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자님의 할아버지가 몇 살에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이 질문에 잭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건 68세 때였다고 한다. 지금 잭의 아버지는 69세. 아버지가 잭에게 내기를 하자고 한 게 68세 때였다. 이게 아버지의 행동과 관련이 있을까?

찰리 새포드는 잭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의 행동이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죽을 때가 가까워져 오면 인생을 뒤돌아보며 '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하고 반추하게 된다. 잭의 아버지처럼 나이든 사람 중에는 황혼에 엄습하는 온갖 감정을 극복하는 방법(coping mechanism)으로 음모론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는 게 새포드의 의견이다.

미국에서 60대 이상 유권자의 트럼프 지지율은 꾸준히 높다.
이미지 출처: MarketWatch

잭의 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성경 공부 그룹을 만들어서 이끌고 있다. 잭은 그 모임에 참석해 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대부분은 성경에 관한 토의를 이끌고 계셨는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는 가짜뉴스가 놀랄 만큼 쉽게 돌아다녔다. 백신에 대한 허위 정보에서부터 (정부가) 날씨를 조작하는 데 사용하는 기구처럼 허황된 얘기들.

중요한 건, 집에서는 허황된 얘기를 한다고 무시당하고 배척당하는 잭의 아버지가 그 모임에서는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공부 모임은 비록 가짜뉴스를 주고 받는 장소라고 해도 그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을 이끌어 주는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가 그 모임과 가족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포기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래지 않아 나왔다.

KC 그린(Green)의 2013년 작품의 한 장면. 전체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잭은 허황된 음모론에 빠져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태도를 개 한 마리가 화재가 난 집 안에 앉아 있는 유명한 밈(meme)에 비유했다. 집이 불바다가 된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괜찮아(This is fine)"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개의 모습은 몇 년 전에 나온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잭은 아버지의 행동을 지켜만 보는 어머니가 바로 그런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아들과 큰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을 본 어머니는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그 돈은 노년의 부부에게 작은 돈이 아닌데, 아무리 남편이 자기 계좌에 있는 돈으로 내기를 한다고 해도 그 황당한 "예언"이 이뤄진다는 데 그만한 돈을 거는 사람과 인생의 말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어머니의 머리를 때린 것이다. 어머니는 "나는 미친 사람과 같이 살 수 없다"고 결정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믿는 것을 포기하든가, 아니면 가족을 버려야 하는 선택지를 받았다.

잭과 여동생 카이라는 독립해서 분가했지만,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다. 하지만, 카이라는 커밍아웃을 한 후 집에 올 때마다 자기의 성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와 다투는 게 너무 슬프고 힘들어서 결국 아버지와 관계를 단절하고 부모님 집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마저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거다.

그런 직후에 2024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의 승리였다. 이미 선거제도 자체를 불신하는 잭의 아버지는 선거 결과를 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승리한 사실은 잭의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는 항상 하던 주장—2021년 1월 6일 의회 습격은 민주당이 돈을 주고 벌인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고, 그걸 들은 어머니는 앞으로 같은 침실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잭의 부모님은 결별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자라면서 아버지와 별로 가깝지 않았던 잭은 이제 아버지와 가족을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그러나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약한 고리가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결혼 생활이 중요하지 않을까? 아니, 가족이 중요하지 않을까? 자기만 생각을 바꾸면, 그 고집만 버리면, 아내와 딸, 아들의 마음을 되돌리고 온 가족이 행복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그 열쇠를 손에 들고도 꿈쩍하지 않는 것이다.


