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록산 게이(Roxane Gay)는 사람 이름이다. 물론 록산 게이를 잘 아는 사람도 많을 거다. 한국에 이미 여러 권의 책이 소개된, 유명한 저자다. 특히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을 많이 쓰는데, 그가 쓴 에세이들을 모은 'Bad Feminist'(2014, 한국에는 '나쁜 페미니스트'로 2016년에 소개되었다)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내용은 록산 게이의 페미니즘 이야기(도 없는 건 아니지만)가 아니라 그의 비만 이야기다. 그는 이 주제로 책을 냈고, 한국에도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으로 번역되었다. 비만은 그에게는 이야기하기 몹시 힘든 주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가장 쓰기 싫었던 책이기 때문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그가 쓰기 힘들었다는 건 단지 비만이 자신에게 민감한 이슈라서 쓰기 힘들었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사람들이 "뚱뚱하다(fat)"라고 할 때는 정해진 하나의 기준이 있는 게 아니다. 나라, 문화마다 다르고 (나는 미국 기준으로는 정상 체중이지만 한국 기준으로는 과체중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더더욱 다양하다. "다이어트를 해서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날씬한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뚱뚱하다'라는 표현을 자신감을 드러내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할 때처럼 '충고'의 맥락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건강 검진 때 의사에게서 '과체중' 혹은 '비만'이라는 의학적 용어로 듣기도 한다. 각 맥락에서 '뚱뚱한 체중'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록산 게이는 어떤 기준으로도 뚱뚱하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 다음 글에서 소개하겠지만, 그는 자신의 비만을 이야기할 때는 그냥 '뚱뚱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 선호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전달하는 게 그가 원하는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체중이 한 때 577파운드(261kg)에 도달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체중만 많이 나가는 게 아니라 키도 크다. 190cm가 넘는다.

록산 게이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사람을 소개할 때 그의 체중과 사진을 소개하는 게 적절한 거냐 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게이의 말처럼 여성들이 "나는 뚱뚱해"라고 말할 때의 기준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설명이 부족하다면 다음 글에서 이 문제를 두고 인터뷰이와 나누는 이야기가 좀 더 명확하게 밝혀줄 거다.

먼저 오늘 소개할 인터뷰는 5분짜리 짧은 인터뷰다. 이 인터뷰는 그의 책 '헝거'가 나오기 1년 전인 2016년에 방송된 것으로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오터레터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This American Life에 등장한 인터뷰이고, 인터뷰어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아이라 글래스(Ira Glass)다.


진행자: 미국에서 비만은 백인보다 흑인 인구에 많이 나타납니다. 록산 게이는 그의 책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인종문제는 물론이고 비만에 관해서도 이야기했고, 다른 곳에서도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록산은 흑인입니다. 그리고 뚱뚱합니다. (Roxane's black. She's fat.) 록산에 따르면 그 두 가지 요소가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록산 게이: 그럼요. 저는 항상 남자로 오인받아요. 정말로 항상 그래요. 하지만 저는 가슴이 아주 큽니다. 그러니 저를 남자로 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저를 볼 때는 제 피부색을 봅니다. 그리고 '설마 저 사람이 여자일 리 없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거고, 아주 불쾌하죠.

진행자: 그렇게 오인하는 사람들은 백인들인가요, 아니면 흑인들도 그러나요?

록산 게이: 물론 백인들이죠. 흑인들은 저를 (여자로) 알아봐요.

진행자: 그러니까 과체중이라서 들어야 하는 개소리(bullshit)에 흑인이라서 들어야 하는 개소리가 추가된다는 거죠?

록산 게이: 네, 그래요. 존중의 서열에서 (흑인이기 때문에) 더 낮아지는 거죠. 사람들은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쳐다보지도 않아요. (뚱뚱한 흑인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제가 자동차를 사러 매장에 가서 기다리면 딜러가 제일 늦게 찾아오는 사람이 저예요. 저 같은 사람이 차를 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진행자: 직접 경험하신 일인가요?

공항 게이트 앞의 우선 탑승 라인 (이미지 출처: Million Mile Secrets)

록산 게이: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가장 흔한 건 비행기를 탈 때입니다. 저는 공항 게이트에서 우선 탑승 라인(priority line, 프리미엄/비즈니스석 이상의 승객들을 먼저 탑승시키는 줄)에 설 때가 많아요. 매주 비행기를 타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제게 "여기 일등석 탑승 라인이에요"라고 해요. 저는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죠.

진행자: 그러면 뭐라고 답하세요?

록산 게이: 저도 글 읽을 줄 알아요, 라고 말하고 맙니다.

진행자: 뚱뚱한 것에도 종류가 있다고 하셨는데,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록산 게이: 네, 저는 뚱뚱한 것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20파운드(9kg) 정도 과체중인 사람이 있죠. 그 정도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지만 체중을 줄이고 싶어합니다. 그럼 슬림 패스트(Slim Fast, 다이어트 제품 브랜드)를 한 두 주 먹는 식이죠.

