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 줄리아니가 뉴욕 시장이던 시절에 도입한 과도한 치안 방법('정지 신체 수색')이 범죄율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2013년에 연방 법원이 '정지 신체 수색'이 헌법이 정한 권리를 위배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바람에 뉴욕 경찰은 더 이상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뉴욕의 범죄율은 계속 내려간 것이다.

그런데 앞의 글에서 '깨진 유리창 이론'에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밝힌 저자 중 한 사람인 경제학자 옌스 루드윅(Jens Ludwig)이 최근 도시와 범죄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 책, 'Unforgiving Places'를 내놨다.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 'unforgiving'은 '용서하지 않는, 무자비한'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험악한, 사나운, 혹독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 이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루드윅은 범죄와 장소(동네)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부정한 '깨진 유리창 이론'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깨진 유리창 이론'의 주장을 자세히 뜯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론은 장소/동네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질서와 경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해서 큰 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범죄 용의자를 사회로부터 차단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옌스 루드윅이 말하는 범죄율이 높은 지역은—외견상으로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경제학자 옌스 러드윅과 그의 저서 'Unforgiving Places'

루드윅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두 가지 사고 모드—자동적이고 처리가 빠른 '시스템 1'과 의식적이고 처리가 느린 '시스템 2'—구분 방식을 차용해, 범죄를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 최근 책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Revenge of the Tipping Point)에서 범죄율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했던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옌스 루드윅의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그 구분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그러나 안타까운 사례를 들려준다.


미국 중서부를 대표하는 도시 시카고에 가면, 그곳 주민에게서 "시카고 남부(South Side of Chicago)는 가지 말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시카고의 범죄율을 높이는 지역은 미시건호를 접한 중심부가 아니라, 시카고의 남부다. 그러니까 시카고 남부에 가지 말라는 얘기는 뉴욕에 가면 할렘,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오클랜드를 피하라는 충고를 듣는 것과 같다. 모두 대도시 주변의,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백인보다 비백인이 더 많다. 이 사건은 시카고 남부의 웨스트 풀먼(West Pullman)이라는 동네에서 일어났다.

그 동네에는 '맥스웰 스트리트 익스프레스(Maxwell Street Express)'라는, 햄버거, 핫도그, 소시지 등을 파는 패스트푸드점이 있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이곳 음식의 가격대는 1~10달러로, 미국에서도 가격대가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한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가게이지만, 식탁이나 의자는 없다. 허기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주문하고 받아 나간다.

2023년 6월 어느 일요일 밤, 칼리시아 후드(Carlishia Hood)라는 여성이 14살짜리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후드는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아들을 차 안에 남겨두고 음식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순서를 기다려 후드가 주문할 차례가 되었다. 이때 후드는 실수를 저지른다.

맥스웰 스트리트 익스프레스 앞에 줄을 선 사람들 Express Grill's Facebook

미국인들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메뉴판에는 없는 음식이나 음료—스페셜 오더, 특별 주문—를 주문하는 일이 흔하다. 캘리포니아의 '인앤아웃버거'(In-N-Out Burger) 같은 곳에서 스페셜 오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유명하지만, 미국인들은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도 주문을 하면서도 원하는 걸 추가하고, 원하지 않는 걸 빼달라고 요구한다. 단순히 취향 때문이 아니라, 알레르기 등 건강상의 이유로도 스페셜 오더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의 모든 식당이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기 차례가 된 후드는 메뉴판을 보며 스페셜 오더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맥스웰 스트리트 익스프레스는 배고픈 사람들이 빨리 음식을 사 먹는 곳이었고, 따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스페셜 오더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불문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후드가 몰랐다는 데 있다. 게다가 하필 후드 뒤에 서있던 사람이 그 동네에서 걸핏하면 주먹을 휘둘러서 "Knock-Out King"(굳이 번역하자면 '원펀맨' 정도가 적절하겠다)이라는 별명이 붙은 제레미 브라운(Jeremy Brown)이었다. 브라운은 후드가 스페셜 오더를 시작하자 불만을 터뜨렸다.

