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푸틴의 정적"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시베리아의 형무소에서 47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의 죽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숨졌다는 러시아 당국의 발표는 사실로 받아들인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러시아 정부에 대한 비난 성명이 나오고 있다.

나발니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가 귀국하는 즉시 체포하겠다"라고 벼르고 있는데도 자발적으로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탄 모습. 그의 귀국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함께 타고 있던 기자와 승객들이 기내에서 그의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려서 바이럴이 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에서는 특히 나발니가 비행기에서 아내와 함께 앉아 '릭 앤 모티(Rick and Morty)' 만화를 보는 게 화제가 되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즐기게 될 작품으로 (레딧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릭 앤 모티'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공감대가 만들어졌던 거다.

귀국하는 비행기 속 나발니와 그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 (이미지 출처: Reddit)

그런데 그걸 보면서 많은 사람이 궁금했던 것이, '러시아로 돌아가면 감옥에서 죽을 것을 알면서 왜 돌아갈까?'였다. 서방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러시아에 가서 죽을 게 분명하다면, 차라리 외국에 머물면서 투쟁을 이어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재판대에 선 역사'에서 이야기한 비시 정권의 필리프 페탱이나, 전쟁 중에 영국으로 피신했던 샤를 드골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나발니는 러시아로 가서 죽는 게 마치 자신의 숙명처럼 생각하고 2021년 1월, 베를린을 출발해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 선택이 얼마나 대담한 것이었는지는 직전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잠시 독일에 머무르고 있던 이유는 러시아 정부가—반체제 인사들에게 항상 해왔던 방식대로—그를 암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발니는 2020년 8월 러시아의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던 중 독약(소련과 러시아가 자주 사용해 온 노비촉)에 노출되어 쓰러졌고, 비행기가 비상 착륙한 옴스크의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독일은 나발니를 살리기 위해 러시아로 특별기를 보내 베를린으로 데려와서 치료했던 거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자기 발로 러시아에 간다는 건 목숨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의 예고대로 나발니가 체포된 후, 사람들은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러시아인들이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이 서구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가령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어느 러시아 군인의 인터뷰도 그랬다. 그 사람은 푸틴이 시작한 이 전쟁은 잘못된 전쟁이고 반대한다면서도 "러시아의 전쟁이기 때문에 나라가 보내면 가야 한다"고 했다. 이번에 가면 죽을 게 분명하지만, 자기에게 선택지가 있어도 갈 수밖에 없다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그럼, 나발니도 푸틴의 손에 죽는 게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러시아로 돌아간 걸까?

러시아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난 나발니 (이미지 출처: CNN)

알렉세이 나발니는 대학을 졸업한 후 1998년부터 러시아에서 기업 변호사로 일했다. 그리고 2000년에 러시아 통일민주당("야블로코")에 가입해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2011년부터 러시아의 부패상을 국민들에게 알리면서다. 정치와 경제 부문이 결탁한 러시아 사회의 부패는 역사도 길 뿐 아니라, 아주 심각하다. 나발니는 "러시아는 모든 것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민이 가난하고 불행하다고 주장했고,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부패로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푸틴과 그를 옹호하는 권력층에게 나발니의 지적은 눈엣가시였고, 나발니는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 무려 10번 이상 체포와 구금을 겪었다.

러시아 사회의 부패, 특히 형무소의 부패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발니는 암살 시도에서 간신히 살아난 약한 몸으로 러시아의 형무소에 들어가는 건 그저 암살의 과정만 길어질 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아내 율리아도 자기 인스타그램에 "알렉세이에게 최악의 일이 일어나면, 그의 죽음은 당신들의 의식에 남아있을 것이고, 푸틴의 의식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푸틴은 당신들을 산 채로 잡아먹고, 그게 당신들의 잘못이라고 주장할 겁니다"라고 썼다. 남편이 형무소에서 죽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거다.

이 기사는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의 반체제 정치인들은 러시아를 떠나 망명 생활을 하면서 모스크바에 투쟁하는 데 익숙하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독재 정권은 영원하거나, 아주 오래 갈 것이기 때문에 긴 싸움이 될 것이고 그러려면 살아서 싸우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발니의 생각은 달랐다. 푸틴은 스탈린 이후로 가장 오래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이지만, 15살 때 소련이 붕괴하는 것을 목격한 나발니는 푸틴의 집권이 영원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그는 과거의 반체제 인사들과 달리, 러시아에서 푸틴에 맞서야 하고, 설령 그러다가 죽더라도 자신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푸틴에 맞설 용기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그가 러시아로 되돌아간 이유다.

시위대와 함께 거리를 행진하는 알렉세이 나발니 (이미지 출처: Politico)

나발니가 생전에 사람들에게 자주 하던 말은 "모든 일은 잘될 겁니다"와 "러시아는 행복해질 겁니다"였다고 한다. 푸틴에 맞서온 사람들은 "러시아는 해방될 것이다"라는 구호를 사용해 왔지만, 그는 "러시아는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구호를 선호했다.

"우리는 러시아에 자유가 없는 것에만 맞서 싸울 게 아니라, 이 나라에 행복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러시아는 모든 것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구호를 바꿔야 합니다. 러시아는 자유만을 회복하는 게 아니라 행복도 회복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입니다."

이제 그의 바람을 현실로 바꿀 책임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넘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