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적국이었다. 무려 16만 명의 미군이 일본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고, 인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쟁에서 사용한 핵폭탄은 미국이 일본에 떨어뜨린 것이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질서(liberal internationalism)를 이끌기로 하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이제 일본은 미국의 최대 협력자이자, 미국이 힘을 다해 키워줘야 하는 금쪽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도 잘 아는 것처럼, 전후 일본이 부흥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다. 미국으로서는 전쟁 물자를 태평양을 건너 본국에서 조달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생산해 가져오는 게 훨씬 유리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본의 경제를 되살릴 수 있었다. 일본은 미 국방부로부터 수억 달러의 주문을 받았고, 제품을 생산해도 수요를 찾기 힘든 패전국에서 토요타와 같은 기업들에게 미국이 쏟아부은 전쟁 비용은 구원의 손길이었다.

일본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미군 병사. 일본은 1945년 항복 직후부터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될 때까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강화조약 후 일본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만들어졌다.

일본의 공업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경계하지 않았을까? 당시 미국의 국무부 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는 "일본은 미국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 기업들이 비로소 미국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진출했을 때는 형편없는 품질로 조롱감이 되었다. 같은 일은 한국과 중국의 제품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반복되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대통령들은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 윈윈(win-win)이라고 믿었고,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미국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처하면서 여러 국제 분쟁, 전쟁에 개입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중에는 미국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처음 맡게 된 역할을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불필요한 전쟁만이 아니었다.

전쟁과 경제 원조, 그리고 무역을 통한 세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은 궁극적으로 미국인이 내는 비용으로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통해서 미국이 얻는 이익이 컸지만, 모든 미국인이 동등하게 그 이익을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훗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에너지—누적된 블루칼라의 불만—가 여기에 있었다.

이 불만이 처음 가시화된 것은 1980년대, 일본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휩쓸었을 때였고, 당시 그 불만을 가장 큰 목소리로 제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였다.

베트남 전쟁에 투입된 미군 헬리콥터들. 사진 속 기종(UH-1)만 7,000대 넘게 사용되었다.

일본 자동차가 미국에 처음 진출한 건 1958년이었다. 토요타가 '토요펫 크라운' 모델을 287대 팔고, 닛산이 LA 모터쇼에 자사의 제품을 전시하면서 미국인들은 일본 자동차의 존재를 알게 된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에 비해 성능이 형편없었고, 1960년 토요타는 미국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토요타가 다시 미국에 돌아온 것은 1965년이지만, 미국인들이 일본차를 본격적으로 구매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동전쟁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두 차례의 석유파동(오일쇼크)을 겪으면서다. 전 세계 원유 값이 폭등하면서 휘발유를 물처럼 쓰던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기름을 적게 먹는 작고 가벼운 차를 찾다가 일본 차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 차의 인기는 1980년대 '일본 제품의 미국 습격'을 상징했다. 일본이 수출하는 자동차와 전자 제품은 처음에는 그저 값싼 물건으로 통했지만, 오래지 않아 일본 제품은 품질로 승부하게 되었다. 일본산 제품을 좋아하게 된 건 미국만이 아니었고, (지금의 중국처럼) 일본은 전 세계에 물건을 수출하면서 미국에 이은 세계 두 번째 규모의 경제로 성장했다. 그래도 일본 경제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작동한다는 뜻이었고, 미국 정부로서는—적어도 백악관에서 보기에는—기뻐해야 할 일이었지,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1990년에 나온 영화 '백 투 더 퓨처 3'에서 과거의 일본밖에 모르는 박사가 "일본 제품이니 고장 나는 게 당연하지"라고 말하자, 주인공 마티가 "무슨 소리예요? 제일 좋은 제품들은 전부 일제예요"라고 알려준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인들의 시각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일본이 엄청난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세계 시장을 장악하자 1985년 미국은 프랑스, 독일(서독), 영국과 함께 달러-엔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플라자 합의를 끌어낸다.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서명했다고 해서 '플라자 합의'라 부른다.) 엔화의 가치를 높여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는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펴서 시중에 돈을 풀게 되는데, 이때 늘어난 통화가 투기 자본이 되어 부동산과 주식 가격을 끌어올리며 악명 높은 '거품 경제'가 탄생하게 된다. 당시 "도쿄를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고, 일본 기업들은 남아도는 돈으로 미국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미쓰비시는 로커펠러(록펠러) 센터를 사들였고, 당시 웨스틴 호텔 체인이 소유하고 있던 플라자 호텔도 일본 기업에 팔렸을 뿐 아니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일본 사업가가 인수하는 등, 뉴욕의 상징적인 건물들이 줄줄이 일본 자본에 넘어가면서 "미국의 자존심이 일본에 팔리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 유독 강한 불만을 표출한 사람은 당시 뉴욕 부동산업계의 대명사와 같았던 도널드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미국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플라자 호텔을 되사며, 일본이 "미국에 자동차와 VCR를 팔면서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믿지 않는 트럼프의 눈에는 미국이 일본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보고 있었고, 일본은 미국에서 돈을 뜯어내는 나라였다.

