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벌어진 일 ③
• 댓글 2개 보기조란 맘다니는 어제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서 자신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맘다니는 선거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지만—선거에 임박해서는 맨해튼 가장 북쪽부터 남쪽 끝까지 21km를 걸으며 유권자와 만나기도 했다—결과에 놀랐다고 했다. 쿠오모 전 주지사를 상대로 그렇게 압승을 거둘 줄은 본인도 몰랐던 거다. 맘다니는 유권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말은 옛날 수능 고득점자가 "교과서에 충실했다"라고 하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지만, 맘다니는 정말로 유권자의 말을 듣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에즈라 클라인과 크리스 헤인즈는 팟캐스트에서 맘다니가 유권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불만을 다 듣고, "제가 그걸 공약으로 시장직에 도전합니다. 저를 찍어 주시겠습니까?"라는 말을 하는 틱톡 영상들을 이야기한다. 진행자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주고 인터뷰하는 건 틱톡에서 인기 있는 포맷인데 맘다니는 그걸 아주 잘 이용했다는 거다.
그런데 맘다니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건 단순한 홍보 방법이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소외되고 무시된 유권자들의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단다. 그들이 뉴욕에 살면서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뉴욕은 민주당 지지에서 트럼프 지지로 크게 돌아선 대표적인 지역이다. 그리고 그렇게 민주당에 등을 돌린 사람들은 노동자 계층과 이민자들이다.
트럼프가 승리한 직후, 맘다니는 트럼프를 지지한 지역들을 찾아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집세를 비롯한 뉴욕의 물가 때문에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거기에 선거운동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 결과는?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던 지역에서 맘다니 지지자들이 늘어났다. 브라이튼 비치, 칼리지 포인트, 배스 비치 등 트럼프를 지지했던 지역에서 맘다니가 승리한 것이다.

물론 맘다니가 승리한 건 공화당이나 무소속 후보들과 경쟁하는 본선(올해 11월에 열린다)이 아니라, 본선에 보낼 후보를 뽑는 민주당 내 경선이다. 하지만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이 단순히 보수, 극우라면, 민주당 후보 중에서도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맘다니 같은 후보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같은 지역에서 맘다니를 가장 많이 지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민주당과 공화당,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맘다니는 이렇게 말한다. "유권자들에게 무엇에 반대하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그들이 지지할 수 있는 뭔가를 제시한다면(if we give them something to vote for, not just tell them what to be against) 그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이는 사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은 트럼프의 재선을 막자는 것을 해리스를 지지해야 할 가장 큰 이유로 제시했다.
타 후보를 막기 위해 투표소로 가라는 게 반드시 나쁜 전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유권자들에게 한 후보에 대한 불만, 혹은 두려움이 있으면 다른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 박근혜 파면 이후에 당선된 문재인, 윤석열 파면 이후에 당선된 이재명은 각각 박근혜, 윤석열과 대선에서 맞붙어 패했지만, 박근혜, 윤석열이 국민을 실망시킨 후에야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미국의)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자기들이 가진 불만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민주당 후보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설명 외에도 유튜브 영상에서 특히 눈에 띄는 요소가 있다. 영상에 사용된 색과 폰트다.

