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전쟁이 돌아왔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인 올해 초, 사상 최대의 관세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놀란 월스트리트에서 주가가 폭락하고,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자 트럼프는 관세 부과를 유예하면서 이 문제를 미뤄두고 있었다. 한동안 언론(과 트럼프)의 관심이 이스라엘과 이란, 우크라이나 등의 문제로 쏠려있다가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에 25%의 관세 부과하는 것을 포함한 일련의 관세 발표를 하는 것을 보면서 관세 전쟁의 두 번째 막이 올랐음을 알게 되었다.

그사이 트럼프는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즉 '트럼프는 언제나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별명을 얻었고, 그의 관세 부과는 협상을 위한 패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트럼프로서는 기분 나쁠 거다. 지난달 미국이 이란을 불시에 폭격한 것을 봐도 알겠지만, 트럼프는 상대방이 자기가 어떻게 행동할지 짐작하지 못하게 하는 데 큰 가치를 둔다. 그래야 협상력이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트럼프는 뭔가를 보여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대미 수출이 경제에 중요한 교역국들로서는 트럼프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외국의 무역 장벽'(Foreign Trade Barriers)이라고 적힌 문서를 들고 있는 트럼프. 하지만 트럼프는 한국처럼 미국과의 무역에 장벽이 사라진 나라에도 높은 관세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관세 전쟁의 위협이 아무리 현실이라고 해도,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사용하는 방법은 황당한 게 사실이다. 미국 내에서 나오는 비판처럼,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어서 많은 제품이 무역장벽 없이 오가고 있기 때문에 관세 전쟁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트럼프의 주장처럼 심각한 무역 불균형이 있다고 해도 관세를 통해 해결할 때는 품목별로 관세를 부과하는 게 상식인데, 트럼프는 국가를 기준으로 일괄적인 관세율을 정한다. 왜일까? 그가 얻으려는 게 뭘까?

그가 지지자들에게 주장한 것에 따르면, (민주당 대통령과 공화당 대통령을 포함한) 전임 대통령들은 일자리를 해외로 넘겼고, 그 바람에 미국에서 제조업이 쇠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세를 통해 수입된 제품의 가격을 올리면 미국 내에서 제조된 제품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고용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많이 지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상식적인 선택일 수 있다.

상식적이지 않은 건, 미국의 산업이 관세로 가격이 올라간 수입품을 대체할 수 없는 부문까지 일률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품목이 아닌 국가별로 관세율을 정하는 게 어처구니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가 관세와 관련해 계속 말을 바꾸는 바람에 미국으로 공장을 다시 옮기고 싶은 기업들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렇게 전략적이지 않은 관세율 적용은 그가 미국의 제조업을 부활하는 데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트럼프는 왜 이토록 관세에 집착하는 걸까? 오터레터에서 '제국을 숨기는 방법'이라는 글과 '제국의 연대기'라는 책을 통해 소개한 적 있는 역사학자 대니얼 임머바르(Daniel Immerwahr)는 최근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가 흔히 '도금시대'(Gilded Age)라 불리는 남북 전쟁 후의 호황기에 관세를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치료제로 생각했던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래는 임머바르의 글에 해설을 붙여 요약한 것이다.

트럼프가 2기 취임식 직후에 내린 행정명령 중에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을 미국만(Gulf of America)로 바꾸는 게 있었다. 하지만 그 행정명령을 통해 이름이 바뀐 건 멕시코만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알래스카주 디날리(Denali) 국립공원에 있는 디날리산(Mt. Denali,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의 이름이 매킨리산(Mt. McKinley)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 이 산은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높은 곳, 위대한 곳'이라는 의미로 '디날리'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1896년, 한 금광개발업자가 그 산에 당시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윌리엄 매킨리의 이름을 따서 '매킨리산'이라고 붙였다. 미국 정부는 1917년에 그 이름을 공식적인 지명으로 채택했다. 매킨리산이 다시 옛날 이름으로 돌아간 것은 오바마 행정부 때의 일이다. 티베트의 초모룽마가 에베레스트가 된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주민들이 역사적으로 사용해 온 이름을 무시하고 백인 남성의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오바마 행정부 때 비로소 그 민원을 들어준 것이다.

