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지방에서 왜 기업의 이익을 더 챙겨주려는 보수당 후보를 지지할까? 재벌들에게 세제 혜택을 꾸준히 늘려주는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러스트 벨트(Rust Belt, 미국 오대호 주변의 낙후된 공업지대) 유권자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다면 '단일이슈 정치'가 좋은 힌트가 된다. 특정 유권자에게 "너무나 중요해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이슈를 둘러싸고 (대개는 두 후보로 귀결되는 양당제의) 후보들이 대결할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을 제안하는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

러스트 벨트의 지지가 트럼프의 2016년 승리를 이끌어냈음을 설명하는 뉴욕 포스트의 기사

당연한 얘기지만 정치인들은 이를 철저하고 치밀하게 이용해왔다. 특히 유권자들을 흥분시키기 좋은 종교적, 인종적 이슈를 둘러싸고 편을 나누면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쳐다보지 않고 후보를 선택하기 때문에 (가령 '여성가족부' 존폐 문제처럼) 그들이 쉽게 분노하는 문제를 찾아내면 경제 정책을 비롯한 다른 공약은 조용히 묻어갈 수 있다. 경제적 중하위층 사람들이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보험제도를 개선한 '오바마케어(Obamacare)'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는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증오가 더 컸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취임한 2017년에 나온 이 기사는 오바마케어의 덕을 보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뽑은 직후에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공화당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문제의 근원에는 거대한 두 당이 정치를 지배하면서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양당제가 있다. 이런 정치 시스템에서는 궁극적으로 유권자의 요구사항이 '패키지 딜(package deal)'이기 때문에 원하는 아이템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고 싶지 않은 것들도 함께 구매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세 개 이상의 정당이 경쟁하는 시스템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거나 느린 양당제에서는 패키지 딜을 통한 유권자 다루기가 훨씬 더 선명하고 쉽다.

2016년 '힐빌리의 노래'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켄터키주와 오하이오주에서 자라고 예일 법대를 졸업한 J.D. 밴스(Vance)가 쓴 책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 힐빌리의 애가哀歌)'는 트럼프가 등장한 2016년 미국 대선 때가 가장 화제가 되었던 책이다. 이 책의 인기는 미국인들의 당혹감에서 비롯되었다. 리얼리티쇼에서 인기를 끌었던 부동산 재벌 정도로 취급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일부 유권자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그 돌풍은 처음 예상과 달리 사그라지지 않고 더 많은 유권자에게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양당제의 틀에서 보면) '그 가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거지?'와 같은 질문들에 꽤 분명한 답을 보여준 책이 '힐빌리의 노래'였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찬사가 인기의 원인을 암시해준다.

하지만 J.D. 밴스의 책이 정말로 몰랐던 답을 줬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주류 지식인과 언론이 갖고 있던 생각, 즉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994년 발효) 이후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경제적 기회가 사라진 러스트벨트에 살면서 백인들이 트럼프에게서 헛된 희망을 발견하고 그를 지지한다는 분석과 거의 아무런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엘리트가 특정 지역에 대해 가진 편견을 그 지역 출신이 주류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확인 시켜 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가령 책 뒤에 실린 제니퍼 시니어 뉴욕타임즈 기자의 추천사에는 "civilized reference guide" "a vocabulary intelligible to Democrats and Republicans"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하는 주장이 마치 야만인의 말처럼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식인들의 생각이 드러난다.

훗날 밴스는 당시 미국의 엘리트 사회가 자신을 유명한 유인원 학자 제인 구달(Jane Goodall)처럼 생각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인 지역을 사파리처럼 구경하고 싶어 한 사람들이 자신을 사파리 가이드처럼 생각했다는 거다.

하지만 '힐빌리의 노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 책이 다루는 지역 사람들, 즉 애팔래치아 산맥, 혹은 켄터키주에 사는 블루칼라 백인들에게서 강한 비판이 나왔다. 특히 '힐빌리(hillbilly)'라는 경멸적인 호칭이 들어간 책의 제목부터가 문제였다.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 외딴 지역에 사는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들을 가리키는 이 표현은 레드넥(redneck)과 함께 특정 백인들을 가리키는 멸칭(蔑稱)이지만 밴스가 자신의 책에 사용할 수 있었던 근거는 자신도 힐빌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인종은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는 'N-word'가 흑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동방식이다.