후드는 브라운의 불만을 무시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말싸움이 일어났다. 위협을 느낀 후드는 차에서 기다리고 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냈고, 아들이 달려왔다. 이때부터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후드는 브라운 뒤에 서 있던 아들에게 "차로 돌아가"라고 말했는데, 브라운은 그게 자기에게 한 말로 착각하고 "누구보고 차로 돌아가라는 거냐"며 화를 냈고, 그걸 들은 후드가 뭐라고 말하자 브라운은 "어이, 음식 나왔으니까 가서 받아. 한마디만 더 하면 내 주먹맛을 보게 될 거야!"라고 소리치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후드는 브라운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뭐라고 대꾸했다. 화가 난 브라운은 "내가 경고했지?" 하면서 자기 체중을 실어 주먹으로 후드의 머리를 가격했다. 이 모든 게 후드의 14살짜리 아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브라운은 한 대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후드를 연거푸 주먹으로 내리쳤고, 어머니가 맞는 걸 본 후드의 아들은 권총을 꺼내 브라운의 등을 쐈고, 총상을 입은 브라운은 피를 흘리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후드는 아들에게 브라운을 쫓아가라고 했고, 아들은 어머니의 말대로 총을 쏘며 그를 추격했다.

브라운은 나중에 등에 두 발의 총을 맞고 숨진 채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보안 카메라와 다른 손님의 폰으로 촬영되었다.

옌스 러드윅은 후드의 아들이 브라운을 죽인 것과 같은 사건을 '시스템 1' 사고에 의한 범죄로 분류한다. 후드와 아들이 그 식당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살인을 저지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단 몇 분 만에 감정이 격화되었고, 살인은 분노의 결과로 충동적으로 일어났다. 감정을 표출하는 폭력이기 때문에 루드윅은 이를 '감정표출형 폭력'(expressive violence)이라고 부른다.

'시스템 2' 사고에 의한 범죄는 다르다. 이 경우 범인은 처음부터 사람을 해칠 의도를 갖고 있다. 밤길에 피해자를 미행해서 해치거나 죽인 후에 물건을 빼앗는 계획적인 범죄이고, 이 경우 폭력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루드윅은 이를 '도구로서의 폭력'(instrumental violence)으로 분류한다. 옌스 루드윅이 하는 주장의 핵심은 미국의 형법이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범죄가 도구로서의 폭력인 것처럼 취급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도시에서 범죄율이 올라가면 강력한 처벌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겠다고 하고, 그 결과 미국의 형량은 계속 늘어났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에 가고, 머무는 시간도 길어지니 미국은 재소자 숫자에서 세계 1위이고, 국민 1인당 재소자 비율은 엘살바도르와 르완다에 이은 3위다. (트럼프가 미국에서 추방한 사람들을 수용할 곳으로 엘살바도르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국가별 총 재소자 수(파란색)와 인구 10만명 당 재소자 수(빨간색) 

루드윅은 이렇게 묻는다. 브라운이 후드를 주먹으로 때렸을 때, 후드의 아들이 그런 브라운을 총으로 쐈을 때, 두 사람은 자기 행동의 결과로 받게 될 형량을 계산했을까? 후드의 아들은 학교에서 우등학생(honor student)였다. 그런 그 아이가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것을 보면서 살인죄를 저지르면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아니다.

물론 형량을 늘려서 막을 수 있는 범죄도 있다. 경제사범이나 사기꾼, 연쇄살인범처럼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는 형량이 심리적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미 연방수사국(FBI)이 지난 20년 동안 수집한 살인사건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그런 범죄('도구로서의 폭력')는 전체의 23%에 불과하고, 살인 사건의 77%는 후드의 아들이 저지른 것과 같은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살인, 즉 '감정표출형 폭력'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이런 감정표출형 살인이 많은 경우 '조직 폭력'(gang violence)으로 분류된다. 왜 그럴까? 도시에서 그렇게 단순한 감정싸움의 결과로 일어난 살인이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폭력조직에 속해있었다면 경찰은 이를 폭력 조직들 사이의 범죄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루드윅은 이런 분류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를 설명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직장인인 경우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가령 층간 소음으로 불거진 싸움으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두고 "A 증권의 애널리스트가 B 항공사 정비사를 살해했다"고 보도하는 게 맞을까? 두 사람의 싸움이 그들이 일하던 직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살인 사건의 보도나 분류에 그들이 소속된 조직을 언급하는 것은 오해를 부를 뿐이다. 마찬가지로, 감정표출형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단지 폭력 조직에 속했다고 해서 이를 조직 폭력으로 분류한다면, 폭력의 원인 분석과 해결책 마련은 완전히 빗나가게 된다. 조직 폭력은 '시스템 2' 사고에 의한 계획된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정표출형 폭력을 막을 방법은 뭘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후드와 브라운이 애초에 왜 싸우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마지막 편, '험악한 동네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