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선수와 남자선수를 분명하게 구분해온 엘리트 체육계가 빠진 고민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자가 여자 종목에 몰래 들어와서 경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별을 확인하는 절차를 만들었는데, 과거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생각했던 성(sex)이라는 게 살펴볼수록 복잡했다. 외부에 드러난 생식기도, 성염색체도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 아마추어 육상경기 연맹(IAAF)은 투기 종목에서 사용하는 '체급(weight class)'과 비슷한 접근법은 선택했다. 복싱이나 레슬링, 이종격투기와 같은 스포츠는 체중을 기준으로 체급을 만들어 같은 체급의 선수들끼리만 경기하게 한다.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선수들은 빠르고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어도 크고 무거운 선수들의 물리적인 무게와 크기가 가진 파괴력을 이기기 힘들다. 이 경우 선수의 안전이 문제가 된다.

물론 육상경기는 격투기가 아니라 선수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경기를 할 경우 운동경기는 남자선수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인류의 절반이 스포츠에 관심을 잃는다면 아마추어 스포츠의 존재 이유가 의심받게 된다. 게다가 앞의 글에 등장한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가 겪은 일도 반복되어서는 안되었다. 단순히 XY 염색체를 가졌다는 것이 경기력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는 과학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성별의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inition, 사물 또는 현상을 객관적이고 실험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정의)에 불과한 염색체 구분법 때문에 출전의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들고나온 것이 테스토스테론 측정이다. 경기력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양을 측정해서 이게 일정 수준을 넘으면 여자선수들과 경쟁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어떤 성염색체를 가졌는지, 혹은 어떤 모양의 생식기를 가졌는지 검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도 피할 수 있고, "자웅동체(hermaphroditite)는 어떻게 정의하느냐"처럼 당장 합의를 도출하기 힘든 문제도 피할 수 있다.

자가당착(自家撞着)

호르몬 양을 마치 체급의 체중처럼 측정하기로 한 이상 "여자선수로서 경쟁할 수 있는" 테스토스테론의 양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단순히 여성 평균보다 많으면 안 된다고 정할 수는 없고, 특정 선을 넘을 경우 경기력을 향상시킨다는 과학적 조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IAAF는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남성들의 수준"이면 안된다고 했고, 그 기준은 1리터당 10나노몰(nanomole)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렇게 다른 여자선수들보다 많은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다고 해서 모든 종목에 유리하지는 않더라는 사실이다. 100m, 200m 같은 단거리나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기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나오는 여자선수가 더 빠르지 않았고, 오로지 400m, 800m, 1,600m 같은 중거리 달리기와 400m 허들, 투포환 등 일부 종목에서만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다. (정확하게는 1.8~4.5% 정도 빨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환산하면 순위를 바꿀 만한 차이가 된다). 결국 IAAF는 이 종목들에서만 여자선수들의 호르몬 레벨을 마치 체급처럼 측정하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 캐스터 세메냐를 두고 정한 기준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세메냐가 바로 중거리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세메냐의 테스토스테론 레벨로는 여자 종목에 참여할 수 없다. 이런 결정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IAAF는 세메냐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호르몬제를 복용해서 세메냐가 가진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경기를 하기 6개월 전부터 낮추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호르몬제를 포함한 약물을 복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지만, 세메냐와 같은 간성의 선수들은 오히려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과학적인 근거를 이야기할 때는 그럴듯하게 들려도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결국 세메냐를 비롯한 간성인을 "잡아내기" 위한 조치처럼 보인다면 근거없는 의심이 아니다. 세메냐는 아주 뛰어난 선수이지만 그렇다고 세계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는 우사인 볼트 같은 존재가 아니다. 아래는 현재 여자 800m 달리기 기록이다. 세메냐는 상위 5위 안에 들기는 했지만 최고 기록의 보유자는 아니다. 그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고 해도 그게 압도적인 차이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여자 800m 달리기 세계 기록

그런가 하면 현재 세계 1위 기록 보유자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야르밀라 크라토츠빌로바는 약물을 복용했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그 기록을 세운 것이 1980년대였고, 당시만 해도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가 선수들의 약물복용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백인 선수는 약물을 복용하고 뛰었다는 의심을 받아도 세계 기록을 인정하고 있는 육상 연맹이 흑인인 세메냐는 자신이 갖고 태어난 자연의 몸으로 뛰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약물을 통해 인위적으로 경기력을 떨어뜨리게 하는 셈이다. 게다가 선수 자신이 평생 살아온 몸의 호르몬을 강제로 떨어뜨리는 약을 6개월 동안 복용하는 것은 경기력을 저하시키는 것을 떠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IAAF의 결정은 문제가 많다.

