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액시오스(Axios)라는 매체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2017년이었다. 내가 미국 정치 소식을 챙길 때 빼놓지 않고 읽던 폴리티코(Politico)에서 두 사람이 나와서 뉴스레터를 창간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폴리티코 같은 훌륭한 매체에서 나와서 고작 뉴스레터를 만들었다고?' 게다가 이 중 한 사람은 폴리티코의 공동 창업자였다. 아무리 미국의 미디어 산업이 역동적이라고 해도 매체의 창업자가 기자와 함께 직장을 나와서 완전히 새로운 매체를 만든다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그 매체가 뉴스레터?

그 두 사람은 짐 밴드하이(Jim VandeHei)와 마이크 앨런(Mike Allen)이다. 이 둘은 폴리티코에서 함께 일하기 전에는 각각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에서 정치부 기자를 하던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기자들은 원래 매체를 쉽게 옮겨 다니지만 (그래서 기자 개인의 브랜드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대형 매체를 나와서 창업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월급도 월급이지만, 매체의 브랜드가 취재원에 접근할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그렇게 탄생했다. 폴리티코가 탄생한 시점은 2007년, 버락 오바마라는 낯선 정치인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바람몰이를 하던 때였다. 뉴스거리가 터져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각종 뉴스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오바마의 소식을 하루 종일 업데이트하며 팔로우하고 있었는데–당시 트위터는 지금처럼 뉴스를 챙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기존 매체들의 뉴스 사이클은 너무 느렸다.

폴리티코는 바로 그 시점에 빠르게, 그것도 무료로 정치 뉴스를 업데이트하면서 중독적인 팬을 만들어 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역사적 미국 대선이 끝나고 오바마가 백악관에 들어갈 때 즈음, 폴리티코는 정치 매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매체를 띄울 때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중요한 예다.

짐 밴드하이와 마이크 앨런 (이미지 출처: Vanity Fair)

밴드하이와 앨런이 폴리티코를 나와 액시오스를 창업한 시점도 아주 좋았다. 액시오스는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되던 2016년에 설립되어 2017년에 런칭했다. 오바마의 선거운동 때와는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이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던 시절이다. 트럼프가 들어간 백악관은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이 일이 터졌다. 요즘 일론 머스크가 하는 것처럼 트럼프는 사건을 매일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사에게는 사업의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은 타이밍으로만 할 수는 없다. 소비자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어야 한다. 폴리티코가 경험 많은 기자들의 취재력(은 결국 좋은 취재원을 접촉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으로 다른 데서는 듣지 못하는 정치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면서 관심을 사로잡았다면, 액시오스는 뭘로 사람들을 붙잡았을까?

이메일로 보내주는 짧은 기사였다. 궁금하다면 아래가 바로 액시오스가 하루에 몇 번씩 보내오는 뉴스레터다:

최근 액시오스의 뉴스레터 길이

제목이 뉴스의 전부다. 그 밑에 작은 내용은 "이게 왜 중요하냐면(Why it matters)"으로 시작해서 한 줄 설명을 넣고 만다. 더 알고 싶다면 맨 아래에 있는 파란색 버튼("액시오스에서 더 읽기")을 누르면 된다. 이건 당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뉴스레터들과는 차별된 방식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액시오스는 다른 뉴스레터들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최근 뉴스레터이고, 초기에는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나오는 경쟁 뉴스레터 언론들이 점점 더 심층적이고 긴 글을 쓰는 쪽으로 가는 추세를 보이는 반면, 액시오스는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글의 길이를 더 줄이는 모양새다.

도대체 무슨 확신이 있길래 이렇게 할까?

액시오스 초창기 시절 뉴스레터의 길이

지난해 가을, 짐 밴드하이와 마이크 앨런은 현 CEO 로이 슈워츠(Roy Schwartz)와 함께 자신들이 가진 확신의 근거를 이야기한 책을 펴냈다. 바로 '스마트 브레비티(Smart Brevity)'라는 책이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우리는 왜 짧게 쓰는가?'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 책이 나에게 '당신이 글을 길게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인가, 아니면 짧게 쓸 줄 몰라서 길게 쓰는 것인가'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짧게 쓰는 것은 답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 도달해야 할 공통된 목표인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액시오스답게) 아주 간결한 두 문장으로 표현한다: "간결함은 자신감이다. 장황함은 두려움이다. (Brevity is confidence. Length is fear.)"

