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앤디 김(Andy Kim)은 미국 동부 뉴저지주의 연방 하원 의원 12명 중 한 사람이다. 뉴저지에 한인들이 많이 산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인 교포들의 지지를 받아 워싱턴에 입성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지역구인 뉴저지 제3선거구는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과는 거리가 멀다. 약 56%가 백인이고, 아시아계는 3.2%에 불과한 이 지역에서는 대대로 백인 하원의원을 배출해 왔다. 특히 민주당 소속인 앤디 김이 당선되기 전에는 20년 가까이 공화당에서 지키던 선거구였다.

그런 지역에서 앤디 김이 당선된 건 그의 화려한 학력과 경력(로즈 장학생 출신으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한국 매체의 기사 참조) 외에도 그가 처음 출마해서 당선된 2018년 선거가 트럼프의 임기 중간선거였다는 사실도 한 몫을 했다. 트럼프 정권에 분노한 민심이 하원을 공화당에게서 되찾아 온 선거였고, 앤디 김의 지역구도 그때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뒤집혔다. 하지만 앤디 김은 훌륭한 의정 활동으로 주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지난해 11월의 승리로 벌써 3선 의원이 되었다.

지역구 주민이 아닌 미국인들 중에서도 앤디 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로 이 사진 때문이다.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를 습격한 이후 그가 의사당을 치우는 걸 돕는 장면이 미국인들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이미지 출처: Reddit)

앤디 김이 첫 선거 운동을 하던 2017년의 일이다. 당시 앤디 김과 맞붙었던 현역 의원인 공화당의 톰 맥아서(Tom McArthur) 쪽에서 "앤디 김에게는 뭔가 수상한 데가 있다 (Something is REAL FISHY about ANDY KIM)"라는 제목의 선거 포스터를 뿌렸다. 이 포스터를 본 민주당에서는 아시아계 후보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했고, 이게 인종주의적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참고로, 맥아서는 뉴저지주에서 트럼프를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 홍보물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공격적이다. 그런 미국의 정치판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하나 있다면 인종주의다. 그렇다고 미국의 정치인들이 인종주의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쉽게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알아들을 사람들은 알아듣게 한다. 도그휘슬(dog whistle)이라 부르는 이 방법은 가령 슬럼가의 흑인을 비난하면서 흑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도시의 범죄 문제"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럼 아래의 포스터에는 어떤 인종주의적인 신호가 담겨있을까? 맨 윗줄과 맨 아랫줄에 붉은색으로 등장한 단어 "REAL FISH," "ANDY KIM"에 사용된 폰트다.

앤디 김 후보를 공격하는 정치 홍보물 (이미지 출처: New Jersey Globe)

여기에 사용된 폰트는 미국에서 흔히 "완톤(Wonton) 폰트," "찹 수이(Chop Suey) 폰트"라고 불리는 다양한 폰트들 중 하나에 속한다. 완톤(馄饨, 훈툰)과 찹 수이(雜碎)는 중국 음식, 특히 미국에서 인기 있는 중국 음식 메뉴. 이런 폰트 군에 중국 음식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미국 내 중국 음식점에서 이 폰트를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 공식적인 폰트 명은 아니다.

오랜 문화적 습관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런 폰트를 보면 아시아인, 아시아 문화를 떠올린다. 그런데 앤디 김을 공격하는 정치 홍보물에 이 폰트를 쓴 것은 "앤디 김은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아시아인은 믿으면 안 된다'라는 아주 오래된 미국의 반 아시아계 정서를 불러내는 행동이다. 따라서 이 포스터는 인종주의적인 포스터가 맞다. 미국에서 인종은 후보의 자격 요건과 무관한데, 상대 후보의 인종을 강조할 이유는 오로지 하나, 유권자들 마음속에 남아 있을 인종주의적 반감, 타인에 대한 거부감에 기대려는 것이다. 맥아서의 이런 방법은 역효과를 냈고, 뉴저지 유권자들은 앤디 김을 선택했다.

그런데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 폰트는 누가 처음 만들었고, 왜 중국 음식점에서 많이 사용했으며, 중국계가 자발적으로 사용했다면 그런 폰트를 인종주의적인 폰트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하나씩 알아보자.

완톤 폰트는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지만 공통점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CNN)

완톤 폰트의 기원

이 폰트의 역사를 연구한 디자인 역사학자에 따르면 1883년, 클리블랜드 타이프 파운드리(Cleveland Type Foundry)의 헨리 소프(Henry H. Thorpe)라는 디자이너가 처음 만들어 냈다. 당시 클리블랜드 타이프 파운드리에서 제작한 폰트들을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폰트들인데, 특정 문화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중에서 '만다린(Mandarin)'이라는 폰트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완톤 폰트'의 시초다.

맨 윗줄이 만다린 폰트 (이미지 출처: E-daylighgt)

그렇다면 완톤 폰트는 어떻게 만들어졌길래 중국 문화를 표시하는 것으로 여겨질까? 금방 눈치채겠지만, 바로 붓글씨체를 흉내 낸 것이다.

그런데 붓글씨로 로마자를 표기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로마자 알파벳에는 원이 많이 들어가 있다. G, O, Q 같은 글자에는 원이 들어가 있고, B, D처럼 반원이 들어간 글자들도 많다. 하지만 한글과 달리 한자에는 원이 없다. 따라서 원이나 반원을 표기하기 위해 아래 그림 1에 나온 것처럼 약간 휘어있는 모양의 획을 여러 개 이어 붙인 것이다.

이미지 출처 (이미지 출처: 유튜브 캡처)

그리고 다른 직선은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영자팔법(永字八法)으로 익숙한 한자의 여덟 획 중에서 치켜올림(1)과 파임(2)만을 가져다가 조립해서 만들었다.

치켜올림과 파임으로 만들어낸 H (이미지 출처: 유튜브 캡처)

그 결과물이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은 "중국식 알파벳"이다.

그런데 왜 하나같이 음식점 간판일까?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중국계 미국인의 이민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영상에서 자세히 설명하지만, 중국인들이 미국에 처음 도착한 것은 1800년대 중반이다. 남북전쟁이 시작되기 조금 전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는 이때 건너온 중국인들의 노동력이 없었으면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만큼 값싼 중국 노동력은 미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철도가 완성된 후에는 백인들의 생각이 달라진다. 경제가 안 좋아지고 일자리가 귀해지면서 백인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진 것이다. 그 결과 만들어진 법이 1882년의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이었다. 간단하게 말해 중국인 노동자들이 더 이상 건너오는 것을 막고, 미국에 온 중국인들이 미국의 시민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법으로, 지금도 미국에서 제정된 가장 인종주의적인 법으로 여겨진다. 이 법이 폐지되는 것은 60년이 지난 후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된 미국이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다.

이 폰트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 인종주의적 이미지에도 사용되었다. (이미지 출처: Salisbury University)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인 배척법에 구멍(loophole)이 생겼다. 1915년에 일부 업종에 한해서는 중국에서 인력을 데려올 수 있게 법이 개정되었는데, 여기에 요식업, 즉 식당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자 미국으로 이민 오고 싶었던 중국인들에게 기회가 열렸고, 그들이 미국에 오기 가장 쉬운 방법이 식당 종업원이 되는 것이었다. 미국 전역에 중국 음식점이 확산된 중요한 계기다. 그렇게 늘어난 중국 식당들과 함께 완톤 폰트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여전히 궁금증은 남는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중국 식당에서 그 폰트를 자발적으로 사용했다면 그걸 인종주의적인 폰트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거다.


'완톤 폰트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