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조금 다른 버전이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에 게재되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지만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는 기업 로고가 있다. 나팔처럼 생긴 스피커가 달린 ‘축음기(phonograph)’ 앞에 흰 개 한 마리가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는 로고. 어떤 사람은 이를 보고 RCA의 로고라고 알고 있고, 좀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빅터(Victor)라는, 지금은 사라진 회사의 로고라고 알고 있다. 영국이나 홍콩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HMV라는 음반, 엔터테인먼트 체인점의 로고로 사용하는 것을 봤을 것이고, 일본에서는 JVC가 이 로고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로고는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길래 유명해졌고, 많은 기업들이 나눠서 사용하게 된 걸까.

빅터 그림이 선명한 영국의 HMV 매장. 이 브랜드 이름은 His Master's Voice의 약자에서 비롯되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개의 이름은 니퍼(Nipper)로, 1884년에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서 1895년 9월에 죽은 거로 알려져 있다. 견종은 스무드 폭스 테리어, 혹은 잭 러셀 테리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니퍼의 주인은 한 연극 공연장에서 풍경을 그리는 일을 하며 살았던 마크 바로드였다. 마크는 니퍼가 세 살 때인 1887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에는 그의 아내와 동생들이 돌봤다고 한다. 니퍼가 죽기 직전에 살았던 도시인 킹스턴 어폰 템스에는 ‘니퍼의 골목(Nipper’s Alley)’이라는 길이 있고, 길 이름 표지판에는 축음기에 귀를 기울이는 유명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그림은 마크의 동생인 프랜시스 바로드가 그렸다. 마크와 프랜시스의 아버지는 헨리 바로드로, 말을 탄 귀족과 사냥개, 농장의 동물들을 많이 그린 영국의 화가. 아마 바로드 형제는 가업을 이어서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그런 프랜시스가 축음기에 귀를 기울이는 니퍼를 그리게 된 사연은 1920년쯤에 제작된 빅터 레코드의 트레이드마크에 등장하는 문구,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에 담겨있다.

니퍼의 주인이었던 마크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시의 신기술이었던 축음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1877년에 발명한 이 축음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원반형 레코드가 아닌 원통(실린더)형 레코드를 사용했다. 에디슨의 축음기는 특히 영국인들의 큰 관심을 모았기 때문에 에디슨은 ‘에디슨 벨’이라는 회사를 세워 제품을 만들었는데, 프랜시스의 형 마크는 이 축음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 같다.

어느 날 프랜시스는 형이 남긴 물건 중에서 원통형 레코드를 발견하고 이를 축음기를 사용해서 틀었다. 죽은 마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니퍼는 옛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달려가서 축음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걸 본 프랜시스는 훗날 그 장면을 그림에 담았다. 지금은 흑백 사진으로만 남은 이 최초의 그림에는 나중에 유명해진 그림과 달리 에디슨 벨사의 원통형 레코드가 분명하게 등장한다. 프랜시스는 에디슨 벨이 이 그림을 광고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구매 의사를 타진해봤지만 돌아온 답은 실망스러웠다. “개는 축음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프랜시스 바로드가 그린 니퍼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축음기는 에디슨이 발명한 원통형 레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프랜시스는 굴하지 않고 이번에는 에디슨 벨의 경쟁사인 그라모폰(Gramophone)을 타진해보려고 했던 듯하다. 그는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원작의 검은 스피커 대신 그라모폰 축음기의 황동 스피커를 빌려서 그림에 등장시켰고, 그렇게 완성한 그림을 그라모폰의 사장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그 그림을 본 사장은 그림 속의 원통형 레코드 대신 그라모폰의 원반형 레코드로 바꿔주면 사겠다고 했고, 프랜시스가 그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트레이드마크가 탄생한 것이다. 영국 그라모폰은 미국에 자매회사인 빅터 토킹 머신(Victor Talking Machine, 훗날 ‘빅터 레코드’로 불림)을 갖고 있었는데, 두 회사가 모두 니퍼의 그림을 트레이드마크로 사용했다.

그런데 빅터 레코드가 사용한 니퍼의 그림을 보면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축음기와 니퍼가 올라가 있는, 표면이 반질반질한 가구다.

별생각 없이 보면 그냥 가정집 서랍장 정도로 보이지만, 그림 속에 있는 ‘주인의 목소리’라는 문구를 보고 니퍼가 듣고 있는 목소리가 세상을 떠난 마크의 목소리라는 얘기를 아는 사람들은 니퍼가 올라가 있는 곳이 가구가 아니라 주인의 관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This American Life를 들어보시길.) 하지만 그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그림을 그린 프랜시스 바로드는 그게 가구인지 형의 관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동적인 스토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니퍼가 주인의 관 위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단순히 니퍼의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당시 사람들은 녹음기를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기계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기술의 개발로 없던 물건이 탄생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품을 만든 기업은 그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용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에디슨은 사람의 얼굴을 사진으로 간직하듯 목소리를 간직하는 것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축음기와 레코드의 용도를 설명한 글에 ‘축음기(phonograph)는 사진(photograph)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문구가 그걸 보여준다. 에디슨은 사진을 레코드의 경쟁 상대로 설정했던 거다.

에디슨은 대통령 후보의 연설이 축음기 마케팅에 잘 맞는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에는 슬프고도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사진이 발명된 후에도 일반인이 사진을 찍을 일은 별로 없었다. 초기의 은판사진은 값도 싸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감도가 무척 낮았기 때문에 렌즈 앞에서 3분에서 15분 정도를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했다. 물론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런 수고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초기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피사체는 시신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빨리 사진사를 불러서 누워있는 모습을 찍거나, 살아있는 것처럼 시신을 앉혀놓고 마지막 모습을 남겼던 것.

19세기 서구권에서는 아이가 세상을 떠나면 서둘러 사진을 찍어 간직했다.

‘축음기는 사진보다 뛰어나다’라는 말은 이런 배경을 고려해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청각 매체이고 다른 하나는 시각 매체인데 그 둘을 비교하는 건 뜬금없이 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에디슨의 말에는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는 데’라는 부분이 생략된 셈이다. 누구나 그 용도를 제일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넣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연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니퍼와 축음기가 죽은 주인의 관 위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그라모폰은 훗날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라는 문구를 그대로 사용한 레코드 레이블을 만들었고 (이는 앞서 언급한 HMV 매장의 전신이다) 미국의 빅터는 RCA에게 팔려서 RCA 빅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 세워진 자매회사인 일본 빅터(Japan Victor Company)는 우리가 잘 아는 JVC로, 일본 내에서 니퍼가 그려진 로고의 사용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HMV는 일본에서만은 이 트레이드 마크와 문구(His Master’s Voice)를 사용하지 못한다.

일본 HMV 매장 로고에는 니퍼도 보이지 않고, 'His Master's Voice'라는 말도 없다. 일본에서는 둘 다 JVC가 사용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