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넷플릭스가 미국의 장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를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의 비즈니스 측면에 관해서는 커피팟에서 이 발표를 잘 설명했지만, 원래 세서미 스트리트는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가 50년 넘게 만들어 상영해 온 프로그램으로, 2016년부터는 HBO에서 사전 방영권을 사서 먼저 방송한 후, 일정 기간의 시차를 두고 PBS에서 방송하는 방식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HBO의 모기업인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었고, 프로그램의 영역을 계속 확장 중인 넷플릭스가 나서서 방송권을 산 것이다. 게다가 이번 계약은 HBO 때와는 달리, 새로운 에피소드를 넷플릭스와 PBS가 같은 날 동시에 방송할 수 있게 되어있어서 넷플릭스 가입자와 일반 케이블 TV 시청자들 사이의 차별도 사라지게 된다.

이번 계약이 순전히 비즈니스적인 결정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PBS와 NPR 등 공영방송을 지원하는 CPB(Corporation for Public Broadcasting, 공영방송공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완전히 없애는 행정명령을 내린 사실이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를 제작하는 세서미 워크숍으로서는 연방 정부와 HBO에서 오는 돈이 모두 끊길 위기 상황에서 넷플릭스라는 탈출구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정부는 왜 공영방송에 대한 지원을 끊었을까? 공영방송을 싫어하는 건 트럼프만이 아니다. 미국의 보수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정확하게는 미국에 공영방송이 탄생한 순간부터—공영방송을 싫어했고, 이를 없애려고 벼르고 있었다. 말하자면, 미국 보수가 원했지만 비난이 두려워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을 트럼프가 해냈다는 게 맞다.

트럼프는 특히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 대한 오랜 악감정이 있다. 트럼프가 정치를 시작하기 한참 전인 1980년대,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이던 시절에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그를 돈을 위해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악덕 부동산업자 "로널드 그럼프(Ronald Grump)"로 묘사한 적이 있다. '나 홀로 집에'와 같은 영화에서 주로 코믹한 악당 역을 맡는 조 페시(Joe Pesci)가 트럼프를 상징하는 금발의 가발을 쓰고 나온 아래 장면을 보면 트럼프가 세서미 스트리트에 좋은 감정이 없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 로널드 그럼프는 세서미 스트리트(동네)를 밀어버리고 자기 빌딩을 짓겠다고 해서 항의를 받는다.
'로널드 그럼프'는 나중에는 머펫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래 잊혀졌다가 최근에 발굴되어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는 이 영상들을 본 미국인들은 "맞아, 트럼프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도 나쁜 사람이었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부자들도 많지만, 트럼프는 그런 부자가 아니었다. 세입자들을 속이고, 부동산 가치를 터무니없이 부풀려 낮은 이율로 돈을 빌리며, 주민의 터전인 커뮤니티를 파괴해 부동산을 개발하는 악덕 부자의 대명사였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교육방송(EBS) 같은 곳에서 만든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악덕 재벌을 비꼬는 캐릭터를 내세우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용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는 왜 트럼프와 같은 인물을 비판했고, 미국의 보수층은 왜 세서미 스트리트를 없애려고 그토록 이를 갈았을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이 역사는 단순히 세서미 스트리트와 공영방송의 역사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의 정치에 진보의 바람이 강하게 불던 1960년대와 그때 만들어진 다양한 진보적인 정책들을 무너뜨리고 미국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보수 진영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온 노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를 이해하면 미국의 2025년 모습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아래의 내용은 2022년에 NPR의 스루라인이 세서미 스트리트의 역사를 다룬 보도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들을 참고해서 정리한 것이다.

1969년에 방송된 세서미 스트리트 첫 회. 프로그램의 포맷과 배경, 등장 인물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지 출처: Vintage Sesame Street 유튜브 채널

세서미 스트리트는 1969년 11월에 첫 회가 방송되었다. 첫 6개월 동안은 포드 재단이 만든 NET(National Education Television)이라는 곳을 통해 방영되었지만, 이듬해인 1970년에 설립된 공영방송 PBS(Public Broadcasting Service)가 NET를 흡수하면서 이후로 줄곧 PBS에서 방영되는 대표 프로그램이 되었다.

