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악한 동네 ③
• 댓글 1개 보기옌스 루드윅은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어 브라운의 죽음으로 끝난 비극적인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양쪽이 모두 가해자이고, 피해자인 사건이다—의 생각이 전형적인 '시스템 1'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사고방식은 단순히 즉각적, 무계획적, 충동적인 것만이 아니라, 자기중심적(egocentric)으로 세상을 해석하게 된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게 되면, 다양하고 복잡한 일들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위협을 느끼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게 만든다.
브라운은 자기 앞에서 음식을 빨리 주문하지 않고 시간을 끌며 '스페셜 오더'를 하고 있는 후드를 보면서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식당에 익숙한 그는 이 다른 사람들처럼, 뒤에 대기 손님이 있을 때 이 가게에서 스페셜 오더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알고 있다면 후드도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이게 그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스페셜 오더를 하고 있다면? 그럼 그 사람은 다른 손님들을 고의로 지연시키면서 무례한 행동을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브라운이 분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한 건 후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 식당에서 스페셜 오더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게다가 자기는 일부러 지연시키거나 다른 손님들을 무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남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 후드로서는 브라운이 분노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브라운과 후드에게는 자기가 상대방을 오해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인지적 여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시스템 1의 특징인 이분법 모드, 즉 '내가 맞다면, 상대방이 틀린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붙잡힌 것이다.
두 사람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본 후드의 아들도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아들은 없다. 하지만 가해자인 브라운을 죽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 1 사고방식은 최악을 가정하게 만든다. 그는 '어머니가 모르는 사람에게 폭행당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를 총으로 쏘는 것은 용납된다. 최악의 일은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에 총을 맞은 브라운이 달아나기 시작하자, 그는 '저 가해자가 달아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달아나지 못하게 아예 죽이는 것은 용납된다. 최악의 일은 범인이 달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주말, 시카고에서 일어난 여러 건의 살인 사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살인사건의 3/4 이상이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다. 과연 막을 방법이 있을까?
옌스 루드윅의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말콤 글래드웰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이니아 원예협회'(Pennsylvania Horticultural Society)의 안내를 받아 그 단체에서 진행하는 '공터 바꾸기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한다. 미국에서는 도시에서 고소득층 인구가 교외 지역으로 빠져나가 도심이 공동화하는 일이 흔한데, 그렇게 빈 도심은 저소득층이 사는 가난한 동네로 바뀐다.
하지만 거주자가 줄어들면 빈 건물이 늘어나고, 관리가 되지 않는 건물에는 마약중독자들이 모여들 뿐 아니라, 붕괴 위험도 크기 때문에 시에서는 이런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는 공터가 된다. (자동차 공장들이 떠난 디트로이트는 이런 식으로 도시 규모가 크게 줄었다.) 이런 자투리땅은 관리가 되지 않아 쓰레기가 쌓이고, 보기 흉한 채로 방치된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무려 1만 2,000여 곳의 공터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잡초를 제거한 후, 잔디와 나무를 심고, 주변을 낮은 나무 펜스로 둘러서 작은 공원처럼 만드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트레일러가 버려지고 쓰레기가 쌓이던 쓸모없는 땅이 잔디와 꽃나무가 있는 보기 좋은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더 놀라운 변화는 통계에서 발견된다. 단지 공터를 가꾸기만 한 것으로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총기 범죄가 무려 29% 감소했다. 새로운 주민이 들어온 것도, 경찰이 순찰을 강화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달에 두 번 정도 관리자가 와서 잔디를 깎고 가는 게 전부인데 말이다.
이런 변화의 작동 원리는 뭘까?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살인사건의 77%가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일어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살인이 흥분한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상황을 진정시키고(de-escalate) 흥분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런 종류의 범죄를 줄일 수 있다.
옌스 루드윅에 따르면 어떤 장소는 그렇게 하는 데 좀 더 유리하다. 브라운과 후드 사이에 있었던 것과 같은 감정싸움이 시카고 남부의 험악한 동네가 아닌, 사람들이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안정된 동네에서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줄서기 문제로 시비는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브라운을 잘 아는 이웃이 개입해서 "이분(후드)은 우리 동네 불문율을 잘 모르시는 거 같으니 진정해"라고 말했다면, 브라운은 그날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필라델피아에서 공터를 바꾼 것이 범죄율 감소로 이어진 이유도 그거다. 꽃나무와 잔디가 있으면 밖으로 나와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주말에는 그곳에서 바비큐 파티나 피크닉이 열리고, 아이들이 뛰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는 눈'(eyes on the street)이 늘어난다. 사람들은 말싸움으로 감정이 고조되다가도 보는 눈이 많으면 스스로 감정을 자제하게 된다.
이렇게 '보는 눈'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유명한 도시연구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다. 제이콥스는 이런 종류의 비공식적 사회 통제가 범죄자를 제지하고,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흥분과 폭력을 누그러뜨린다고 했다. 물론 범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범행 장소를 옮길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 2' 사고에 의한 범죄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절대다수는 우발적인 범행이다.
좋은 동네는 분노 때문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은 사람의 흥분이 가라앉게 도와줄 수 있고, 말싸움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옌스 루드윅은 뉴욕시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발견했다. 비슷한 동네들 몇 군데를 골라서 그중 일부에서 가로등과 같은 길거리 조명을 개선했더니, 개선된 동네에서는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중범죄 발생률이 무려 35%나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장소의 변화 자체가 범죄율을 낮추기까지는 사람들의 행동 변화라는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동네가 변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 결과 범죄율이 감소하는 것이다. 루드윅은 시카고에서 십 대 남자아이들에게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폭력 범죄로 구속될 가능성이 50% 적다고 하는데, 거기에서 사용하는 게임 중 하나가 '공 가져오기'다.
아이들을 두 명씩 짝을 맞춘 후에 그중 한 명에게 공을 주고, 다른 한 명에게 상대방의 공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면 공이 없는 아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상대방의 손에서 공을 빼앗기 위해 힘을 사용한다. 게임이 끝나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왜 아무도 상대방에게 공을 달라고 물어보지 않느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대부분 상대가 나쁜 놈이라서 줄 것 같지 않았다고 답한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공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에게 "상대가 공을 달라고 부탁하면 줄 용의가 있었느냐?"고 묻는다. 대부분의 아이는 "그렇다"고 답한다고 한다. "그깟 공 하나가 뭐라고 안 줬겠어요?"라는 게 그들의 말이다.
후드와 브라운의 싸움은 그 공보다 더 사소한, 몇십 초의 대기 시간 때문에 일어났다. 아무도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고,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짐작하고 행동했다. 그들 주변에는 오해를 고쳐 줄 사람이 없었고, 그 결과 그날 밤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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