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서 나오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금속으로 된 문을 통과한 후에 세 개짜리 볼트로 단단하게 닫힌 현관문을 나서던 기억이 있고, 나무 바닥 위에서 내 부츠가 텅 빈 소리를 냈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잠시 멈춰 곰곰 생각해 봤다. 내가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지? 몇 분은 분명히 아니었다. 몇 시간은 지난 게 분명했다. 외투 주머니에 마약을 넣은 채 불이 꺼진 차로 다가갔다. 나라는 존재는 이미 차갑게 죽어있었다.

차의 앞문을 열고 팔을 뻗어 뒷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뒷문을 열고 아이들을 살폈다.

아이들이 숨을 쉬면서 김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신은 당신을 대신해서 쌍둥이를 보살피라고 내게 맡겼지만, 그 순간의 나는 신도 용서하기 힘든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는 이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쌍둥이 메이건, 에린과 함께 있는 데이비드 카. 1991년 경으로 추정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그 일이 있고 난 뒤 19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케니의 집 앞, 내가 그때 주차했던 그 장소에 서 있었다. 형에게 확인해 보니 형이 내게 준 차는 내 기억대로 쉐보레 노바가 맞았다. 형이 보내 준 기록에 따르면 1979년형으로, 내게 줄 당시에 89,950마일(14만 4,760km)을 달린 차였고, 번호판은 NHS091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내가 차 밖에 서있던 일, 뒷좌석을 들여다보던 일이 기억났고, 그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데 걸릴 시간을 계산하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아이들의 방한복이 기억났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나의 기억과 팩트가 충돌하기 시작한다. 에린과 메이건은 1988년 4월 15일에 태어났다. 나와 아이들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마다 케니의 집에 갔던 그날 밤의 일은 중요한 기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내가 사람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그 사건은 아이들이 태어난 직후에 일어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중독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나는 신뢰하기 힘든 직원이었고, 믿기 힘든 친구였고, 불성실한 남편이었지만, 적어도 나는 나쁜 아빠가 되도록 교육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쌍둥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육 보호 가정에 맡겨졌고, 그 후 나는 새사람이 되어 사회로 복귀했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역사였다.

듣기에 좋은 이야기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아이들이 4월에 태어났다고, 내가 몇 달 되지 않아 중독 치료를 받으러 들어갔다면, 내 기억 속의 아이들은 왜 방한복을 입고 있었을까? 미네소타주가 추운 곳이기는 해도 5, 6월에 방한복을 입어야 하는 동네는 아니다. 나는 차량 모델을 확인하기 위해 형과 이야기하던 중에 아이들의 방한복에 관한 내 궁금증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형이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지. 네가 중독 치료를 받으러 간 건 12월이 되어서였으니까. 아이들이 8개월쯤 되었을 때야."

미니애폴리스에 위치한 에덴 하우스 (이미지 출처: 에덴 하우스 페이스북)

확인해 보니 형의 기억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맞는 얘기였다. 내가 6개월짜리 중독 치료를 위해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에덴 하우스(Eden House)에 들어간 건 1988년 11월 25일이었다. 11월이면 아이들이 방한복을 입고 있던 내 기억은 맞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 내가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얘기는? 내가 만들어 낸 신화에 불과했다.

케니의 집에 갔던 그날 직후에—나중에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1988년 추수감사절 한 주 전—나는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에게 말도 못 할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 집 곳곳에 주사기와 핏자국이 있었고, 아기들은 집에 널린 더러운 옷가지들 사이에서 지내고 있었다. 약에 취한 눈에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해서 아이들을 맡아주시면 나와 애나가 중독 치료를 받으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2006년 여름, 미네통카(Minnetonka) 호수를 내려다보는 데크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버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집에 어른이 없고, 애들에게 위험한 환경이라고 했지."

내가 그렇게 부모님 집을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잘 있으라는 인사는 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떨어질 대로 떨어져 인생의 바닥을 친 나는 다시 코카인이 필요했다. 차에 기름도 떨어졌기 때문에 부모님 집에서 가까운 주유소에 들러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하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소지하고 있던 코카인을 복용한 것으로 보인다—옮긴이) 슬픔과 상실감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차를 몰고 주유소를 나오면서 급가속을 했다. 주유소에서 한 일에 대한 수치를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내 차를 본 경찰차가 따라와서 나를 길가에 세웠고, 나는 경찰차 뒷좌석에 앉아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경찰서의 밝은 실내에 들어가자 내 팔에 난 무수한 주삿바늘 자국이 경찰의 눈에 띄었다. 그 경찰은 경찰차로 돌아가 뭔가를 들고나왔다. 그는 분노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손을 펴자 코카인이 든 작은 봉투가 나왔다.

