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 1
• 댓글 남기기아래 글은 애틀랜틱이 발행한 "Ukraine’s Three-to-One Advantage"이라는 글의 전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기자가 우연히 미 해병 출신의 의용군을 만나 들은 전투 현장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소설처럼 흥미롭지만, 단순한 전황을 넘어 많은 통찰을 줍니다.
나는 며칠 전 리비우(Lviv, 우크라이나 서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이른 저녁을 마친 후 (통행금지 때문에 식당들은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젊은 중년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의 문 사이로 손을 넣고 들어왔다. 들고 있는 가방이나 차림새를 보아 배낭여행자로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미국분들이세요?"하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동안 그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으로 손을 뻗었는데, 그의 손이 더럽고 손톱에 때가 잔뜩 끼인 게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입고 있던 플리스 재킷의 왼쪽 가슴에는 독수리와, 지구본, 그리고 닻(해병대 로고–옮긴이)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해병이신가요?"하고 물었다. 그는 해병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해병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니까.) 나는 그에게 나도 해병으로 근무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을 소개했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제드라 부르겠다) 우리는 각자 어떤 부대에서 복무했는지 주고받았다. 우리는 둘 다 10년 전에 해병대에서 보병으로 근무했음을 알게 되었다. 제드는 내게 커피, 혹은 차라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키이우(Kyiv, 우크라이나의 수도)에서 10시간을 이동해 방금 이 호텔에 도착해서 춥고 피곤한 상태였는데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나는 호텔 종업원을 설득해서 물을 끓여 제드에게 티백 몇 개와 함께 건네주었다. 내가 밤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자 제드는 같이 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잠자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달라는 아이 같았기 때문에 나는 그와 좀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는 대화 상대를 원했다.
우리는 텅 빈 호텔 레스토랑의 한 테이블에 마주 보며 앉았고, 그는 찻잔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은 지난 2월 말에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후로 십여 명의 외국인들과 함께 의용군으로 키이우 외곽에서 전투를 해왔다고 했다. 그의 외양만으로도 지난 3주 동안 전투를 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땠냐고 묻자 자신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목격했던 그 어떤 전투보다 치열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울컥하는 감정을 숨기기 힘들어서 갈등하는 눈치였다. 감정을 내보이기 싫어서였는지 그는 그가 본 것 중에서 기술적인 면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병력과 화력에서 열세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어떻게 러시아군에 맞서 교착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
1. 대전차 무기
제드는 제일 먼저 대전차(anti-armor) 무기, 특히 미국제 재블린(Javelin)과 영국제 NLAW("엔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전투를 통해서 살상력(lethality)의 균형이 장갑차/전차에서 대전차 무기 쪽으로 기울었음이 드러났다. 러시아의 T-90 주력전차처럼 가장 발달한 장갑체계도 (대전차 무기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고, 우크라이나 도로 곳곳에는 타고 남은 러시아 탱크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내가 2004년에 이라크 팔루자 전투에서 싸웠던 적이 있다고 말하자마자 제드는 미 해병대가 팔루자를 탈환하기 위해 사용했던 전술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절대 먹히지 않을 거라고 지적했다. 팔루자에서 우리 보병들은 미군의 가장 앞선 전차인 M1A2 에이브람스 탱크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며 싸웠다. 나는 미군 탱크들이 로켓추진식 수류탄(rocket-propelled-grenades, 그중에서도 구형 RPG-7이 대부분이었다)에 직격 당하는 모습을 몇 번 목격했지만, 탱크들은 그렇게 맞고도 별문제 없이 진격했다. 하지만 현재 재블린이나 NLAW로 무장한 채 키이우 같은 도시를 방어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비슷한 장갑을 가진 탱크를 파괴할 수 있다.
값비싼 주력전차들이 (러시아와 나토 모두) 육군의 전형적인 플랫폼이라면, 해군(특히 미 해군의 경우)의 전형적인 플랫폼이 항공모함처럼 엄청난 고가의 대형 전함이다. 현대적인 대전차 무기가 수적으로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을 유리하게 만들어줬다면, 최신예 대함 (지대함 혹은 함대함) 미사일은–가령 남중국해나 호르무즈 해협 같은 곳에서–수적으로 열세인 해군을 유리하게 해 줄 수 있다. 지난 2월 24일 이후로 우크라이나 육군은 이런 대플랫폼(anti-platform) 중심의 전술이 가진 우월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제드의 표현을 빌자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든든한 장갑을 가진 탱크 안에 있던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2. 군사교리
여기에서 제드가 이야기하려는 두 번째 주제가 나온다. 바로 러시아의 전술과 군사교리(military doctrine: 전투 방법을 체계화한 기본 원칙–옮긴이)다. 그는 지난 몇 주의 대부분을 키이우 북서쪽의 참호에서 보냈다고 하면서, "러시아군은 상상력이 전혀 없다"라고 했다. "러시아군은 우리가 있는 곳에 포격을 가한 후에 총진격을 감행했다가 그 방법이 먹히지 않으면 다시 똑같은 걸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어두워진 후에 소규모 병력으로 러시아군의 행렬을 기습 공격하는 걸 밤마다 반복하면서 적군을 꾸준히 약화시킨다." 제드가 목격한 건 내가 그 전날 안드리 자고르드니우크에게서 들었던 말과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가 2014년에 돈바스 지역(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접경 지역–옮긴이)을 침공한 후 자고르드니우크는 우크라이나 군대를 개혁했는데, 그 결과가 지금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 바꾼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우크라이나의 군사교리였다. 그 후 그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국방부 장관으로 일했다.
