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에 발행한 글 '재판대에 선 역사'의 말미에서 글쓴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부역자 재판은 그 규모도, 재판 결과도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물론 나치에 점령당했던 북부에서는 군중 재판과 사적 제재들이 있기는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머리가 박박 깎여 조리돌림당하는 여성들의 사진 역시 사회적으로 지위가 취약하고 그래서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 쉬운 여성들을 상대로 한 사적 제재였을 확률이 높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그러니까 연합군이 독일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해방된 프랑스에서는 전쟁 중에 독일에 협조한 사람들에게 재판 과정을 생략한 채 사적 제재를 가했죠. 독일군을 도운 걸 똑똑히 본 마을 사람들로서는 굳이 재판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록 사진을 보면 유독 여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머리를 깎이고, 옷까지 벗겨진 채 마을 거리를 강제로 걷게 하는 사회적 매장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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