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이 심각한 문제에 빠졌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트럼프가 처음 당선되던 2016년에는 전 세계에서 "도대체 미국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호기심 섞인 관심을 보였다면, 그가 두 번째 당선되어 취임한 지금은 다르다. 트럼프가 집권하는 동안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고, 미국에서의 트럼프의 집권이 전 세계 민주주의에 어떤 나쁜 신호를 보내는지 자국에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현재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이 극우 매체를 통해 판사를 공격하고, 재판과 법원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트럼프가 지난 4년 동안 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세계가 지금 심각하게 우려하는 이유는 다시 돌아와 자신에 찬 트럼프가 벌이는 일의 규모, 혹은 파괴력이 1기 때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미국발 보호무역주의가 기존의 세계 질서를 위협하면서 경제에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지만, 미국 안에서 보면 트럼프가 시작한 무역 전쟁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처럼 느껴진다.

폭스뉴스와 함께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선거 내내 트럼프를 지지, 옹호하는 사설을 냈다. 그런 신문이 트럼프의 무역 전쟁을 두고 "역사상 가장 멍청한 무역 전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보는—전부는 아니지만—많은 미국인의 심정을 대변해 준다.

"정말로 저렇게 할 줄은 몰랐다"는 거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중국은 물론 주위의 우방국들에도 폭탄 관세를 매기겠다고 다짐하며 보호무역주의를 외쳤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신문이 당연히 긴장하고 경계해야 하는 주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급히 만들어 공개한 유튜브 영상에서도 설명하지만, 관세가 올라가면 직접적인 피해는 국내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고용 창출 효과는 미지수이며, 무엇보다 일단 올라간 관세는 쉽게 내려오기 힘들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설마 그걸 정말로 실행할 줄 몰랐던 거다.

미국 보수의 그런 안일한 태도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그런 자해 행위를 할 정부가 어디에 있겠나"라며 오히려 그런 경고를 한 쪽을 비난한 한국 보수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한국도, 미국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짜 시나리오라는 교훈을 깨우치는 중이다.

'윤석열 1기'가 없었던 한국은 그렇다 치고, 트럼프를 겪어 봤던 미국은 왜 이런 사태를 짐작하지 못했을까? 트럼프의 폭풍이 몰려온다는 수많은 경고가 있었는데 왜 무시했을까?

이미지 출처: Newsweek

월스트리트저널과 미국의 보수는 트럼프 1기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기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추진해야 할 어젠다로 연방준비제도의 폐지, 의회의 힘을 무시하는 수준의 대통령의 권한 강화, 기독교적 가치 주입, 연방 교육부 폐지와 같은 과격한 우익의 주장이 담긴 '프로젝트 2025'를 발표하고, J.D. 밴스 부통령이 서문까지 썼지만 사람들은 "나는 그걸 읽어 본 적도 없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믿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트럼프가 그렇게 길고 지루한 문서를 읽을 사람이 아니다"며 그의 말을 믿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그 문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트럼프 1기 때 트럼프를 보좌했던 사람들이고, 트럼프와 함께 복귀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트럼프의 1기 행정부가 상대적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가드레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과격한 주장을 하고, 황당한 정책을 추진해도 그걸 제지하거나 가다듬어 정상적인 수준에서 정부가 운용되도록 하는 인물들이 백악관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안에 있었다. 처음 대통령이 된 트럼프에게는 그들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공화당 내에도 트럼프를 경계하는 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준을 받기 위해서라도 "정상적인" 장관급 인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나온 후 "트럼프는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고 비판했고, 트럼프는 그들을 배신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2기 행정부를 준비하면서 가드레일이 아닌, 자신의 말을 그대로 이행할 인물을 선택했다. 물론 지난 선거 기간 내내 미국 언론에서 예견했던 일이다.

의회도 과거와 다르다.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만 해도 트럼프는 의회를 의식해야 했다. 2007년부터 올해 1월 초까지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은 트럼프에 협조했지만, 그 관계는 충성이라기보다는 거래였다. 오바마 케어를 없애거나, 보수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것과 같은 공통된 어젠다에는 협력했지만, 트럼프가 지지자들을 부추겨 일으킨 의회 점거 폭동과 관련해서는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고, 이번 무역전쟁에도 비판적이다.