1년이 흘러 아버지의 예언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의 황당한 예언은 단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오바마, 바이든을 비롯한 주요 민주당 정치인들은 체포되어 유죄가 확정되기는커녕, 수사를 한다는 얘기도 없었다. 음모론자들 외에 그들이 죄를 지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트럼프가 선거 없이 대통령직에 복귀할 거라고 예언했지만, 트럼프는 선거를 통해 돌아왔다. 아버지는 2024년 5월 30일까지 트럼프의 모든 혐의에 대한 기소가 취하될 거라고 했지만, 트럼프는 34개 혐의에 대해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는 계엄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열 가지 예언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뉴스 기사를 모아서 엑셀 파일로 만들어 제시하는 잭 앞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버지는 약속한 대로 "잭, 네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고 선언했고, 잭은 그걸 녹음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아버지는 한 마디를 보탰다.

"물론 지금 백악관에 있는 건 바이든 대역(body double)이지만."

선거에 승리한 후 바이든을 찾아가 만나는 트럼프
이미지 출처: The Economic Times

잭의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음모론자들은 민주당 지도부가 진짜 조 바이든 자리에 대역을 넣었다고 믿는다. 너무나 황당한 얘기라서 그들의 논리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자신의 예언이 틀렸음을 인정하면서도 자기가 믿는 음모론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자기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내가 예측한 일이 2024년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지. 잭, 내가 장담하는데, 그 열 가지 일은 2025년 말까지 전부 일어날 거야. 나는 100% 확신한다."

그러니까 잭의 아버지는 자기가 틀린 건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시점'일 뿐, 그 일들은 여전히 일어난다는 예언 자체가 틀린 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자주 목격하는 "종말의 날 예언," "휴거 예언" 소동의 끝에 등장하는 주장과 다르지 않았다. 잭과 같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뻔한 핑계이고 탈출구이지만, 음모론을 철저하게 믿는 이들에게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잭과 아버지의 내기 결과가 나올 무렵, 어머니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고 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종교를 보는 관점과 레즈비언인 딸아이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버지가 믿는 음모론을 바꿀 생각이 있는지 물었고,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어머니는 "그렇다면 우리가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의 40년 결혼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그 결과, 내기의 결과를 확인하는 곳에는 잭과 아버지, 두 사람만 있었다. 잭은 아버지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말의 희망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는 아버지가 왜 그런 믿음을 붙들고 계시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진실인 걸 아니까 그렇지. 어떻게 진실을 포기할 수 있겠니? 어떻게 거짓말을 믿겠어?"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이 바라는 것은 자기의 믿음을 포기하라는 것이지, 믿지 않는 시늉을 하라는 게 아님을 지적했다. 하지만 자기가 믿고 있는데 아닌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세 사람도 자기가 믿는 것을 나 때문에 바꾸지는 않을 거 아니냐"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물론 잭도 자기가 믿는 진실을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생각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잭과의 연락을 제외하면) 이제 가족과 분리된 아버지의 앞날이 보였다. 근거도 없는 얘기를 믿으며 사회가 붕괴하는 것을 기다리며 은과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을 사 모으며 서바이벌리스트의 삶을 살 것이고, 그럴수록 가족과는 더 멀어질 것이다.

잭은 아버지가 팬데믹 이후로 과격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도 자기가 변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영적 깨달음과 성장"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아내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진리를 보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고 믿는다. 잭은 아버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쨌든 잭은 내기에 이겼고, 아버지는 현금으로 1만 달러를 잭에게 건네주었다. 잭은 가져온 가방에 그 돈을 넣고 나오면서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녹음에서 울먹이는 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망가진 것을 슬퍼하면서도 아버지가 솔직한 생각을 가감 없이 들려준 것에 감사했다.

2025년 1월 1일에 열린 로즈보울 경기
이미지 출처: Sports Illustrated

올해 1월 1일, 잭은 아버지와 미국 대학 미식축구의 꽃인 로즈보울(Rose Bowl)을 보러 갔다. 가족이 응원하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가 오레건 대학교를 상대로 한 경기였다. 잭은 내기로 받은 돈으로 아버지의 입장권과 항공권을 사드렸다. 오하이오 주립대가 승리했고, 두 사람은 음모론 이야기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경기가 끝나면서 잭과 아버지, 두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현실도 함께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