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게 쓰는 이유를 "모호하게 사고 하고" "형편없이 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는 일반인뿐 아니라, 글을 쓰는 게 직업인 기자들, 그것도 유명 신문사의 기자들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이들 유명 매체, 심지어 자신들이 세운 매체까지 떠나서 혁명적인 시도를 하게 된 이유는 이런 길게 쓰는 관행을 떠나려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짧은 글을 쓰려고 할까? 우리는 "인터넷 시대에 사람들은 긴 글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독자들이 종이 신문, 잡지를 읽던 시대에는 그들이 얼마나 글을 읽지 않는지 몰랐는데 인터넷이 보급되는 바람에 그들이 실제로 읽는 양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우리를 발가벗겨 진실 앞에 드러냈"고 이들은 그 팩트 앞에서 겸손해지게 되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이상 기자들이 길게 쓰는 것은 잘해야 자기만족의 수단이고, 대부분의 경우 글을 짧게 줄여서 표현하지 못하고 서두른 결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한국 언론사들의 요청으로 '디지털 시대 언론의 글쓰기'라는 주제의 강의를 하곤 했다. 그때 나는 기자들에게 "사람들이 신문 기사를 어떻게 읽는지 제발 관찰 좀 하시라"라고 당부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읽는지를 직접 보고, 측정할 수 있다면 지금과 같은 글을 쓸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같은 뉴스를 다루는 액시오스의 기사와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비교하는 슬라이드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뉴욕타임즈처럼 길게 쓸 수도 있고, 액시오스처럼 짧게 쓸 수도 있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런데 작년에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야 언론사에서 부탁해서 분석을 해준 거였지만, 액시오스는 왜 자신의 영업 비밀을 밝히는 책을 만들었을까? 이 책에 따르면 액시오스의 짧게 쓰기를 좋아한 건 언론사 기자, 독자들뿐이 아니었다고 한다. 각종 기업에서 이들에게 글과 슬라이드를 함축적으로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문의가 쇄도했고, 그걸 이야기하고 다니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얘기. (책에서 이런 걸 읽으면 그냥 자기 홍보라고 생각하고 말겠지만, 내가 목격한 한국의 기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생각해 보면 크게 부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따라서 액시오스는 이 책을 언론사 종사자들만을 위해 쓰지 않았다. 회사에서, 혹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 역시 훨씬 더 간결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그리고 상대방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다면, 길게 쓸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언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이메일을 쓰고 사람들과 텍스트로 의사소통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이 책도 일반적인 책보다 훨씬 짧고, 배치도 시원시원하다. 말하자면 액시오스 뉴스레터 포맷의 책 버전이다. 페이지를 펴들고 '어라, 책이 이렇게 생겨도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저자들은 '그게 우리가 말하려는 거예요'라고 대답할 거다.


이 책의 한국판을 펴낸 생각의힘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유료 구독자 여러분께 10권을 선물하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좋아하고 매일 읽는 뉴스레터를 설명한 책을 소개할 수 있는 데다가 구독자 선물까지 주신다고 하셔서 기회를 덥석 잡았습니다. 이 책을 원하시는 분들은 항상 하셨던 것처럼 댓글에 의사를 밝혀주시면, 오는 29일(토요일) 자정까지 댓글을 달아주신 분 중에서 10명을 무작위로 추첨해서 일요일 오전에 발표하겠습니다.

응모하신 분들은 평소 오터레터를 받으시는 이메일을 꼭! 확인해 주시고, 출판사의 사정으로 국내 주소로 밖에 발송해 드리지 못함을 양해해 주세요. (프로 팁: 해외 독자분들 중에서 당첨되실 경우 국내 가족의 주소로 보내시는 분들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