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C라는 약칭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뉴욕 출신의 미국 연방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Alexandria Ocasio-Cortez)는 쉽게 바이럴이 일어나는 재치있는 트윗과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하는 날카로운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런 AOC가 유독 목소리를 높여서 옹호하는 두 집단이 경제적 수준이 낮은 서민과 여성, 그리고 소수인종이다. AOC가 이들을 옹호하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정체성이다. 이민 온 푸에르토리코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브롱크스에서 자랐고, 의원이 되기 전에는 식당 종업원과 같은 블루칼라 노동을 했던 AOC 본인이 이 세 그룹의 교집합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AOC가 옹호하는 이 세 그룹의 사람들 중에서 특히 젊은 여성들이 AOC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AOC를 자신과 쉽게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이 부당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다물라는 유무언의 압력을 받을 때 AOC가 발휘하는 놀라운 동지의식, 혹은 sisterhood(자매애, 자매정신)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한 때 심상정 의원의 "거기 어디니. 언니가 갈게"로 더 쉽게 이해되는 이런 자매정신은 미국 내 젊은 여성들에게는 '언니'가 아닌 동지이자 친구의 지원사격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AOC의 '젊은 여성 보호하기'가 엊그제 미국 의회에서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이 일은 하원의 감독 개혁 위원회(House Oversight Committee)에서 열린 청문회 도중에 일어났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공익 로펌인 에너지 정의를 위한 법과 정책 센터(Energy Justice Law and Policy Center)의 설립자이자 변호사인 라야 설터(Raya Salter)였다. 설터는 환경오염과 기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 연료로 만들어지는 화학제품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위원회에는 공화당 의원들도 있었고, 그중에는 자신의 지역구가 미국 3대 석유화학 공장지대 중 하나인 루이지애나주인 클레이 히긴스(Clay Higgins) 하원의원도 있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히긴스는 설터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상을 보면 히긴스가 설터의 발언을 끊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들, 당신이 입고 있는 옷, 쓰고 있는 안경, 당신이 여기까지 오면서 탔던 차, 당신 앞에 있는 탁자, 앉은 의자, 발 밑에 있는 카펫도 모두 석유화학제품이야. 그거 다 어떻게 할래? (해결책이 있으면) 세상에 말해!" 물론 영어에는 한국어와 같은 반말, 존댓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굳이 반말로 번역한 이유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직접 판단할 문제이지만, 위의 영상 초반에 등장하는 그의 발언 태도는 존댓말로 번역하기 힘들다.

증인인 설터는 이런 히긴스의 말에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루이지애나에서 오신 의원님(you, sir, from Louisiana)께 묻고 싶습니다. 환경청(EPA)도 인정하는 세계 최악의 독성의 오염물질이 루이지애나주의 흑인들을 죽이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설터의 분노는 그 배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루이지애나의 석유화학 산업지대는 전통적으로 흑인들의 거주지에 몰려있다. 그곳에서 노예생활을 했고, 해방이 된 후에도 떠나지 못하고 값싼 땅에 거주하는 이들 주변에 공장지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오는 각종 오염물질로 인해 이 지역은 "암 골목(Cancer Alley)"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곳 주민들의 암 발생률은 미국 평균의 무려 50배가 넘는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복스가 2020년에 공개한 훌륭한 설명 영상이 있다:

하지만 히긴스 의원은 그런 설터의 발언을 막고 설교를 시작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구를 영토(dominion)로 주셨다"라면서 자신이야말로 환경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이에 설터는 "하나님 얘기를 하려거든 다시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회개를 생각해보라. 석유화학 산업이 (당신 주장대로 하나님에게서 받았다는) 지구와 자연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말을 들은 히긴스의 무례함의 강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젊은 여자분, 당신은 말은 시끄럽게 하는데 답은 내놓지 않고 있네요 (You know what you got, young lady? I got a lot of noise, but you got no answer)." 그가 사용한 young lady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는 젊은 여자라는 뜻이지만 이 표현이 미국에서 사용되는 문맥이 중요하다. 버릇없게 말대꾸하는 딸아이에게 부모가, 혹은 나이 많은 남성이 젊은 여성을 내려다보며 야단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아무리 청문회장에 나이 많은 백인 남성들이 많아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건 본 적이 없을 만큼 극도로 무례한 언사였다. 다른 영상을 보면 심지어 증인에게 "boo(우우-)*"하는 말까지 하는 의원답지 않은 행동도 했다.

*정정: 설명에 따르면 히긴스가 사용한 단어 'boo'는 다른 의미다.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친근한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이를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에게 사용할 경우 무례할 뿐 아니라, 여성 비하적이고 인종적인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위원회에는 AOC가 있었다. 그는 이 모든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의 발언 차례가 되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제 발언을 하기 전에) 설터 씨께 직접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이 위원회에서 활동한 4년 동안 저는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의원이 오늘 설터 씨에게 한 것처럼 증인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의원들이 어느 당 소속인지는 관심 없습니다. 이런 식의 행동은 처음 봅니다. 루이지애나에서 오신 의원님이 설터 씨에게 얼마나 편안하게(대수롭지 않게) 호통을 치셨습니까(the comfort that he felt in yelling at you like that)? 의원님, 의사 전달을 그렇게 밖에 못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공개된 장소에서 여성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남자들을 보면 대중이 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두렵습니다. 우리가 이런 수준입니까.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진행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2021년 10월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AOC는 청문회 주제로 돌아가려 하다가 다시 멈춘다.) 아뇨, 잠시만 멈추겠습니다. 저는 설터 씨께서 (오늘 겪은 일과 관련해서) 공식적인 사과를 받으시길 바랍니다만, 사과를 해야 할 분이 사과할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이 위원회가 한 행동과 우리가 목격한 일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국민에게 보여드리면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의회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설터 씨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AOC의 말을 들은 라야 설터는 잠시 말을 끊고 감사의 말을 했다. "의원님, 감사합니다. 의원님께서는 리더십과 용기를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저도 그런 용기에 본받아) 그런 남자들이 하루 종일 덤벼들어도 다 맞서겠습니다."

설터의 이 말에 AOC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정말로 얼굴에서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 그럼 오늘 모두 잡아보죠 (Well, let's get them today then)"

남성중심 사회에서 두 여성이 자매의식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부디 영상 속에서 확인하시길.


청문회에서 보여준 AOC의 동료 여성 보호하기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그가 2020년에 겪었던 일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Sisterhood ②에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