하지만 의회도 지금은 다르다. 매코널은 트럼프의 무모한 관세 정책을 비판하지만, 다른 공화당 의원들은 땅에 바짝 엎드렸다. 의원들과 잘 아는 기자들에 따르면 공화당 의원들도 사석에서는 트럼프에 비판적이지만, 그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가는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분노를 사게 되고,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조용히 트럼프의 말을 듣는다. 이제 그에게는 거칠 게 없다. 이게 트럼프 2기가 폭풍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그럼, 트럼프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뭘까?

이미지 출처: KTLA

지난 글 '어느 인사청문회'에서 트럼프가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마르코 루비오의 이야기를 했다. 상원 인준을 통과한—상대적으로 정상적인—루비오 국무장관과 스캇 베센트 재무장관은 트럼프가 원하는 일을 해줄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대통령 권한의 확장과 보복이다. 이 작업에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은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

트럼프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잘 보여준 것은 루비오와 베센트의 청문회가 아니라, 지난달 말에 있었던 다른 세 명의 인사청문회였다. 캐시 파텔(Kash Patel) 연방수사국(FBI) 국장 후보, 털시 개버드(Tulsi Gabbard) 국가정보국장 후보,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obert Kennedy, Jr.)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가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은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도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고, 공화당 의원들도 분노하는 선택이다. 트럼프는 왜 이들을 선택했을까?

청문회에 나온 (왼쪽부터) 털시 개버드, 캐시 파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이미지 출처: CBS News, Reuters

우선 이 세 명은 중요한 직책을 맡을 자격에 미달하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관련 경력이 있는 캐시 파텔의 경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정보 분야에서 일했고, 국방장관 비서실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지만, FBI라는 조직을 이끌 만한 자질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에 철저하게 충성하는 인물로 유명하고, 트럼프가 주장하는 딥스테이트(Deep State) 음모론을 믿고 추종하는 사람이다. 그 음모론을 담은 책도 출간했고, 심지어 그걸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그림책(이 책에서 트럼프는 왕으로 등장한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각종 범죄 혐의로 FBI의 수사를 받았던 트럼프는 FBI를 완전히 다시 만드는 수준의 숙청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바를 철저하게 수행할 인물로 파텔을 고른 것이다.

캐시 파텔이 쓴 두 권의 책. 왼쪽은 아동용 그림책으로 "왕을 없애려는 음모"라는 제목이고, 오른쪽은 "정부와 깡패들"이라는 제목이다.
이미지 출처: Amazon

털시 개버드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조금 다르다. 둘 다 아주 최근까지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면서도 민주당과 결이 크게 달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개버드의 경우 하와이 출신으로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고, 2020년에는 대선 후보가 되려고 민주당 경선에 출마해 조 바이든, 카멀라 해리스를 공격했지만 특별한 반향이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사퇴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무렵부터 푸틴의 결정을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개버드는 러시아의 자산(asset)"이라는 말이 퍼졌다. 러시아의 국영 미디어에서 하는 주장을 고스란히 반복했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의 침공이 푸틴의 "똑똑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트럼프에게 개버드의 주장은 크게 문제 될 게 없었고, 민주당을 탈당해서 자기를 지지하기로 하면서 개버드에 높은 자리를 줄 것은 다들 짐작했던 일이다. 트럼프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한통속이라는 주장은 전형적인 음모론이기 때문에 그걸 믿는 사람, 특히 적국인 러시아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국가의 정보를 책임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트럼프에게는 개버드처럼 '민주당과 정부가 연계된 딥스테이트'를 주장하는 것만큼 확실한 충성 맹세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에게 주는 자리가 중앙정보국(CIA), 국가안전보장국(NSA)같은 미국의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경우, 가문의 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을 나와 무소속 후보로 지난 대선에 출마하는 바람에 바이든의 표를 잠식할 수 있다고 우려했던 사람이지만, 특별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자 사퇴했다. 사퇴 즉시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를 공개 지지할 것인지를 두고 양쪽과 거래를 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한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버드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힘들다면, 케네디 주니어는 미국 국민의 건강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때 환경운동 변호사였던 그는 "백신이 자폐를 일으킨다"는, 이제는 거짓이 증명된 주장을 꾸준히 주장했고, 심지어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도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등, 의료 문제에 관한 각종 음모론을 믿고 주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퍼뜨린 각종 허위 정보는 헬스조선에 정리되어 있다.)

뉴요커의 수전 글래서(Susan B. Glasser)는 이들의 공통점이 "그들이 이끌게 될 기관(institution)의 신뢰성을 의심하고 공격했던 확실한 전력"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목표를 엿볼 수 있다.


'트럼프 폭풍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