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든은 트럼프와 스캐든이 동의하는 이슈에 1억 달러에 해당하는 법률 서비스를 프로 보노로 제공하고, 앞으로는 변호사를 채용하거나 승진시킬 때 "능력주의"를 원칙으로 해서 DEI 정책을 적용하지 않고, 법대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펠로우십을 줄 때는 "보수주의 이상"을 포함하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반영한다는 등의 조건에 양측이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로펌의 경영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뉴욕타임즈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폴 와이스 같은 로펌에서는 경영진의 대다수가 트럼프와 타협을 통해 존망의 위기를 벗어나자는 의견이었다. 트럼프와의 타협이 좋아서가 아니라,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의 입장에서는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생계를 지켜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펌의 경영진 입장에서는 회사를 살리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느꼈을 거다.

무엇보다 회사의 생존에 비해 그들이 포기하는 것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트럼프와 타협을 한 로펌들에서는 경영진이 하나같이 변호사와 직원들에게 "트럼프 행정부와 타협했다고 해서 우리 회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시프가 다니던 스캐든에서도 전체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 합의는 우리를 바꾸지 않는다"라고 했다.

하지만 시프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로펌들은 행정 명령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래에 동의한 것입니다. 로펌들이 생존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굴복한 것이라면, 그렇게 굴복함으로써 변호사라는 직업, 사법부의 독립성, 미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거기에 의존하는 모든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프는 트럼프와의 타협을 로펌들은 이전과는 다른 회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기처럼 회사를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동료 변호사와 직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미지 출처: Politico

시프는 자기처럼 바로 직장을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부양하는 가족이 있는 경우도 많고, 나온다고 해서 다음 일자리를 바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시민이 아니고 취업 비자로 미국에서 일하는 경우 직장을 그만두기는 힘들다. 그는 그런 동료들에게 자기의 사직서를 읽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의 사직서는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을까?

사실 시프는 사직서를 쓰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는 회사가 트럼프와 타협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주말 밤에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회사에 묻고 싶은 내용을 적어 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합의된 내용은 정확하게 어떤 것이고, 그걸 어떻게 이행하겠다는 것인지와 같은 실질적인 질문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쓰면서 답을 찾게 되고, 그의 질문은 선언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로펌 내 선배 변호사들에게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사직서의 초안을 쓰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바바로 기자는 시프에게 그 글의 일부를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친애하는 동료와 친구 여러분께. 저는 회사를 떠나기로 했음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이 회사에 취직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을 때를 기억합니다. 저는 자라면서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고, 공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시절에도 제가 좋아하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역사 과목이었죠.

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인류의 승리와 비극, 용기 있는 사람들, 집단적 안일함에 빠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그런 걸 읽으면서 저는 저 자신이 그들과 같은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을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정의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 저는 답을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이 동의하시겠지만, 저는 현 정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힘 있는 사람들이 법 위에 존재하는 독재국가로 빠져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캐든은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함으로써 미국을 독재국가로 더 가까이 밀어 넣었습니다.

스캐든은 역사에서 옳지 않은 쪽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제가 왜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는지 해명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스캐든에 남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주 뉴욕시에서 일어난 반트럼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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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로 기자는 글을 읽는 시프의 목소리는 떨리는 것을 눈치채고, "이 글을 쓸 때의 감정이 되살아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시프는 "글을 쓸 때의 내 감정은 지금의 100배였다"고 했다. 지금 그의 인생은 중요한 전환기를 맞았다. 그가 지금 같은 시기에 트럼프에 저항하는 변호사로 알려지면 앞으로 어떤 로펌이 그를 원할지 알 수 없다. 그는 자기 가족이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올 때도 지금처럼 두렵고 떨렸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미국으로 가는 것과 일본에 남는 것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을 때 가야한다고 주장한 것도 시프였다.

"지금의 저처럼 열 살 때의 저도 앞으로 어디에서 뭘 하며 살게 될지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미국에 와서 얻은 경험에 감사합니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미국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요."

시프는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가서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기가 스캐든에서 퇴사했다고 얘기했다. 그를 걱정한 어머니는 울면서 미국에 있지 말고 일본으로 오라고 했단다. 시프는 어머니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아뇨, 어머니. 돌아갈 수 없어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아직 미국에 희망이 있다고 믿어요. 저는 남아서 목소리를 높일 겁니다. 제가 미국에 진 빚을 갚을 겁니다."

인터뷰 전체에 걸쳐 시프가 미국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기자는 "그건 미국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버전일 뿐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 모두가 목격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도 그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신 있다면 그 근거는?

"제가 자신하는 이유는 (제 얘기가 알려진 후) 정말로 많은 사람들,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제게 연락해서 '나도 두렵다'고 얘기해줬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지만, 모두가 함께 일어서서 저항하면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퍼킨스 쿠이가 트럼프의 제재를 받은 후 수백 개의 로펌들이 힘을 합쳐 트럼프의 행정 명령을 막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스캐든을 비롯한 가장 큰 로펌들은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