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당한 여성의 정체
• 댓글 남기기14일에 발행한 글 '재판대에 선 역사'의 말미에서 글쓴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부역자 재판은 그 규모도, 재판 결과도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물론 나치에 점령당했던 북부에서는 군중 재판과 사적 제재들이 있기는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머리가 박박 깎여 조리돌림당하는 여성들의 사진 역시 사회적으로 지위가 취약하고 그래서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 쉬운 여성들을 상대로 한 사적 제재였을 확률이 높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그러니까 연합군이 독일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해방된 프랑스에서는 전쟁 중에 독일에 협조한 사람들에게 재판 과정을 생략한 채 사적 제재를 가했죠. 독일군을 도운 걸 똑똑히 본 마을 사람들로서는 굳이 재판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록 사진을 보면 유독 여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머리를 깎이고, 옷까지 벗겨진 채 마을 거리를 강제로 걷게 하는 사회적 매장이었죠.
대표적인 예가 전쟁 보도 사진으로 유명한 헝가리계 유대인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가 찍은 아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카파가 파리에서 멀지 않은 도시 샤르트르에서 찍은 것이고, 사진 속에서 머리를 깎인 채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이름은 시몬느 투소(Simone Touseau). 안고 있는 아이는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프랑스 여성이 전쟁 중에 독일 군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사진을 보고 "적과 동침한 결과"라며 통쾌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 여성의 자세한 사연을 알지는 못해도 지나치게 폭력적이라고 비판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이 여성의 사연은 뭘까?
마침 몇 달 전, 프랑스 르 몽드의 기자(Valentine Faure)가 뉴욕타임즈 오피니언 칼럼에 바로 그 사연을 들려주는 글을 썼다. "Who Was the Real ‘Shaved Woman of Chartres’? (샤르트르의 삭발한 여성의 진짜 정체는?)"라는 제목의 이 글에 따르면 그동안 사진의 유명세에 비해 정작 사진 속 주인공 시몬느 투소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는 비교적 뒤늦게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투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세히 알려졌다. 독일에 협조한 사람이 맞고, 아이는 독일 군인과 낳은 것도 맞다.
그런데 그게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 여성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사연을 상상한 소설이 등장한 것이다. 르몽드 기자의 글은 사회가 역사 속의 여성을 보는 시각을 이야기한다. 투소는 '재판대에 선 역사'에 등장하는 필리프 페탱과 달리 인종청소를 시도한 나치에 협조한 게 분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악당'의 경우도 여성이면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아래는 뉴욕타임즈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으로,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약간의 의역을 했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1944년 8월, 파리 근교의 한 마을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사진을 찍었다. 이 여성은 삭발한 상태로, 이마에는 나치의 상징인 스와스티카가 그려져 있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있다. 시몬느 투소(Simone Touseau)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카파의 사진으로 전 세계에 얼굴이 알려지게 될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치의 점령이 끝난 후 프랑스가 보여준 폭력성을 상징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2차 세계 대전 중 일부 프랑스인들이 나치에 동조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연구에 등장했다.
그리고 지난여름, 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 나왔다. 이 소설에서 시몬느 투소는 연인에게서 버림받은 여성으로 둔갑한다. 이는 투소와 투소처럼 의도적으로 나치에 협조한 다른 프랑스 여성들로서는 모욕적 해석이다. 이 여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나치에 협조했다. 겁을 먹어서 협조하기도 했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혹은 나치의 주장에 사상적으로 동조해서 그들에 협조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이들에게 다양한 이유와 동기가 존재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샤르트르의 삭발한 여성"이라는 제목이 붙은 카파의 사진을 보자. 젊은 투소가 사진의 한가운데 있는 이 사진은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해방된 프랑스에서 일어난 숙청 작업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보여준다. 프랑스 전역에서 사법 절차를 무시한 처벌이 횡행했고, 그중에는 적과 동침했다고 의심되는 여성들의 머리를 깎는 일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여성들에 관한 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2차 대전 중에 여성들이 나치에 협조하거나 저항한 사례에 뒤늦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나온 파브리스 버질리(Fabrice Virgili)의 연구는 숙청 작업 때 머리를 삭발당한 여성들이 모두 독일 군인들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 아니며, 단순히 독일에 협조했다는 등의 고발을 당한 여성들도 그렇게 머리를 깎이고 조롱을 받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연구가 쌓이면서 우리는 시몬느 투소에 관해서도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역사학자 제라르 리레이(Gérard Leray)와 필리프 프레티뉴(Philippe Frétigné)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투소는 전쟁이 시작하기 이전부터 나치의 주장에 동조하던 사람이었다. 