러시아군의 군사교리는 중앙집중식 지휘 통제에 의존하는 반면, 임무형(mission-style) 지휘 통제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등병부터 장군에 이르기까지 군인 개인의 주도권에 의지한다. 이들은 임무를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임무 달성을 위해 혼란스럽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투 현장의 긴급 상황에 주도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이후에 러시아군이 현대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군은 나토의 상징과 같은–그리고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사용 중인–이런 분권적인 임무형 지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고로드니우크는 "러시아군은 병사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들은 병사들에게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라고만 말하고, 병력이 B지점에 도달한 후에야 그다음으로 이동할 지점을 알려준다. 사병들에게 부여하는 임무의 이유를 이야기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중앙집중식 지휘 통제도 작동할 수 있지만, 그건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될 때만 그렇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중앙집중식 방법은 무너진다. 아무도 (바뀐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키이우로 가는 길에 정체가 생겨 65km짜리 행렬이 멈춰 서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 병사들에게 임무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얘기는 제드가 내게 들려준 얘기와 일치했다. 개별 병사가 임무에 대해 모를 때 일어나는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러시아 병력의 일부가 야간에 제드가 머물고 있던 참호를 공격하다가 실패했는데 그 후 러시아 병사들은 근처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숲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러시아 병사들이 결국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병사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제드는 그 병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병력이 야간투시경(night-vision goggles)을 얼마나 잘 쓰고 있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우크라이나 병력이 야간투시경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자, 제드는 그게 사실이며 더 많은 야간투시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쪽에는 재블린이 있다. 다들 재블린이 탱크를 무찌르는 무기라는 얘기만 하는데, 사람들은 재블린에 CLU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CLU, 즉 발사통제장치(command launch unit)는 미사일 발사 시스템과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 열상감지장치다. 내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하던 당시 우리는 임무를 수행하러 갈 때 최소한 하나의 재블린을 들고나갔다. 알카에다의 탱크를 만날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CLU가 그만큼 효과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차로에 사제폭탄(IED)을 설치하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는 데 재블린을 사용했다. 재블린의 사거리는 1마일(1.6km)이고, CLU는 그보다 더 멀리도 볼 수 있다.
나는 제드에게 러시아 병력과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교전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은 아주 가까이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습 공격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라고 대답했고, 그게 가깝다는 게 어느 정도의 거리냐고 다시 묻자, "어떤 때는 무서울 정도로 가깝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해 영어를 사용하는 몇몇이 "매니악(Maniac, 미친놈)"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우크라이나 병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 별명은 그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러시아 장갑차를 공격하는 모습 때문에 붙었다고 한다. "매니악은 평소에는 엄청 온순하고 착한 사람인데, 전투만 시작되면 완전 사이코로 변해서 두려움을 모르고 싸웠다. 그러다가 전투가 끝나면 다시 착하고 온순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3. 군의 사기
나는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그가 보여준 참호 속에서 찍은 영상과 그가 해병에 근무하던 시절에 관해 들려준 자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보면 그의 이야기는 신뢰할 만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를 이어나갈수록 대화의 방향은 우크라이나군이 가지고 있는 실증적이고 기술적인 변수들에서 벗어나 그들의 심리(psychology) 쪽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했던 나폴레옹은 "군의 사기와 물리적 힘의 중요성의 비중은 3 대 1이다 (the moral is to the physical as three is to one)"라고 말했다. 우리가 차를 다 마실 때 즈음 나는 나폴레옹의 그 말을 떠올렸다.
현재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적어도 현재까지의 진행을 보면–나폴레옹의 말은 여러 면에서 분명히 맞다. 전날 자고로드니우크와 대화하면서 그와 나는 현재 우크라이나군에게 우위를 가져다준 많은 개혁과 기술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는 그 모든 요소를 압도하는 하나의 변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요소는 바로 우리가 싸우는 이유(motivation)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국민의 생명, 우리의 집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러시아군에게는 그게 없다. 그들은 그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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