오바마의 업적을 모조리 없애고 싶어하는 트럼프로서는 충분히 생각했을 법한 일이지만, 1기 때만 해도 대통령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내각이 존재했기 때문에 불가능했을 수 있다. 하지만 2기에서 들어서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 무너뜨리기를 최대의 목표로 삼은 트럼프를 막을 참모는 없었고, 트럼프는 전 세계의 조롱을 무시하며 '미국만'과 '매킨리산'이라는 이름을 발표했다.

매킨리산으로 이름이 바뀐 디날리산

대니얼 임머바르에 따르면 트럼프는 1기 때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1897~1901년 재임)에 대한 관심을 밝힌 바 있다. 2018년에 트위터에 "나는 관세맨이다"(I am a Tariff Man)라는 트윗을 한 적이 있는데, 그의 경제 보좌관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가 트럼프의 트윗은 윌리엄 매킨리에 대한 오마주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매킨리는 관세로 미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되었고, 재임기 내내 관세를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스스로를 'Tariff Man'(관세맨)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위키피디아에서 그 표현을 검색하면 두 명의 이름이 나온다.

윌리엄 매킨리와 도널드 트럼프다.

윌리엄 매킨리의 연설 모습

트럼프는 매킨리처럼 관세를 주요 경제 정책으로 삼으려고 작정한 듯, 취임사에서 "매킨리 대통령은 관세와 재능을 통해 우리나라를 큰 부자로 만들었다"면서 "그는 타고난 사업가"라고 했다. 그 표현은 아마도 사업가 출신 트럼프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임머바르는 우선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매킨리는 변호사였다가 직업 정치인이 된 사람이지 사업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착각은 매킨리의 직업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폭스 비즈니스 채널에 나와서 "매킨리가 암살당한 건, 그가 여러 나라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 매킨리에 총을 쏜 암살범은 미시건주 출신의 아나키스트였다.

이렇듯 트럼프는 얕은 역사적 지식 때문에 엉뚱한 인물을 골랐지만, 시대는 제대로 골랐다는 게 임머바르의 평가다. 매킨리 시절의 미국, 즉 19세기 후반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과는 확연하게 달랐는데, 특히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가 그랬다. 지금의 미국—정확하게는 트럼프 집권 직전까지의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를 지향하는 나라라면, 매킨리 시절의 미국은 높은 무역 장벽과 식민지 전쟁으로 특징지어지는 나라였다.

1946년생인 트럼프는 물론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이끄는 시절에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싫어한다. 그런 그가 그 이전의 세상을 꿈꾸는 것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매킨리는 그 시절에 대통령을 지냈고, 관세를 미국 경제 정책의 도구로 삼았기 때문에 트럼프도 관세를 집어 든 것이다. 문제는 역사에 대해 무지한 트럼프가 1890년대 미국이 겪은 심각한 경제 불황의 원인 중 하나가 높은 관세를 동원한 보호주의 무역 정책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이 높은 관세 정책을 채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0세기 후반의 세계화를 2차 세계화라고 한다면, 19세기 후반의 세계는 1차 세계화를 겪고 있었다. 당시 경제의 중심은 물론 영국이었다. 미국은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대국이었지만, 세계 경제는 영국이 움직이고 있었고 (당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던 미국의 철도망 뒤에는 영국의 자본이 있었다) 전 세계의 제조업체들은 막강한 영국의 제조업과 경쟁해야 했다. 말하자면, 지금의 중국처럼 세계의 공장이었고, 자본까지 갖춘 나라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관세의 문제는 국내 정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매킨리 대통령과 공화당의 고관세 정책은 미국 북부에 몰려있는 기업들에게 유리한 정책이었다. 당시 미국은 여전히 농업 중심의 국가였고, 제조업 종사자는 인구의 20%를 넘지 못했다. 지금과 달리 미국의 대도시는 공화당을, 농촌과 남부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킨리의 높은 관세는 소수의 미국인들을 위한 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의 관세 집착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