아이덴티티와 혐오 표현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저자 밴스는 외지인이다. 밴스의 부모는 애팔래치아 사람들이지만 밴스가 태어나기 전에 가족이 오하이오주로 이주했고 (밴스의 가족은 애팔래치아/켄터키 지역에 사는 친척을 자주 방문했다) 그 후에는 오하이오를 떠나 예일 법대를 졸업하고 "주류로 편입된" 인물이다. 그런 밴스가 이 지역 백인 노동자들(가톨릭 신앙을 따르는 아일랜드/스코틀랜드계의 가톨릭계 백인이 주를 이룬다)에 관해서 쓴 건 밴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얘기를 쓴 거나 다름없다는 분노였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두 명의 유명한 작가들 사이에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정호재 작가와 조귀동 작가다. 조귀동 작가는 2년 전에 '세습 중산층 사회'라는 책을 펴내어 큰 화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전라디언의 굴레'라는 책으로 또다시 큰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내가 개인적으로도 아는 분들이라서 언급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인물들이 공개적으로 밝힌 이야기를 하면서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건 페이스북 세상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정보의 장막을 치는 행위라는 생각에 밝힌다. 두 사람 모두 언론계에서 일한 적이 있거나 일하고 있고,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두 사람 모두 뛰어난 글쓰기 실력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두 사람 모두 현상을 보는 자신만의 강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두 작가 사이에 발생한 논쟁, 혹은 논란의 핵심은 조귀동 작가가 선택한 제목에 들어간 '전라디언'이라는 표현이다. 전라도와 인디언을 합친 것으로 알려진 이 단어는 흔히 '홍어'와 함께 호남지역 출신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흔히 '일베'에 처음 등장했다고 전해지는데, 이에 대한 조귀동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조귀동 작가가 전라디언이라는 표현이 가진 부정적인 함의를 모르고 사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귀동 작가의 책이 나온 후 정호재 작가가 굳이 일베가 만들어낸 혐오 표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하며 두 사람 사이에 의견 다툼이 생겼다. 두 작가 모두 인기 있는 글쟁이고 페이스북에서 페친의 오버랩이 큰 탓에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이렇다, 저렇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딱히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논쟁 중인 두 작가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에 있다. '전라디언'이 혐오 표현이라고 해도 조귀동 작가는 소위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남사람들에 대한 혐오 감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사용되고 있다면 호남인으로서 그 현상에 대해 비평을 하기 위해 제목을 가져다 썼다면 서울 출신인 내가 그를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또 다른 호남 출신인 정호재 작가의 생각도 일리가 없는 게 아니다. 일부 지역 출신, 그것도 굴곡 많은 현대사를 살아온 지역 사람들에게 붙은 차별적 표현을 굳이 반복해서 확산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논쟁을 보던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이건 호남 출신이 아닌 내가 뭐라고 말을 보탤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을 거다. (물론 그렇다고 이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게 아니다.  나는 두 작가의 논쟁이 더 본격화, 공론화되어서 많은 사람과 공유되기를 바란다.)

J.D. 밴스가 '힐빌리의 노래'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나왔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저자인 밴스가 힐빌리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큼의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거였다. 그 지역에서 태어났고, 가족들이 아직도 애팔래치아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밴스는 이미 '엘리트 사회'에 편입한 외부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갑자기 식어버린 인기

2016년을 대표하는 책 중 하나였던 '힐빌리의 노래'에 대한 관심은 갑자기 식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가 저자 J.D. 밴스가 친트럼프로 변신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지만, 밴스가 느끼는 이유는 다르고, 들어보면 밴스 본인의 설명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이 견해는 그가 우파논객 벤 샤피로의 팟캐스트에 나와서 밝혔다. 이 인터뷰는 샤피로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2020년에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밴스에 따르면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크게 바뀐 건 트럼프가 취임한 2017년이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인) 진보 세력과 주류 미국 사회는 트럼프가 "분노한 블루칼라 백인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2017년이 되면 트럼프가 당선된 주요 원인은 러시아의 소셜미디어 공작이라는 쪽으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관심의 초점이 바뀌자 미국 사회는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들에 관한 관심을 잃거나, 그 관심이 분노로 변했고, 그 결과 '힐빌리의 노래'는 더 이상 중요한 책이 아니게 된 거다. 적어도 저자의 생각은 그렇다.

밴스는 더 나아가서 미국 주류사회가 트럼프 지지자를 '인종주의자(racist)'로 지칭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라고 본다. 물론 그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그렇게 묘사하는 건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종적인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 내 다양한 인종에서 똑같이 나타나고, 오히려 백인이 아닌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에게서 (백인에 대한) 편견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단지 트럼프 지지자 중에 백인이 많다는 이유로 그들의 인종적 편견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규정하는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밴스는 지난 몇 년 사이에 트럼프 지지자들을 옹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트럼프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16년만 해도 트럼프를 가난한 백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쉽게 찾는 아편(opioid)"이라고 비판했던 밴스는 "내가 잘못 판단했다"라면서 과거에 트럼프를 비판했던 트윗들을 모두 찾아서 지우면서 까지 친트럼프로 돌아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그의 외모, 특히 그의 수염이었다.

('계산된 수염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