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
• 댓글 50개 보기올해 들어 반갑고 흥미로운 뉴스가 들려왔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북극곰들이 이전보다 더 살이 찌고 건강해졌다는 조사 결과였다.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는 환경단체들이 먹이를 구하지 못해 비쩍 마른 곰의 사진을 내세우던 모습과는 정반대다. 전문가들도 기후 변화로 해빙(sea ice)이 녹아 사냥이 어려워질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이 뉴스는 큰 관심을 끌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북극곰들은 보통 해빙 위에서 물범을 사냥하지만, 얼음이 사라지자 육상 동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과거에는 잘 먹지 않던 순록을 사냥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육지로 올라와서 먹이를 뒤지는 과정에서 조류의 알이나 풀을 먹기도 한다. 게다가 해빙이 녹아 면적이 줄어들면서 역설적으로 물범들이 남은 얼음 조각 위로 몰려들어 북극곰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물범을 사냥할 수 있게 된 것도 체중 증가의 원인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 당장 북극곰의 체중이 늘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새로운 적응 과정에서 '일시적 풍요'를 누릴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뉴스는 생태계 전문가들도 자연의 생존력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예측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교훈을 남긴다.
사실 북극곰은 북극 얼음 위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약 450만 년 전 알래스카 남동부에 살던 갈색곰이 빙하기를 겪으면서 진화한 것이다. 북극곰의 선조는 잡식성이어서 열매와 풀, 곤충, 작은 포유류나 연어 같은 어류도 먹었다. 북극곰이 지금 물범이나 바다코끼리를 주로 먹는다고 해서 육지의 열매와 포유류를 먹지 못하는 게 아니다. 북극곰은 다시 옛날 먹이를 먹으며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저장'되어 있다. 환경이 달라서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북극곰의 체중 증가가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면, 나처럼 자연과학 지식이 고등학교 때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일반인들이 진화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과학적 발견이 언론을 거쳐 일반 독자에게 도달할 때쯤이면 완전히 엉뚱한 얘기로 뒤바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지금 나오는 발표들도 심각하게 잘못 전달되는데, 나온 지 160년이 넘은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1859)에 대해 일반인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 거다.
최근에 나온 책,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A Darwinian Survival Guide: Hope For The Twenty-First Century)는 살바토레 에이고스타(Salvatore J. Agosta)와 대니얼 브룩스(Daniel R. Brooks), 두 명의 진화생물학자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정말로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는지, 그리고 그가 도달한 결론이 또 한 번 위기 앞에서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다.

트럼프가 등장한 이후로 미국에서 과학이 공격받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과학은 사회와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지 못한다. 미국 내에서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는, 자신이 추진해 만들어 낸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조차 부정적인 발언을 해야 했다. 당장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백신이 그런 처지라면, 진화론이 받아 온 오해는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들은 진화론에 대한 오해의 기원을 다윈과 동시대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에서 찾는다. 우리가 흔히 다윈이 했다고 알고 있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표현은 스펜서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나서 만들어 낸 말이다. 그는 완벽한 적자(the fittest)가 되기 위한 투쟁이야말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과학자의 이론을 인문사회학자가 이렇게 다소 낭만적으로 오독해서 대중에 퍼뜨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대중의 눈길을 끄는 데 익숙하지 않은 과학자로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윈은 자신이 사용한 표현—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보다 스펜서의 표현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 나중에는 그걸 사용했다.
문제는 다윈이 생각한 '적자'와 스펜서를 통해 대중이 이해하게 된 '적자'의 개념이 다르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이해시키는 데 첫 세 챕터를 할애한다. 기본 개념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분량이 아닐까 싶겠지만, 가장 집중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책의 앞부분이다. (생물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읽는 속도만 늦추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유익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해하는, 또는 허버트 스펜서가 이해한 '적자'(適者)는 'the fittest,' 즉 '최적자'(最適者)다. 우리는 이 개념을 생각할 때 아프리카 초원에서 쫓고, 쫓기는 치타와 가젤을 떠올린다. 두 동물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들로 진화한 이유는 느린 가젤은 잡혀먹었고, 느린 치타는 굶어 죽었기 때문이라는 게 우리가 이해하는 적자생존이다.

