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내용은 뉴욕에서 주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Saturday Night Live)의 코미디 작가로 활동하던 제시 클라인(Jessi Klein)이 스토리텔링 이벤트인 더모스(The Moth)에 나와서 들려준 자신의 이야기다. 참고로, The Moth는 작년에 '남자가 된다는 것'이라는 글로도 소개한 적이 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지금은 프랜차이즈가 되어 한국에서도 제작되는 SNL은 원래 197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말 그대로 토요일 밤에 하는 라이브 코미디 쇼. 본문에도 자주 등장하는 론 마이클스(Lorne Michaels)라는 사람이 처음 만들어서 이제까지 제작을 담당하는 전설적인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인기 코미디언 중에서 고정 멤버든 초대 손님이든 SNL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할 만큼 미국의 대표 코미디 쇼이고, 코미디언이 아니라도 가수, 정치인 등 재능있는 셀레브리티들도 초대 손님이나 깜짝 손님으로 등장할 만큼 최고의 PR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이 쇼를 지탱하는 작가들 중에는 대본을 쓰는 작가로 시작해서 아예 연기를 하거나 토크쇼 호스트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한국에도 유명한 코넌 오브라이언이 그런 케이스다.) 따라서 미국에서 어릴 때부터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SNL 작가는 말 그대로 꿈의 직장인 셈이다. 아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제시 클라인이 어릴 때 바로 그런 아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녹음은 여기에서 들어볼 수 있다. 제목은 'Tired, from New York')

제시 클라인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제가 9살 정도 되던 시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밤에 늦게까지 깨어서 SNL(Saturday Night Live)을 보던 일이었어요. 우리가 살던 건물에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 누가 버린 흑백 TV를 가져와서 엄마 아빠에게 토요일 밤에 SNL을 볼 수 있게 제 방에 두게 해달라고 졸라서 허락받은 거였죠. SNL이 시작할 때 뉴욕 느낌이 나는 몽타주에 주제음악이 흐르면 정말 황홀하고 흥분되었고, 제가 마치 굉장히 힙하고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줬습니다.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흑백 TV를 보고 있는 따분한 여자애가 아니라 아주 멋진 클럽의 일원이 된 것 같았죠.

1980년대의 SNL

제가 10살이 되던 해에 제 인생에 일어난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정확하게 말하면 하이라이트는 이거 하나였죠. 10살짜리에게 대단한 일이 얼마나 있었겠어요?–저랑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우리를 NBC 방송국이 있는 뉴욕 록커펠러센터(30 Rock)에 데려가서 SNL 녹화를 구경시켜 주신 거였어요. 제가 아직도 기억하는 건 녹화가 시작하기 전에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로 가던 중에 스튜디오 복도에 걸려있는 길다 래드너(Gilda Radner), 빌 머리(Bill Burray, 빌 머레이) 같은 코미디언들의 사진들을 봤죠. 그걸 보면서 '오마이갓, 오마이갓, 오마이갓! 저 사람들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에 내가 와 있는 거야, 오마이갓!'하고 흥분했죠.

그리고 화장실에서 페이퍼타월 15장을 뽑아서 제 주머니에 넣었죠. 나중에 집에 와서 제가 소중히 간직하는 기념품 나무상자에 넣어 보관했어요. 유니콘 무늬가 찍힌 아름다운 페이퍼 타월이었죠. 그 페이퍼 타월 말고 그 상자에 있던 물건은 아마 (뉴욕주) 우드스톡에 가는 길에 주운 도토리뿐이었을 거예요.

그날 SNL 녹화 때는 톰 행크스(Tom Hanks)가 호스트를 맡았고, 에어로스미스(Aerosmith)가 음악 손님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정말 엄청났죠. 그날 저녁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어요. 친구 아버지는 저희를 하드 록 카페(Hard Rock Cafe)에 데려가서 저녁을 사주셨어요. 하드 록 카페는 세상에서 가장 쿨한 곳이었죠. 벨벳 로프를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저는 제가 유명해진 기분이 들었어요. 저스틴 베이트먼(Justine Bateman)이 항상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했죠. 그 당시 제게는 저스틴 베이트먼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었어요. (웃음)