인도의 여자 육상선수 두티 찬드(Dutee Chand) 역시 성별검사의 대상이 되었다.

인종주의의 역사

"남자 같다"는 의심을 받고, 그래서 성별 검사의 대상이 되는 여자 선수 중에 유난히 짙은 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는 인종주의적 역사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인종주의적 편견을 갖고 산다.

캐스터 세메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선수이고, 남아공은 세계적으로 가장 늦게까지 인종차별주의적 정책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다. 세계 육상 연맹이 세메냐의 신체를 살펴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논의하는 모습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은 19세기에 지독한 인종차별적 모욕을 받으며 백인들의 구경거리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남아공 여성 사르치 바트먼(Saartje Baartman)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여성은 둔부와 성기가 눈에 띄게 크다는 이유로 '호텐토트 비너스(Hottentot Venus)'라는 별명이 붙었고, 노예로 팔려 유럽 전역을 돌며 "전시"되는 비인간적인 수모를 겪었다. 화가, 과학자(naturalist)들은 바트먼을 신기하게 관찰, 측정했고, 일반인들은 신기한 구경거리로 생각했다. 이들은 바트먼을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인종주의적 편견, 즉 흑인은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자신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려가 백인들의 구경거리로 살았던 바트먼은 알콜중독과 성병으로 고생하다가 20대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백인들은 죽은 후에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바트먼의 해골과 생식기는 시신에서 분리되어 1974년까지도 파리의 박물관에 마치 동물 표본처럼 전시되고 있었다. 이런 역사를 잘 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들에게 세메냐가 백인들의 연구 대상이 된 상황은 변함없는 인종주의 역사의 변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바트먼도, 세메냐도 결국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백인들의 관찰과 측정의 대상이 된 흑인 여성인 것이다.

세메냐가 사르치 바트먼처럼 취급된다고 주장하는 오피니언 칼럼

맺음말: 매들린 페이프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기사를 뒤지는 중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매들린 페이프(Madeleine Pape). 2019년에 젠더 연구로 미국 위스컨신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호주 출신의 여성이다. 페이프는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연구 주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는 '생물학적 성'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특정 기관과 정치적인 문맥에서 일어나는 걸 연구합니다. 특히 '생물학적 성'과 '성의 차이'라는 개념이 스포츠와 생체의학의 젠더 평등에 어떻게 편입되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정책입안자와 과학자, 그리고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성(sex)'을 어떻게 법제화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성이 얼마나 정의하기 어렵고 모호하며, 항상 젠더, 인종, 국가, 그리고 다른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의 형식들과 얽히는지 설명합니다."

페이프는 어떻게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아래 사진에 그 답이 있다.

매들린 페이프(왼쪽)와 세메냐(오른쪽에서 세번째)

페이프는 세메냐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세계 육상계의 주목을 받게 된 바로 그 2009년 베를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 함께 출전해서 그와 같은 트랙에서 경쟁한 호주의 육상 대표선수였다. 이듬해 큰 부상을 입어 선수생활을 포기한 페이프는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유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페이프가 생물학적 성이라는 주제, 그것도 스포츠와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성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세메냐 때문이라고 한다. 페이프는 2019년 IAAF가 세메냐의 출전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린 직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I was sore about losing to Caster Semenya. But this decision against her is wrong (나는 한 때 캐스터 세메냐에게 진 것을 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IAAF의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다)'라는 글의 제목이 그의 입장을 한눈에 보여주지만, 그의 글은 전문을 한 번 읽어볼 만하다.

페이프는 2009년 대회에서 세메냐가 같은 800m에 출전한 다른 선수들보다 무려 2초나 빨리 달리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IAAF가 세메냐의 생물학적 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보면서 세메냐가 여자 경기에서 뛰는 건 "불공평(unfair)"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위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모두가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이 주제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접하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페이프가 새롭게 접한 주장은 이랬다. "자연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성들을 경기에서 배제하면 안되는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생물학적 성과 경기 능력은 단순히 테스토스테론의 측정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둘 다 너무 복잡한 문제다. 게다가 이를 규제하려는 노력은 항상 (성별) 테스트의 대상으로 지목된 여성들에게 큰 해(considerable harm)를 입혀왔다."

페이프는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다른 모든 상황에서 여성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육상 트랙에서만 여성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봤고, 자신의 답은 '그럴 수 없다'였다고 한다. 그런 결론을 내린 페이프는 이 주제를 학문적으로만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위해 각종 증언대에 서기도 하고,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그가 2009년에 함께 트랙에서 뛴 이후 처음으로 세메냐를 다시 만난 건 2018년이었다고 한다. 페이프는 그때의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세메냐가 그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팬들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우리 스포츠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로 가는 길은 많은 저항이 있겠지만 이제는 분명 생각해봐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