"이게 뒷좌석에 있던데." 경찰이 말했다. "당신이 흘린 거지?"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나의 유죄를 증명하지 못한 경찰은 결국 나를 풀어줬다.

나는 부모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교외 지역의 좋은 시설에서 며칠 머무르며 코카인을 해독(detox)했다. 중독자들이 해독을 위해 오는 이런 센터는 인간들의 수족관 같은 곳이다. 주사로 리브리엄(Librium, 금단증상 완화제)을 맞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센터의 스태프들은 큰 유리창 밖에서 그들을 관찰한다. 발작과 소란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게 커다란 물 양동이에 팔을 담그게 했다. 미지근한 물에는 세탁용 세제가 풀려 있었다. 원시적인 방법처럼 보일지 몰라도, 스태프가 일일 중독자의 팔을 붙잡고 닦는 수고를 덜기 위한 편리한 방법이었다. 나는 아무도 손을 대기 싫어하는 백인 쓰레기(white-trash)가 된 것이다.

며칠 후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를 마친 부모님이 내가 있는 해독 센터를 찾아오셨다. 쌍둥이도 함께 데려온 부모님은 나와 저녁을 함께 먹은 후 조용한 구석으로 가서 내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모님은 나의 또 다른 형 존(John)과 상의해서 형이 봉사하는 가톨릭교회를 통해 아이들을 임시로 맡아 줄 위탁 서비스를 찾았다고 했다. 내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좋은 가정에서 에린과 메이건을 키워주겠다고 했단다. 그러는 동안 나는 또 다른 시설인 에덴 하우스에 가서 6개월 동안의 집중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하라는 거다. 에덴 하우스는 미니애폴리스 도심에 있는, 마약 중독자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게 내가 마약에서 벗어나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100% 사실은 아니었다. 나는 뉴올리언즈에 있는 친구 크리스와 이야기하던 중에 내가 에덴 하우스로 떠나기 바로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마약을 끊기 전에 코카인을 하고 싶어 했다는 거다.

"네가 내게 전화해서 떠나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했지. 나는 네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네 부모님 댁을 찾아갔지. 그분들 집에 들어가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네 방은 그 집 1층인가 지하실에 있었던 걸로 기억해. 그러고 나와서 차에 타려는데 네 손이 온통 멍들고 부어서 차 문을 열지 못해 내가 열어준 기억이 난다."

"코카인 때문에?"

"응, 그건 내게도 충격이어서 기억이 나." 크리스가 말했다.

데이비드 카는 1994년에 질(Jill)과 결혼했고, 쌍둥이 에린과 메이건도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내 기억에는 쌍둥이가 위탁 보호를 받으러 갈 때 아이들을 데려간 건 카운티의 얼굴 모르는 공무원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내부의 힘에 끌려, 그리고 부모님의 조용한 권유에 떠밀려, 내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이며, 낯선 사람이 내 손에서 내 아이들을 빼앗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에린과 메이건을 위탁받아 보호했던 패트(Pat)와 젤다(Zelda)에게 2007년 여름에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에 따르면 아이들은 낯선 공무원이 데려온 게 아니라, 나와 내 어머니가 함께 패트와 젤다에게 데려다줬다. 처음 보는 순간 쌍둥이들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지만, 그 아이들의 아버지(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젤다가 "그 때 데이비드 씨는 아주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화가 난 듯 보였어요.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도 없는 듯, 우리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았죠. 우리는 데이비드 씨에게 그저 필요악인 듯했어요. 그냥 아이들이 있기에 좋은 장소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고..."라고 말하자, 패트가 끼어들었다. "데이비드 씨는 그 때도 약에 취에 있었어요." 젤다가 말을 이었다. "몰골도 엉망이었죠."

"몰골도 엉망이고 약에 취했다는 거죠." 내가 말했다. 젤다는 그렇다고 했다.

그때 패트가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지셨어요."

"어떻게 쓰러졌다는 거죠?"

"그냥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죠. 저는 그걸 보고 '아기들 중 하나가 바로 옆에 있었으면 크게 다칠 뻔했다'고 생각한 게 기억나요."

패트는 내가 치료를 마치고 다시 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단다. "데이비드 씨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중독 치료는 불가능하겠구나'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저 죽기 전에 아이들을 맡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중독자의 시간 ⑤'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