1980년대 인기 시트콤 '패밀리 타이즈(Family Ties)'에 마이클 J. 폭스와 함께 출연한 저스틴 베이트먼

SNL 작가 제의를 받다

세월이 흘러 2009년이 되었죠. 저는 성인이 되었고, 어린 시절 보던 SNL의 영향으로 TV 코미디 작가의 꿈을 이뤘고 스탠드업 코미디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3년 동안 일을 하다가 결국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뉴욕으로 돌아왔냐면, LA는 항상 날씨가 맑고 완벽한 곳이라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웃음)

아무튼, 그렇게 돌아온 후에는 일자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제 에이전트가 어느 날 뜬금없이 제게 전화를 했어요. 그러고는 "SNL에서 새로운 작가를 찾고 있는데, 당신이 쓴 스케치(sketch, SNL 등에서 흔히 보는 독립된 몇 분짜리 코미디 극) 대본 좀 보내 볼래요?" 저는 흥분했죠. "당연히 보내드려야죠. 컴퓨터에 저장한 것들 중에서 몇 개 보내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면, 제가 당장 스타벅스에 달려가 노트북을 켜고 패닉에 빠져 원고를 써야 한다는 거죠.

스타벅스에 앉아서 코미디 대본을 쓰는 게 아주 어려운 이유가 뭐냐면, 주변에 '개 전용 국부보호대(jockstrap) 패러디 광고' 아이디어가 웃기는지 아닌지를 얘기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그걸 정말로 보냈는지 궁금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네 그것도 보냈어요. 저는 제가 SNL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제 에이전트가 제게 다시 전화해서는, "SNL에서 클라인 씨가 보낸 대본이 좋답니다. 이제 론 마이클스(Lorne Michaels)와 인터뷰를 하셔야 해요." 그래서 만났는데요, 제가 이 자리에서 론 마이클스 씨에 대한 가십을 할 수는 없으니 그 인터뷰가 어땠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 하나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저는 살짝 떨리는 상태로 론 마이클스의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그런 상황 있잖아요. 인터뷰를 하러 들어갔는데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 커다란 가죽 소파와 1인용 가죽 소파 의자가 있었는데 저는 솔직하고 귀엽게 "어디에 앉으면 될까요?"하고 물어보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마이클스 씨는 "소파에 앉으시면 됩니다. 저는 1인용에 앉을 게요." 그래서 그렇게 했죠.  그렇게 앉아서 1분 정도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1분 정도 지났을 때 마이클스 씨가 "음, 생각해 보니 제가 소파에 앉고 싶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음, 농담일까?'하고 표정을 봤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일어나서 자리를 바꿨어요. 어색한 자리 교환이었습니다. 그렇게 15분 후에 저는 그 방을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받은 느낌은 제가 SNL 작가로 안 뽑힐 뿐만 아니라, SNL에서 해고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죠. (웃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지만요. (웃음)

그로부터 며칠 후 저는 집 소파에 누워서 항상 그렇듯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 미국의 동물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고 있었죠. 그런데 제 에이전트가 다시 전화를 한 거예요. "일을 하게 되셨어요. SNL에서 일을 시작하랍니다." (청중 박수) 고맙습니다만,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셔야 해요. (청중 웃음)

1975년 NBC 방송국에서 SNL을 만들어낸 론 마이클스. 그 이후로 (1980-85년을 제외하고) 줄곧 SNL의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미국 코미디계의 전설적인 존재다. (이미지 출처: Biography.com)

저는 완전히 흥분했죠. 가장 친한 친구인 존에게 전화를 했고, 존이 제 아파트에 와서 우리는 피자를 시키고 제이지(Jay Z)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를 반복해서 틀었어요. (청중 웃음) 사람들이 행복할 때 하는 게 그거니까요. 그 때 저는 인생에서 특별한 순간에 있었어요. 아주 짧은 순간인데, 대단한 직장에서 일하게 되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는데, 아직 일을 시작하지는 않아서 그곳에서 하게 될 일이 어떤 건지 아직 모를 때 말이죠. 저는 SNL에서 하게 될 일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죠.

SNL에서 일주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작업은 화요일에 시작해요. 작가들은 화요일 밤을 꼬박 새우면서 주말 쇼의 대본을 다 써요. 화요일 정오에 일하러 와서 잘해야 수요일 아침 9시에 집에 갑니다. 그렇게 집에 가서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돌아와야 해요. 수요일 오후에 있는 대본 읽기(table read)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대본 읽기는 엄청난 마라톤이에요. 론 마이클스와 배우, 작가들을 포함해 SNL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작가들의 작업실에 비집고 들어와 한 자리에 앉아서 작가들이 쓴 대본을 빠짐없이 전부 소리 내어 읽죠.

