020년 초에 저희가 발표를 했던 것이고, 오늘 다시 그런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 총선거는 10월 14일 토요일에 치러집니다.
이 날짜를 정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의 제안을 참고했고, 공휴일과 학교 휴일, 사전 투표 기간, 중요한 이벤트 등의 정해진 날짜들을 고려했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을 고려할 때 10월 14일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여름(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기 때문에 지금이 여름이다–옮긴이)에 투표 일정을 고려하면서, 그리고 다가올 선거와 (저의) 새로운 임기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에서 저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총리 생활 6년 차에 들어갑니다. 저는 총리로 일하면서 매년 저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저는 한 나라를 이끄는 것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아주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연료통이 가득 차 있지 않은 사람은, 그리고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서 여분의 연료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번 여름 저는 새로운 한 해를, 그리고 저의 새로운 임기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올해가 그런 계획이 필요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제가 재선이 임하지 않을 것임을 밝힙니다. 총리로서의 제 임기는 2월 7일을 넘기지 않고 끝날 것입니다.
지난 5년 반은 제 인생에 가장 보람찬 기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힘든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주택문제와 아동 빈곤, 기후 변화 등의 어젠다에 집중하는 동안 생물보안(biosecurity) 문제와 국내 테러, 대형 자연재난, 글로벌 팬데믹, 그리고 경제 위기에 맞닥뜨렸습니다. 내려야 할 결정이 끝없이 이어졌고, 모두 중요한 문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이 힘들다고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서 떠나기로 했다면 총리가 된 지 두 달 만에 떠났을 것입니다. 제가 떠나는 이유는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현재 나라를 이끌기에 적절한 사람인지, 혹은 지금의 내가 그 역할에 적절하지 않은지를 알아야 하는 것 그 책임입니다.
저는 총리직이 어떤 것들을 요구하는지 압니다. 그리고 현재 제게는 그것들을 해내기 위한 연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이건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 주위에 그렇게 연료가 가득한 사람들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이런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기후 변화 대응과 관련해서 우리는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야심찬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빈곤한 아동의 숫자를 줄였고, 복지부문과 공공주택 분야에서 지난 수십 년 이래 가장 주목할 만한 증액을 달성했습니다.
국민이 쉽게 교육과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했고,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했으며, 뉴질랜드가 고임금, 고기술 경제로 나아가도록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한 이슈에서 진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원주민의 명절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기로 한 결정은 앞으로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하는 동시에 우리는 뉴질랜드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위협이라는 의료, 경제적 위기에 대응했습니다.
이런 일을 모두 해낸 팀은 제가 평생 함께 일해 본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적절한 자리에 잘 배치되어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경제 중 하나인 뉴질랜드를 꾸준히 경제 회복으로 이끌 것입니다.
제가 이 결정을 발표한 후에 사람들이 제가 그만두는 "진짜" 이유를 두고 많은 얘기를 할 것을 압니다. 장담컨대,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그 진짜 이유입니다.
이 발표에서 흥미로운 점을 찾고 싶다면 이렇게 큰 변화를 6년 동안 이끈 저도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것일 겁니다. 정치인도 인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칠 수 있는 것을 모두,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랫동안 바치지만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가 옵니다. 제게는 지금이 그때입니다.
저는 4월까지 마운트 앨버트 선거구의 의원으로 남아 있으려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떠나기 전에 선거구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10월 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보궐선거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다음 단계가 뭐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뭘 하든 저는 뉴질랜드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제가 일하는 동안 제 가족은 저보다 더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네브(Neve, 아던의 어린 아들)야, 네가 올해 학교에 입학할 때 엄마가 옆에 있을 게.
그리고 클락(Clark, 아던의 약혼자), 이제 드디어 결혼하기로 해요.
그리고 차기 노동당 대표와 관련해서는 당간부회의에게 7일의 시간이 있습니다. 간부회의에서 2/3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간부회의는 3일 후인 1월 22일에 투표를 하기로 했습니다. 대표를 선출하는 데 성공하면 저는 곧바로 사직서를 총독(Governor General)에게 제출하고, 새로운 총리가 취임선서를 하게 됩니다. (이 글을 쓰는 몇 시간 전, 44세의 크리스 힙킨스가 당내 만장일치로 당 대표가 되어 뉴질랜드의 총리가 되었다–옮긴이) 간부회의에서 2/3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없을 경우 확대 당원회의에서 선출을 시도하게 됩니다.
제가 감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께 일일이 감사를 드릴 기회는 제가 의회를 떠나는 4월에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선서를 하고 의원이 된 지 15년 만에 떠나게 됩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가족처럼 생각하는 노동당의 다음 단계를 구상하는 것을 도우려 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는 다음에 총리가 될 동료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활동 공간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제게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신,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뉴질랜드 국민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제 말을 마치겠습니다.
'꿈의 직장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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