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과학적 논의와 정치적 논쟁을 구분하기 힘들다. 중국 우한에서 야생동물의 고기가 팔리는 시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지만, 바이러스가 발생한 중국 우한에 중국의 바이러스 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는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유출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바이러스 연구소 기원설'에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그 연구소가 만들어 퍼뜨렸다는 "인조 바이러스" 주장, 자연적으로 발생했지만 연구소의 실수로 유출되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때가 미국에서는 중국에 대해 인종주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이라는 게 원인을 밝히는 것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그 연구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트럼프가 그 문제를 미국의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함부로 말하는 바람에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기원설'을 당시에 흔하던 근거 없는 음모론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 연구소를 미국의 연방정부가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말을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토끼굴을 제공했다.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이미지 출처: Reuters)

나도 '바이러스 연구소 기원설'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이게 음모론을 좋아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지한 과학자들이 신뢰할 만한 매체를 통해 조심스럽게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이게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가설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의 연구소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엊그제 뉴욕타임즈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알리나 챈(Alina Chan) 박사가 기고한 글을 발행했다. "팬데믹이 실험실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5개의 주요 포인트"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이를 요약해서 소개한다.


전 세계적으로 최소 2,500만 명을 죽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처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보의 자유법(FOIA)을 통해 입수한 기록,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바이러스를 분석한 과학 논문 등을 살펴보면 이 바이러스가 우한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유출되었다는 증거가 점점 더 많아진다. 그게 사실이라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과학의 역사에서 일어난 최악의—가장 큰 비용을 치른—사고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스(SARS)와 유사한 이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등장했다. 이 도시에는 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연구소가 있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시젱리(Shi Zhengli) 박사가 이끄는 과학자들이 10년 넘게 사스와 유사한(SARS-like) 바이러스를 추적해 왔다.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팬데믹을 일으킨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와 가장 비슷한 바이러스들이 우한에서 약 1,600km 떨어진 윈난성(云南省)에 사는 박쥐들에게서 발견된다. 시젱리 박사팀은 이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를 채집하기 위해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연구 지역을 동남아로 확대하고 있었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 사는 박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 않다.

중국의 남서부와 동남아시아의 동굴에 사는 박쥐들은 이런 바이러스들을 많이 갖고 있지만,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2019년에도 나왔다.

문제의 바이러스를 가진 박쥐들이 사는 지역과 우한 사이의 거리. 지도에 흩어져 있는 작은 점들이 중국의 대도시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그뿐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등장했을 때 시 박사는 이 바이러스가 자기가 운영하는 실험실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했다. 시 박사에 따르면 그런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나올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링크)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유독 전염성이 강하고, 산불처럼 다른 종(種)으로 확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의 출발점(박쥐 동굴이 있는 중국 동남부)은 물론이고, 그곳과 우한 사이의 1,600km에 위치한 어느 지역에서도 감염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2.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1년 전, 우한 연구소는 미국과 협력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특징을 갖는 바이러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시젱리 박사팀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서로 다른 종 사이를 옮겨 다니는 방식에 놀랐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박쥐를 비롯한 다른 동물에게서 시료(샘플)를 채취했다. 여기에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동물 근처에 살거나, 야생동물을 거래하는 일을 하면서 감염된 인간 환자들도 포함된다.

그런데 시 박사팀은 이 작업을 미국의 에코헬스얼라이언스(EcoHealth Alliance)라는 미국의 과학 단체와 2002년부터 파트너십을 맺어 수행했다. 에코헬스얼라이언스는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하는 위협에 대비하려는 노력의 일부로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 8,000만 달러(한국 돈으로 약 1,000억 원)가 넘는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우한 연구소는 바이러스의 감염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한 연구를 했다. 감염된 동물에게서 얻어 낸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재조작, 재구성해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바이러스를 박쥐와 돼지, 유인원, 그리고 인간의 세포에서 배양해서 사향고양이(civet)와 인간화된 쥐(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실험용 쥐)에 감염시켰다. 즉, 바이러스가 숙주가 되는 새로운 종에 적응하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진행했고, 그 결과로 변형된 바이러스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게 된 것이다.

2019년, 시젱리 박사팀은 야생동물 시료 2만 2,000개 이상을 포함한 데이터베이스를 발표했지만, 데이터베이스 접근은 2019년 가을에 막아버렸다. 그렇게 풍부한 데이터베이스는 코로나19의 기원을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들은 팬데믹이 시작된 후에도 이 자료를 미국의 연구자들과 공유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한 연구소가 팬데믹을 유발한 바이러스의 기원이 되는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다.