대본은 대략 40개이고, 다 읽는 데 4시간 정도 걸려요. 그런 다음에 론이 고참 작가들과 몇 시간 동안 논의를 해서 어떤 대본을 쇼에 사용할지 결정하죠. 대본을 읽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웃은 대본을 고릅니다. 그런데 SNL에는 이상한 전통이 있는데, 어떤 대본이 채택되었는지를 알려줄 때 고등학교 연극반에서나 하는 것처럼 전부 다시 좁은방으로 모이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작가실 조수가 나와서 어떤 대본을 쇼에 넣을지 불러줍니다. 이메일로 해도 되는 걸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전통이라서" 그렇다는 거예요. SNL이 무슨 세월이 비껴간 아프가니스탄의 마을인 것처럼 말이죠.

SNL의 대본 읽기. 배우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맨 왼쪽에 론 마이클스가 보인다. (이미지 출처: NPR)

아무튼 제가 그런 곳에서 일하게 된 첫 화요일에 저는 흥분도 되고 긴장도 되었어요. 왜냐면 제가 아침형 인간이라 밤에 깨어있질 못한다는 사실이 생각났거든요. 저는 매일 밤 10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듭니다. 저는 '그래 좋아, 나는 이를 악물고 깨어있을 거야. 졸음을 참고 버틸 거야'하고 다짐했죠. 그렇게 해서 10시 35분이 되었는데 (청중 웃음)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하지만 제일 끝나려면 멀었어요. 그 주의 SNL 초대 손님이 가십걸(Gossip Girl)의 여주인공 블레이크 라이블리(Blake Lively)여서 직접 만났는데 아주 쿨하고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저는 라이블리가 동물입양소에서 일하는 괴짜 자원봉사자 역할을 하는 대본을 쓰기로 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죠. 저는 대본을 아주 완벽하게 만들려고 밤새도록 뜯어고치기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해서 수요일에 하게 된 대본 읽기 때 제가 쓴 대본은 망했습니다. 완전히 망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방에서 처참하게 망가진 거예요.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는 SNL 작가실에서 망해본 분들이 없을 것 같으니 (웃음)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면 이래요. 여러분이 아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랑 섹스를 하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상대방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거예요. 온몸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흥분시키려고 애를 쓰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청중 웃음) 그게 끝이 아녜요. 그렇게 애쓰고 있는 방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와서 둘러앉아 구경하고 있는 거예요. (청중 웃음) 그런데 그 사람들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아요. 끔찍합니다. 정말 끔찍해요.

SNL 드레스 리허설 (이미지 출처: Twitter)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저는 다음 주에는 최소한 드레스 리허설 쇼에라도 올라갈 대본을 쓰자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약간의 배경 설명을 드리면, SNL에서는 사실 토요일에 쇼를 두 번 합니다. 첫 쇼도 청중을 상대로 하는데 방송은 되지 않아요. 그리고 첫 쇼에서 반응이 별로 없는 코너(sketch, 짧은 코미디 한 토막)는 TV로 중계되는 두 번째 쇼에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최소한 그 단계까지만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두 번째 주 초대 손님은 테일러 라우트너(Taylor Lauter, 테일러 로트너)였어요. 영화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에서 십 대 팬들이 열광하는 늑대인간 역을 하는 배우죠. 저는 그 영화를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첫째, 저는 35살이라서 그렇고요, 둘째, 제가 만약 피부가 창백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뱀파이어를 말한다–옮긴이)을 보고 싶으면 샤밧(Shabbat) 저녁식사에 가서 제 부모님을 보거나 그냥 거울을 들여다보면 되지 왜 극장에서 돈을 쓰겠어요. (청중 웃음)

하지만 라우트너는 좋은 사람 같았어요. 게다가 아주 젊었기 때문에 저는 아주 젊은 역할을 맡기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브리스톨 페일린(Bristol Palin)의 전 남친인 리바이 존스턴(Levi Johnston) 역할을 하게 대본을 썼어요. 그러니 라우트너가 할 일은 두툼한 조끼를 입고 바보처럼 웅얼거리는 게 다였죠. 대본 읽기 때 테일러 라우트너는 완벽하게 해냈고, 사람들도 웃었어요. 그래서 제 대본이 드레스 리허설에 올라가게 되었죠. 저는 이건 승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드레스 리허설이 어떤 건지 미처 깨닫지 못했어요.


'꿈의 직장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