그리고 제가 "레인 브라이언트(Lane Bryant, 미국의 플러스 사이즈 여성용 패션 브랜드) 정도로 뚱뚱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레인 브라이언트 같은 곳에서 옷을 살 수는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매장에는 28 사이즈(미국 기준)도 있거든요. 제 생각에는 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나는 나야(This is who I am)"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 "나의 몸에도 '불구하고' 나를 존중하라는 게 아니라 이게 나의 몸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해" 같은 말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레인 브라이언트 웹사이트에 등장한 제품, 모델 사진

저는 그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기가 옷을 살 수 있는 매장이 여러 군데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게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린디(앞서 나온 다른 이야기에 등장한 여성)씨가 22 사이즈라고 하셨어요. 그분이 말하자면 '레인 브라이언트'에 해당된다는 거죠?

나라마다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여성 의류용 사이즈는 위와 같다. 

록산 게이: 네, 물론 저는 나쁜 의미로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닙니다. 단지 그런 분들은 저 같은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에도 갈 수 있다는 거죠.

진행자: 본인의 상황은 어떤가요?

록산 게이: 또 다른 단계가 있어요. 심각한 병적 비만일 경우 맞는 옷을 파는 곳도 찾을 수 없어요. 게다가 영화관이나 공중 화장실 같은 공공장소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진행자: '병적 비만(morbidly obese)'이 의학계의 공식 용어인가요?

록산 게이: 아뇨, 공식 의학용어는 '심각한 병적 비만(super morbidly obese)'입니다.

진행자: 너무 잔인(mean)한데요.

록산 게이: 네, 맞아요. 잔인합니다. 비인간적이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morbid/morbidly라는 단어가 가진 어감 때문이다. 의학에서 사용되기에는 문학적이고 우울한 단어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를 다루는 인기 팟캐스트의 제목 Morbid인 것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환자의 증상에 붙이기에는 너무 잔인한 단어다. 아마도 이 인터뷰 보다 후에 일어난 변화이겠지만이제는 미국 의학계에서도 이 용어 대신 비만 정도를 숫자로 표시하고 있다.

진행자: 레인 브라이언트 수준이 되시려면 체중을 얼마나 줄여야 하십니까?

록산 게이: 200 파운드(90kg)요.

진행자: 나는 뚱뚱하다는 것만 생각한다("Fat is all I ever think about")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의미죠?

록산 게이: 엄청나게 집착한다는 거죠. 아주 일상적인 일을 하려고 해도 제 머릿속에는 불안감 가득한 대화가 끊이질 않아요. '아, 여기에 꼭 가야 하나' 하는 일들 말이죠. 밖에서 식사하게 되면 가려는 음식점을 구글에서 열심히 검색합니다. 그 식당에 있는 의자가 튼튼하게 생겼나? 혹시 팔걸이가 있는 건 아닌가? 음식점 내부가 어떻게 생겼지? 그렇게 찾아보고 불편할 것 같다 싶으면 그냥 가지 않기로 합니다.

제가 지난 25년 동안 제 몸이 제 인생의 전부였다는 (=오로지 자신의 체중만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비만 받아들이기 운동(fat acceptance movement)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좋은 운동이고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있지는 않거든요. 저도 노력 중이지만 아직 그렇게 하지는 못해요. 문제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에 신경을 끄기가 아주 힘들다는 겁니다. 특히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제게 이야기할 때는 말예요.  

그가 식료품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카트 속 음식을 보면서 잔소리를 하고 심지어 음식을 꺼내기도 한단다.

진행자: "나는 나 자신이, 내 몸이 보이는 모습 그대로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게 그 운동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게이 씨의 글을 읽으면 그런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이런 모습인데 내가 이런 모습인 걸 원하지 않아, 그런데 왜 내가 괜찮은 척해야 하는 거지? 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록산 게이: 네, 맞아요. 저는 (비만이) 괜찮은 척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는 건 아니에요. 단지 저는 저의 몸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현실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가령 계단을 올라가는 게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 알고 있어요. 저는 날씬할 필요 없어요, 하지만 지금보다 나은 체형을 갖고 싶어요. 스태미너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저의 허영심이겠지만–좀 더 예쁜 옷을 입고 싶어요.

진행자: 그건 정상적인 바람이죠.

록산 게이: 네, 정상이에요. 하지만 저의 그런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레인 브라이언트 정도로 뚱뚱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레인 브라이언트 정도로 뚱뚱해도 사는 게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최소한 그 정도는 누리고 있잖아요. 제게는 그것조차 없어요. 그러니 저는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느끼게, 나는 나 스스로이게 놔두라는 겁니다.  


언뜻 생각하면 자신의 비만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어떤 커뮤니티이든 내부적으로 룰이 만들어지고 진영으로 변하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내일 이어지는 '록산 게이 이야기 ②'에서는 논의가 더 깊이 들어가는 다른 인터뷰를 소개할 예정인데, 이 인터뷰에서 게이는 온라인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40 : 30 : 30의 비율로 자신이 페미니스트인 것과 흑인인 것, 그리고 뚱뚱한 것을 트롤링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두 번째 인터뷰는 게이의 '헝거'가 나온 후에 진행된 것으로, 전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의 끔찍한 기억, 즉 게이가 음식을 많이 먹게 된 어린 시절의 사건이 나온다.

어린 시절의 록산 게이 (이미지 출처: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