특히 비디오 영상에 노르스름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필터는 X세대 이상에게는 1980년대 컬러 필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는 '우리 세대의 영상 문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 필터는 2017년에 발표되어 인기를 끌었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에서 햇볕이 쏟아지는 몇 장면에서 사용되어서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맘다니는 이 필터를 훨씬 더 강하게 사용했다.
한 디자이너는 맘다니가 사용한 따뜻한 느낌의 필터와 친근한 폰트가 "영혼"과 좋은 "바이브"(vibe)를 갖고 있다며, 그에 비하면 다른 후보들의 홍보물은 마치 소독한 것처럼 창백하고 가짜 같아 보인다고 평가했고, 패스트컴퍼니는 맘다니가 입고 나오는 옷부터 비디오 필터까지 모든 것이 성공적인 21세기 선거 홍보를 보여주는 마스터 클래스"라고 극찬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맘다니의 홍보물은 모두 프로들의 작품이다. 우선 브랜딩을 담당한 회사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포지(Forge)로, 회사 웹사이트에 맘다니의 홍보물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미국의 도시, 건축, 디자인 등을 다루는 매체인 커브드(Curbed)는 맘다니의 홍보물 디자인이 "전형적인 선거운동 홍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래 두 후보의 홍보물을 비교해 보면 쿠오모의 홍보 디자인이 "소독한 것 같다"는 얘기나, 맘다니의 디자인에 "영혼이 있다"는 말이 모두 이해된다. 쿠오모의 홍보물은 뉴욕이 아니라, 미국 어디에서 사용해도 될 것 같은 디자인이다. 후보 본인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전국구 정치인"이어서도 그랬을 수도 있고, 권위와 안정감을 주는 디자인을 선호했을 수도 있고, (가장 가능성이 높게는) 별 고민 없이 대부분의 기성 정치인들이 사용해 온 시각 언어를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
그에 반해 맘다니의 디자이너들은 뉴요커가 알아보고 동일시하는 요소를 넣으려고 애썼다. 가령 뉴욕의 다섯 개 보로(borough, 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요소를 넣은 게 그렇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각 보로의 상징물이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그 상징에 어울리는 폰트를 정성스럽게 고른 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왼쪽 아래 맨해튼 이미지에서 ZOHRAN에 사용된 폰트는 뉴욕의 대표적인 매체인 뉴욕 매거진의 로고 폰트이고, 가운데 위에 있는 브루클린 이미지 속 Brooklyn이라는 단어에는 그곳에서 유명해진 네이선즈 핫도그 간판에 사용된 폰트를 사용했다.)

홍보물 전반에 걸쳐 사용된 세 가지 색상도 그냥 선택한 게 아니다. 뉴욕의 메트로 카드와 택시에 사용되는 노란색,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팀의 파란색, 그리고 뉴욕에서 시도 때도 없이 보게 되는 소방차의 빨간색을 골랐다고 한다. 이렇게 세심하게 고려한 것을 생각하면 뉴욕의 영혼이 담겨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선거를 통해 잘 알려진 맘다니의 포스터를 만든 디자이너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포스터를 만드는 타일러 에반스(Tyler Evans)라는 것. 맘다니 포스터는 버니 샌더스의 포스터와 완전히 다르지만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미학—사회 변화를 원하는 젊고 진보적인 유권자에 어필하면서, 동시에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에 어울리는 강렬하고 개성 있는 폰트와 색—에서는 다르지 않다. 다만, 뉴잉글랜드 지역의 정치인인 샌더스와는 다른 시각적 언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버니 샌더스와 조란 맘다니는 같은 민주사회주의자들이고, 여기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도 포함된다. 2021년에 오터레터에서 발행한 글 'AOC의 브랜딩 전략'에서 설명한 것처럼, AOC와 그의 선거운동을 도운 민주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이나 공화당 정치인들의 숨 막힐 정도로 깔끔하고 틀에 박힌 브랜딩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어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민주사회주의 정치인들의 포스터가 민주당, 공화당 정치인들의 것보다 어수선하고 아마추어스럽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소 어수선한 느낌은 디자이너가 의도적으로 만든 일종의 '숨쉴 공간(leeway)'이다. 포지 디자인의 아니쉬 부파시(Aneesh Bhoopathy)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보 진영과 함께 작업하면서 깨닫게 되는 게 있어요.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디자인을 뒤섞고, 프린트해서 자기들만의 것을 만들어 낼 거라는 사실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만든 디자인이 세상에 나가서 우리가 생각 못한 자기만의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업 브랜딩과는 다릅니다." 이런 철학은 아래의 스티커만 봐도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디자인이지만, 누가 가져다가 조금 바꾸거나 새로운 조합을 해도 여전히 맘다니의 선거운동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담고 있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선거운동이 눈에 띄게 젊고, 발랄하고, 유권자가 참여하는 자발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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