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mp, Part II
• 댓글 1개 보기트럼프가 돌아왔다. 전체 득표수(popular votes)에서는 뒤지고 선거인단 수에서 앞섰던 2016년과 달리, 이번에는 전체 득표수로도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를 눌렀다. 그가 승리한 이유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분석이 나오겠지만, 당장 궁금한 것은 트럼프 2기에 미국과 세계가 바뀌게 될 모습이다. 트럼프는 지난 4년 내내 많은 주장과 청사진을 얘기했다. 아니, 2015년 이후로 많은 계획을 이야기했다. 따라서 가장 단순한 방법은 트럼프가 자신이 한 약속을 이행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를 지지하거나 그에 호의적인 사람들 중에는 그가 실행하겠다는 과격한 정책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해진 후에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트에 달린 댓글이 그렇다. 나는 이 포스트에서 "트럼프가 이번에 당선되면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한 분이 댓글에 이렇게 적었다. "교육부를 없애다는 게 아니고 현재 편향적인 교육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확실히 알고 이야기 하세요. 바보도 아니고 교육부를 왜 없애겠어요."
트럼프가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한 건 어제오늘의 주장이 아니다. 미국에서 그 주장을 빈말이라고 생각하는 분석은 본 기억이 없다. 가령 아래 CNN의 기사는 "트럼프는 교육부 폐지를 원한다"라는 제목으로, 트럼프가 교육부를 폐지하기로 할 경우 벌어질 일들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미국의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가 지금처럼 내각 수준의 부서가 된 건 1980년,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이던 시절이고, 트럼프가 34세 때다. 미국에 교육부가 없던 시절에 정규 교육을 받은 트럼프가 교육부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공화당에서 트럼프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부 폐지는 교육부가 만들어진 직후부터 나온 주장이다.) 흥미로운 건 댓글의 작성자는 트럼프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부를 없애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단순히 편향된 교육을 지적하기 위해 과장된 표현을 사용했으니, 그걸 문자 그대로 이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작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교육부 폐지에 찬성하는 지지자들이 많은데, 한국에서는 미국의 교육이 "편향되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는 동의하면서도 트럼프가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교육부를 폐지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말로 교육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교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댓글에서 눈여겨 봐야 할 건, 트럼프가 하겠다고 말했다고 해서 정말로 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꽤 흔하게 듣는 말이고,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트럼프가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거나,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흐지부지 된 정책은 많다. (어제 글에서 이야기한 의료보험 정책이 전자, 멕시코 국경 장벽이 후자의 대표적인 예다.) 당장 위에서 언급한 CNN의 기사 말미에도 "연방 기관을 폐지하려면 의회가 움직여야 한다"라면서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트럼프 1기 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차지하고 있을 때도 흐지부지 되었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가드레일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이행하지도 않을 급진적인 주장을 할까?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트럼프는 할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라, 어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워싱턴에서 정책을 통과시키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하지 못한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 트럼프 뒤에 줄을 섰지만, 모두가 트럼프의 급진적이고 충동적인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때로는 공화당의 의원들의 적극적인 반대, 때로는 조용한 복지부동에 부딪혔다.
미국의 (의회를 포함한) 민주주의 제도와 그 제도를 무시하는 트럼프가 가장 요란하게 부딪힌 사례는 그가 2020년 11월 대통령 선거에 패한 후 2021년 1월 6일, 연방 의회에서 선거 결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한 절차의 진행을 무력으로 저지하려는 시도였다. '1월 6일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친트럼프 시위대는 부통령이자 상원의장인 마이크 펜스의 목을 매달자는 구호를 외치며 의사당으로 난입했고, 그 결과 트럼프는 물러나기 직전에 두 번째로 탄핵된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를 인정한 펜스와 두 번째 탄핵에 동의한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을 배신자로 지목했다.