1930년대 중반에 이미 자기 노트에 스와스티카를 그리곤 했고, 국가사회주의(=나치)를 숭상하며, 프랑스에도 "히틀러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어를 능숙하게 사용했던 투소는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한 후 통역가로 활동했고, 프랑스인민당(Parti Populaire Français,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며 나치 독일에 호의적이었던 프랑스의 파시스트 정당—옮긴이)의 당원이 되었다. 그는 네 명의 이웃을 나치에 고발해 마우타우젠 수용소로 보낸 혐의를 받았다. 그중 두 명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였지만, 투소를 고발한 사람들은 그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학자 리레이는 투소가 최소한 그 일에 가담한 것은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연합군이 프랑스를 해방시키는 상황이 되자 투소는 자기 아이의 아버지인 독일 남성에게 쓴 편지에서 만약 자기가 죽게 된다면 딸아이가 "영국인들을 혐오하도록" 키워달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철저한 나치 동조자였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에 삭발한 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투소는 폭력적인 숙청 작업의 피해를 당하는 동시에, 자기 행동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프랑스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중요한 순간이었다. 프랑스에서 2차 세계 대전에 관한 기억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고,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있다. 그때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두고 프랑스인들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가깝게는 2019년, 한때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던 극우인사가 비시 정권의 필리프 페탱이 프랑스 내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게 아니라 오히려 구해줬다는—사실이 아닌 것으로 오래 전에 입증된—주장을 다시 꺼냈다). 당시 프랑스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2023년 8월, 프랑스에서 시몬느 투소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Vous Ne Connaissez Rien de Moi (당신들은 나를 전혀 모른다)'가 출간된 것이다. 줄리 에라클레스(Julie Héraclès)가 쓴 이 소설은 시몬느 투소의 이름을 그리비즈(Grivise)로 바꾸고, 연인에게서 버림받은 여성으로 묘사한다.
소설 속에서 시몬느는 부유한 가정 출신의 젊고 잘생긴 남성 피에르와 사랑에 빠진다. 피에르는 시몬느를 성폭행하고, 시몬느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그를 버리고 프랑스의 시민 저항군 레지스탕스에 합류한다. 그 결과 시몬은 혼자서 불법으로 태아를 낙태한다.
피에르에 대한 복수에 불타는 시몬느는 나치를 돕는 통역사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독일 장교 오토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후에 오토가 동부 전선에서 부상을 당하자, 시몬느는 프랑스인민당에 가입해 오토가 있는 독일로 이주하려 한다. 그런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소설 속 시몬느에게는 유대인 친구가 있고, 레지스탕스 대원을 구하기 위해 독일 비밀경찰(게슈타포)에게 거짓말을 한다. 또한 이웃에 사는 유대인을 밀고하는 행위를 "역겹게" 생각하고, 어린 유대계 여자아이에게 음식을 건네준다. 리레이에 따르면 사실일 가능성의 거의 없는 허구다. 하지만 그런 설정 때문에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여러 문학상의 후보로 올랐을 뿐 아니라, 스타니슬라스 신인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들은 이 소설이 인상깊고, 담대하다고 칭찬했고, 독자들이 온라인에 남긴 리뷰를 보면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시몬느의 삶에 진정으로 몰입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말과 함께 "사람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며, 그저 선과 악이 복잡하게 얽힌 존재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물론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실제 역사를 소설이 과연 그렇게 바꿔도 되느냐는 거다. 작가 에라클레스는 나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런 논란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투소를 옹호하려고 그 책을 쓴 게 아니었고, "젊은 여성이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를 상상해 봄으로써 "인간이 처한 상황(인간의 조건)을 탐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소설의 끝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나는 성인(saint)도, 악당도 아니다. 어떤 것도 완전히 흑이거나 백이 될 수 없다. 승리하는 건 회색이다. 남성들과 그들의 영혼도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시몬느 투소에게 역사를 빙자해 감상적인 역할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 풍부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몬느 투소의 자기 결정권을 빼앗는 동시에 우리의 역사 인식을 빈약하게 만든다.
샤르트르의 삭발한 여성은 주장이 강한, 이데올로기적인 인물이었다. 우리가 그 인물에 대해 가졌던 이차원적 이해를 넘어설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역사적 연구의 결과였다. 인간은 선과 악이 복잡하게 얽힌 존재인 건 맞다. 그리고 소설은 예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팩트에서 벗어날 특권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시몬느 투소를 로버트 카파의 사진 속, 그리고 그걸 본 세계인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던 '희생적 어머니'라는 익숙한 역할로 되돌려 놓았다. 어쩌면 우리는 시몬느 투소를 포함한 삭발당한 여성들이 자의에 의해 악에 동조했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런 전통적 역할에 머물러 있는 걸 선호하는 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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