당시 미국 방송계에는 '공영방송'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영방송사를 지원하는 CPB가 설립된 해가 1967년이고,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이 설립된 것이 1971년이다. 5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현재 미국의 공영방송을 구성하는 굵직굵직한 단체와 프로그램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1967년에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공영방송법(Public Broadcasting Act of 1967) 때문이고, 이 법은 민주당이 1964년부터 방송을 통해 교육의 기회를 넓히겠다는 공약이 맺은 결실이다.

참고로, 미국의 공민권법과 함께 이런 진보적인 입법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당시 미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이 있다. 존 F. 케네디의 부통령이었다가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하면서 대통령이 된 존슨은 1969년 1월,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에게 자리를 내줄 때까지 20세기 미국의 가장 역동적이었던 60년대를 이끌었다.
존슨은 오래 상원의원 경험으로 익숙한 의회를 설득, 압박해서 법을 통과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대통령이다. (이 때문에 의회를 통한 입법을 포기하고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정치하는 트럼프 같은 21세기 대통령들과 자주 비교된다.) 그가 의원들을 설득, 압박할 때는 미국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을 침범해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을 자주 썼는데, 워낙 악명이 높아서 '존슨식 취급법(Johnson Treatment)'이라는 말까지 생겼고, 린든 존슨 기념 도서관에는 방문객이 존슨식 취급법이 얼마나 거북한지 직접 체험해 보는 코너도 있다.
'존슨식 취급법' 그의 큰 키도 도움이 되었다. 미국 역사에서 키가 190이 넘는 대통령은 링컨과 존슨 뿐이다. (트럼프는 자기 키도 190이 넘는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기록 사진에 따르면 근거 없는 주장으로 통한다.) 
이미지 출처: Political Dictionary

공영방송은 왜 진보적인 어젠다였을까? 형편이 넉넉한 가정에서는 자녀를 교육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고, 형편이 넉넉하다는 것은 대개 교육을 잘 받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 특히 1960년대 미국에서 큰 문제로 떠오른 도시 빈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해야 했기 때문에 때로는 2~3개의 일을 하면서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녀의 교육을 제대로 챙기기 힘들었고, 특히 학교에 갈 나이가 되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놀거나, TV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과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 혹은 부모가 집에서 일찍부터 글을 가르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학습 능력에 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했다.

물론 당시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존재했다. 하지만 벅스 버니, 로드러너 등으로 대표되는 루니 튠즈(Looney Tunes) 같은 오락용이 전부였고, 아동용 프로그램이 끝나도 집에 부모가 없이 남겨진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부모의 귀가를 기다렸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은 지역에 상관없이 비슷했지만, 그런 아이들은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가난한 동네, 특히 흑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많았다.

루니 튠즈의 벅스 버니

가난이 가져오는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이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뉴욕에서 지역 TV 방송 프로듀서로 일하던 조언 쿠니(Joan Ganz Cooney)였다. 그는 TV를 통해 어린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조언은 1966년 어느 날, 남편과 함께 가까운 지인들을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로 초대하는 디너 파티를 열었다. 파티라고 하기에는 아주 적은 인원이 모인 저녁 식사에 가까웠지만, 그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은 조언 쿠니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카네기 재단의 이사도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어린이용 TV 프로그램은 반드시 오락용에 국한될 필요가 없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아이들이 TV를 보며 맥주 광고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면, 교육적인 내용, 사회적인 메시지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는 게 조언 쿠니의 주장이었다.

프로듀서였던 조언 쿠니는 미국의 저소득층 유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인 헤드 스타트(Head Star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시 할렘에서 TV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965년에 시작된 헤드 스타트는 다름아닌 린든 존슨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나와 아내가 함께 유학생이던 시절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도 어린 시절에 도움을 받았다.

트럼프는 지난달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지원을 끊었다. 다시 말하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은 1960, 70년대에 일어난 모든 진보적인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 최종 목표다.

조언 갠즈 쿠니
이미지 출처: ToughPigs

'세서미 스트리트 1969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