미치 매코널은 2016년에는 트럼프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지만, 그의 첫 임기 동안 자기가 가졌던 보수 어젠다(예를 들어 보수 대법관 임명)를 트럼프가 이행해주었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에 협조했다. 따라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눈에는 트럼프에 협조하는 '부역자' 같은 이미지로 보이지만, 한 편으로는 트럼프가 (그의 기준에) 도를 넘는다고 생각할 경우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
트럼프가 충동적으로 하려던 많은 일들이 그렇게 민주주의 제도가 보장하는 제약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물론 그런 제약은 트럼프만 겪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임에도 장군들의 반대에 부딪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일도 있다. 트럼프가 무능력했다고 하는 이유는 그런 제도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지식과 기술, 그리로 목표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트럼프의 충동을 억누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장관과 보좌관들이다. 이들 중에는 트럼프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부름에 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간 사람이 제법 있었고, 그 사람들이 백악관이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가드레일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훗날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부적격자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대통령의 행동을 견제하는 대표적인 가드레일은 '견제와 균형,' 삼권분립의 원칙 아래 존재하는 의회와 법원이지만, 그가 임명한 보좌관, 장관, 그리고 정부 각 부처의 공무원들도 필요할 경우 가드레일의 역할을 수행한다. 대통령은 혼자의 힘으로 당선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백악관에 들어갈 때까지 도움을 준 사람, 조직들의 요구를 수용해서 자리를 배정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100% 자기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권에 참여하게 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인적, 제도적 가드레일 때문이다.
두 번째 임기
서두에 꺼낸 교육부 폐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설마 트럼프가 교육부를 폐지하겠느냐고 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은 이유가 트럼프가 스스로 자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트럼프의 행동에 끊임없이 브레이크를 걸었던 인적, 제도적 가드레일의 존재를 모르거나 그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가 두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제 그 가드레일이 모두 사라졌거나, 사라질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에서 백악관과 함께 상하원을 모두 가져갈 것이 확실해 보이는 올해 선거처럼 2016년에도 공화당의 "싹쓸이 선거"였지만, 당시만 해도 공화당에는 트럼프에 동조하지 않는, 즉 가드레일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의원들이 남아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공화당 주류(mainstream Republicans)"라고 불렸다.
8년이 지난 지금의 공화당은 다르다. 과거 레이건-부시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공화당 의원들은 소수로 전락했고,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제 공화당의 주류는 트럼프 개인을 지지하는 의원들이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두 번째 탄핵에 동의했던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은 상원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이미 밝힌 상황이고, 그의 빈 자리는 친트럼프 상원의원이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하원의장직은 철저한 트럼프 추종자인 마이크 존슨이 계속해서 맡게 된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트럼프의 가드레일이 되지 못한다.
법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변칙적으로 밀어넣은 보수 대법관들이 장악한 연방 대법원은 이미 1월 6일 의회 침입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 면책 사안이라는 판결을 내놓았을 만큼 트럼프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각 인선은 어떨까? 트럼프는 1기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자기에게 충성하고, 트럼프가 (법적 책임 등의 이유로) 직접 명령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서 정치적 보복 등의 더러운 일을 해줄 사람을 골라 넣을 것으로 전망한다. 능력보다 충성도를 중시하는 이런 인사는 1기 때도 백악관 대변인 같은 직책에서 볼 수 있었지만, 2기에는 훨씬 더 뚜렷해 질 것으로 보인다.
가드레일의 마지막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 조직도 트럼프의 충성도 테스트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측근들과 헤리티지 재단에서 만든 프로젝트 2025에 따르면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가면 연방정부를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법을 개정해 수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하기 쉽게 만든 후 트럼프 정권에 충성하는 인물들로만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고귀한 이념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법과 제도, 그리고 그걸 잘 아는 구성원들이 자기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유지된다. 미국인들이 트럼프 2기를 염려하는 이유는 1기 때와 달리 무슨 짓을 해도 처벌은 커녕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트럼프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