하지만 다윈이 의미한 적자는 그저 'the fit,' 그러니까 부적합하지 않은 존재였을 뿐이다. 스펜서의 표현 때문에 자신의 이론이 오해되는 것을 알게 된 다윈은 나중에 출간한 책에서 이를 바로 잡는 내용을 넣었다. 자연선택을 통해 부적합자(the unfit)이 제거되지만, 그런 개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살아남고, 그들이 모두 '적자'라는 것이다.
자연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최고를 골라내는 게 아니라, 그저 도태되는 것만을 선택할 뿐이다. '결국 같은 말 아냐?'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의 제목을 다시 확인하시기 바란다. 이 책은 어떤 종이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가장 완벽하게 적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넘어, 특정 환경에 최적화된 종은 오히려 살아남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냉전 때 세계는 어떤 소총을 쓰느냐고 구분할 수 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는 AR-15(M16)를,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제3세계에서는 AK-47을 사용했다. 동유럽에서 소련제 AK-47을 사용한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제3세계에서는 왜 그 총을 선호했을까? 소련이 전 세계에 뿌린 탓도 있지만, 그 총은 AR-15보다 싸고, 구조가 단순하고, 내구성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AR-15는 훨씬 더 정밀하고 정확했지만, 그만한 대가가 있었다. 먼지와 모래에 약해서 작동 불량(jam)이 잦았고, 열심히 닦고 기름을 칠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반면 AK-47은 명중률도 떨어지고, 쏠 때 덜덜거리는 등의 단점이 많지만, 그런 '덜 정밀함' 때문에 흙이 좀 들어간다고 해서 멈추지 않았다. 보급 물자가 부족하고 여유가 없는 반군이라면 AK-47처럼 손이 덜 가는 소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저자 브룩스와 에이고스타는 이 책에서 자연은 "꼼꼼하게 기름칠한 기계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헐렁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기회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특정 종에는 변이를 통해 다양한 개체가 존재하게 되는데, 그 개체들이 가진 형질 중에는 서식지에 딱 맞지 않는 형질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갖고 있는 형질, 혹은 능력 중에는 (가령, 풀과 열매를 먹던 북극곰의 조상처럼) 조상이 사용했지만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도 있고, 우연한 기회에 변이를 통해 갖게 되기는 했지만 당장 서식지에서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다.
저자들이 "조금 헐렁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게 바로 그거다. 그렇게 당장 사용하지 않는 능력들이야말로 특정 종이, 혹은 생물권 전체가 파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살아남게 해주는 '진화적 잠재력'이기 때문이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론의 핵심은 그렇게 다양성을 통해 '살아남는' 것에 있지, 서식지에서 가장 뛰어난 종이 되어 다른 종—혹은 다른 인종—을 정복하는 데 있지 않다. 하지만 다윈의 이론을 멋대로 해석한 인류는 우생학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겨난 인종주의에 빠져 끔찍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에는 환경론자들의 잘못된 접근 방법을 지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비판하는 정치적인 책은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넓은 조망으로 인류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는 책에 가깝다. 진화생물학자들 눈에 보기에는 인류는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후 첫 6,000년 동안은 다윈주의의 경로를 잘 따랐지만, 지난 9,000년 동안은 다윈주의 유산에서 멀어졌다. 지구상의 많은 종들이 하는 것처럼 환경에 적응하기를 멈췄고, 그 대신 전쟁을 선택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의 중반부는 석기시대 이전부터 시작하는 인류의 역사를 진화론자의 눈으로 되짚어 본다.
다윈주의 유산에서 무려 9,000년을 떠나 있었던 우리가 다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자들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희망의 근거, 혹은 인류가 가야 할 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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