2021년, 인터셉트(The Intercept)는 디퓨즈(Defuse)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계획서(grant proposal, 연구비 신청서)를 입수, 공개했다. 2018년에 작성된 이 문서에 따르면 미국의 에코헬스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랄프 배릭(Ralph Baric)이 함께 연구할 계획이었다. 배릭은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로, 이 계획서는 코로나19(SARS-CoV-2)와 깜짝 놀랄 만큼 흡사한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연구계획서를 폭로한 인터셉트의 기사

코로나바이러스에 '코로나(corona, 왕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표면에 단백질이 마치 왕관 모양으로 삐죽삐죽 솟아있기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는 이 가시들을 사용해 동물의 세포에 침투한다. 디퓨즈 프로젝트는 사스(SARS)와 같은 바이러스에 독특한 형질—퓨린 클리비지 사이트furin cleavage site—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그 특성은 나중에 등장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되어 팬데믹으로 발전하게 만든 바로 그 특성이다. 디퓨즈 프로젝트는 미국의 연구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월요일에 열린 청문회에서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는 그 연구를 미국의 지원 없이도 독립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퓨린 클리비지 사이트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와 먼 친척에 해당하는 바이러스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수백 종의 사스 바이러스 중에서 코로나19만이 유일하게 가시 부분에 퓨린 클리비지 사이트를 갖고 있다. 유전자 데이터를 확인해 본 결과, 이 바이러스는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에야 비로소 퓨린 클리비지 사이트를 획득했다.

디퓨즈 프로젝트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진 '가시' 부분에 '퓨린 클리비지 사이트'라는 형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요약하면 이렇다. 새롭게 퓨린 클리비지 사이트를 갖게 된, 전에 본 적이 없는 사스 바이러스(SARS-like virus)가 팬데믹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바이러스는 우한 연구소에서 만든 연구계획서의 내용과 일치하고, 그 계획서가 작성된 지 2년 후에 발생한 일이다.

2020년, 세계가 팬데믹으로 향해 가는 시점에 우한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코로나19에 관한 중요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폐렴 유행은 박쥐에 기원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다"는 제목의 논문이다—옮긴이) 그런데 이들은 이 논문에서 퓨린 클리비지 사이트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의 연구신청서에 따르면 신형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 제일 먼저 살폈어야 하는 특징이었지만 그들은 논문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재빨리 이를 발견했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 것은 팬데믹이 세계를 휩쓰는 동안 우한 연구소와 함께 일했던 미국의 연구자들이 디퓨즈 프로젝트 연구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중에 알리지 않은 것이다. 에코헬스얼라이언스의 회장인 피터 다스잭(Peter Daszak)은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2015년 이후에 우한 연구소가 수집한 바이러스 시료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고, 그 연구소 과학자들이 디퓨즈 계획서에 제안했던 연구를 진행했는지 묻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지난달(5월) 바이든 행정부는 에코헬스가 우한 연구소가 진행하는 위험한 실험을 감독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에코헬스와 다스잭의 연구에 지원을 중단하고, 향후 어떤 지원금도 받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월요일 증언에서 파우치 박사는 이 결정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와 별개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배릭 박사는 의회 청문회 증언에서 우한 연구소가 자신의 연구팀과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최신 발견에 관해서는 자기에게 공유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한 연구소와 배릭 박사 사이에 주고받은 자료와 이메일은 아직 대중에 공개되지 않고 있고, 현재 이를 공개하라는 강한 요구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6월 3일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파우치 박사 (이미지 출처: KFSM)

결국 미국의 연구자들은 우한에서 진행된 연구에 대해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정보 당국에 따르면 우한 연구소의 바이러스 연구들 중에는 극비 사항도 존재하고, 중국군과 함께, 혹은 군 당국의 의뢰를 받아 진행되는 것도 있다.

지난 월요일 청문회에서 파우치 박사는 우한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연구 중에 모르는 내용이 많음을 거듭 인정했다. "우한을 비롯한 중국 곳곳에서 진행되는 것을 모두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회 위원회에 서면으로 제출한 증언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저는 (코로나19의) 기원에 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실험실을 나온 바이러스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