센트럴파크 남쪽에 있는 플라자 호텔은 비틀즈를 비롯한 많은 유명인이 묵었던, 뉴욕의 상징 같은 호텔이다. 트럼프는 '나 홀로 집에 2'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것으로 유명한데, 당시 이 호텔은 트럼프가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트럼프를 인터뷰한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1950년대 미국—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후 거칠 게 없었고, 무엇보다 아직 베트남 전쟁의 실패를 겪지 않았던 시절의 미국—에 대한 강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946년에 태어난 트럼프가 성인이 된 1960년대의 미국은 흑인들의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 그리고 닉스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등 많은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빌려 온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을 1980년 선거운동 때 처음 사용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1960년대 이전의 미국을 '위대했던 미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2015년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일본은 미국에 수백만 대의 자동차를 팔고 있는데, 도쿄에서 미국 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냐?"며 1980년대의 정서를 다시 가져왔다. 하지만—트럼프의 생각에—미국의 판단 오류는 1990년대에도 이어졌다. 빌 클린턴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적극 지지하면서 중국 경제의 부흥을 끌어냈고, 그 결과—일본과 한국에 이어—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에 밀려드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 혹은 세계화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민주화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늘어나면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하게 되고, 중국인들은 정부에 민주화, 즉 "미국적 가치"를 요구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2010년대 초, 즉 시진핑 취임 초기만 해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시진핑 정부는 민주화 없는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경제적인 양보(?)를 해가며 중국의 제조업에 넘겨주느냐는 불만이 나오게 된다.

시진핑이 취임 직후인 2013년 오바마와 했던 정상회담 때의 사진에 '곰돌이 푸와 티거'라는 별명이 붙고, 중국 인터넷에서 검색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중국의 민주화가 미국의 기대처럼 진행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미국이 제조업을 일본과 한국, 중국에 넘겨준 것이 정말로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양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 1990년대 미국은 임금이 상승하고 있었고,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은 지식 산업 중심의 경제로 옮겨가고, 제조업은 개발도상국으로 넘겨주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외국의 제품을 저렴하게 사 오는 것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것은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과 그 나라들에 공장을 옮긴 다국적 기업가들, 그리고 그런 기업에 투자한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었다. 그들은 승자였고,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패자였다.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 낸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미국이 나서서 무너뜨리고 있는 이상한 모습은 이런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1980년대부터 줄곧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부정해 온 트럼프를 백악관에 보낸 결과다. 우리는 중국은 자유무역을 외치고, 미국은 관세 장벽을 높게 쌓고 있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트럼프가 세계 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미국이 진정한 고립주의로 회귀한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한 것도 그렇지만, 그가 높은 관세를 사용하는 방식을 봐도 그렇다. 미국 정부는 최근 브라질산 수입품에 50%의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에 대한 '마녀사냥식 재판'이 관세 인상의 이유라고 밝혔다.

보우소나루는 2022년 선거에서 룰라에 패했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트럼프 지지자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대통령궁과 의회 건물에 난입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보우소나루는 현재 쿠데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트럼프는 그가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룰라 대통령과 현 브라질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관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그가 반대한 것은 '자유주의'와 '질서'였을 뿐이다. 세계는 미국의 힘을 개인의 권력처럼 사용하는 트럼프의 무질서와 변덕에 휘둘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