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조금 다른 버전이 같은 제목으로 뉴스톱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일요일 밤에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해 시상식과 마찬가지로 많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 행사였고, 영어로 진행되는 행사를 자막까지 읽어가며 열심히 지켜본 보람이 있는 행사였다.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는 아니었지만,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만든,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 배우 윤여정이 한국계로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상 자체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윤여정 배우의 수상소감이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정말 대배우답게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짧은 수상소감으로 청중을 감동과 웃음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만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는 윤 배우의 수상소감이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너무나 귀엽다" "이번 시상식 최고의 소감이었다" "내 할머니였으면 좋겠다" "나도 나중에 저런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지" 같은 트윗이 줄을 이었다. 뉴욕타임즈는 시상식을 평가한 기사에서 "최고의 수상소감(Best All-Around Acceptance Speech)"라는 카테고리에 윤 배우의 소감을 꼽기도 했다.

두 아들의 잔소리?

그런데 윤 배우가 영어로 전달한 소감문은 정작 자막을 통해 보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되었다.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시상식 중계 때 자막에 "두 아들의 잔소리 덕분"이라는 말이 나간 후 많은 언론사에서 일제히 윤여정 배우는 두 아들이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아카데미 상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소개했다. 윤 배우는 정말 그렇게 말한 걸까?

윤여정은 "I'd like to thank my two boys, who made me go out and work"라고 말한 후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ed so hard"라고 했다. 여기에서 "two boys who made me go out and work"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나를 밖으로 내보내서 일하게 만든 두 아들"이 된다. 언론사들은 (아니면 언론사들이 일제히 옮겨 적게 된 최초의 번역을 한 방송사는) 이 말의 의미를 "두 아들이 (밖에 나가서 일하라고) 잔소리를 했다"는 의미로 의역을 한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윤 배우에 대해서 기사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그가 자신을 생계형 배우라고 소개하는 걸 자주 접해봤을 거다. <미나리>의 배급사인 A24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나의 두 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 왔다. 나는 이혼 후 싱글맘이 됐다. 두 아들과 함께 살아 남기 위해 어떤 역할이든 했다. 그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한다. 아들들이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 일을 하게 만들었다는 윤여정의 말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로서의 연기를 했다는 의미이지, 자신의 아이들이 "잔소리"를 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계속되는 오역

"두 아들의 잔소리"라는 표현이 거슬리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 실수에 의한 오역이 아니라, 70대 여성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편견이 담겨있는 것이 읽히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는 게 (심지어 그게 엄마와 아들의 관계라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문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오역이다.

이게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생각하면 똑같은 말을 배우 안성기가 했다고 생각해보라.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한 아빠"로 해석했을까, 아니면 "아들들의 잔소리 때문에 연기를 하게 된 아빠"로 해석했을까? 당연히 전자였겠지만 그 배우가 70대 여성이면 "두 아들이 잔소리"를 했을 수 있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그저 아들들이 떠미는대로 나가서 연기를 하다보니 아카데미상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편견에서 시작된 언론의 오역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외국의 기사까지 가져다가 자신들의 실수를 세탁하는 데 사용한다. 한국의 많은 언론사들이 연합뉴스의 기사를 그대로 가져다가 아래와 같은 내용을 게재했다:

(뉴욕타임즈는)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 제작자이자 자신을 수상자로 호명한 브래드 피트에게 "드디어 브래드 피트를 만났다. 우리가 영화를 찍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냐"라고 농담을 던진 것과 두 아들의 '잔소리'를 언급하면서 "이게 다 엄마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을 대표적인 유머 사례로 꼽았다.

윤 배우가 꺼내지도 않은 '잔소리'라는 표현을 넣었을 뿐 아니라, "이게 다 엄마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뉴욕타임즈가 대표적인 유머 사례로 꼽았다는 거다. 정말로 그랬을까? 그 기사가 언급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속 문장과 해석은 이렇다:

The speech that ensued was both heartfelt — “This is because Mommy worked so hard,” she told her family — and funny, as Youn mused to her fellow nominees, “Tonight I’m luckier than you. And also maybe it’s American hospitality for the Korean actor?”

뒤에 이어지는 소감은 진심어린(감동적인) 내용이면서—그는 "이건 엄마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동시에 웃기기도 했다. 윤 배우는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에게 "오늘밤 저는 여러분들 보다 운이 좋은 거예요. 어쩌면 한국배우에 대한 미국식 환대이거나"라고 말했다.

즉, 뉴욕타임즈는 "엄마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진심어린 표현으로, "미국식 환대"라는 말은 웃긴 표현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내용으로 한 눈에 보기에도 확연히 구분된다. 그런데도 윤 배우가 열심히 일했다고 한 말을 유머라고 해석한 사람은 도대체 배우라는 직업을,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언론의 공감능력과 사회의식

실시간 통역은 쉽지 않다. 따라서 실수가 나올 수 있다. 편견이 들어간 실수는 편견어린 잠재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전혀 악의 없는 실수였다고 해도, 중계방송이 끝난 후에 기사를 쓰는 언론사라면, 그것도 매일 외신을 번역해서 전달하는 통신사라면, 윤여정 배우가 한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 번역인지 한 번 쯤 생각해봤어야 한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백인들 위주의 행사를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2년 연속으로 한국과 한국 영화가 중요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의 영화인과 관객들이라면 뿌듯해 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그렇게 상을 받은 배우가 70대 여배우라는 사실, 그리고 이혼녀라는 것이 심각한 사회적 낙인이던 시절에 한국사회의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통과해온 윤여정이라는 여성이 전세계적으로 위대한 배우라고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2021년의 한국 사회와 거기에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런데 수많은 여성들이 그 사실과 의미에 감동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한국의 언론은 윤 배우가 마치 "아들들의 잔소리"에 못 이겨서 배우 활동을 했더니 아카데미상까지 받게 된 엄마라는,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지극히 차별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서 번역이랍시고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기자들의 영어실력이 아니다. 그들의 공감능력과 사회의식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