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구조, 사회가 애써 감추려는 작동 방식들이 존재한다. 가령, 20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정부와 금융기관에는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을 제한하는 정책이 비밀리에 존재했다. 20세기 후반에 백인들이 축적한 부의 대부분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서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 흑인들의 경제적 소외가 얼마나 제도적으로 설계된 것인지 보여주지만, 당시 관련 업무를 하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런 정책(지도에 특정 지역을 빨간줄로 표시했다고 해서 "레드라이닝redlining"이라 부른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카를 마르크스의 '산업예비군'이라는 개념을 가져와서 설명하기 전까지 여성이 노동의 기회에서 소외되는 게 얼마나 구조적인 문제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회의 부당한 작동 방식은 전통적으로 당연시되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숨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아주 단순한 시각적 단서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나중에 알게 된 이름이지만) '저상 탑차'라는 트럭에서 물건을 힘겹게 꺼내는 노동자를 아파트 주차장에서 보고 '왜 하필 저렇게 화물칸이 낮게 설계된 차를 이용하지? 저렇게 일하면 허리를 다칠 텐데...'하고 궁금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한국의 아마존"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전자상거래업체의 차량이었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서 흔히 보던 아마존의 배달 차량의 생김새와 금방 비교가 되었던 거다.

미국의 배달 노동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미국은 테일러주의(Taylorism)를 낳은 나라답게 노동자의 작업 동작에 대해 많은 고려를 한다.

한국과 미국의 배달 노동자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GeekWire)

한국의 물정을 잘 몰랐던 나는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미국처럼 화물칸을 높게 만들면 되는데, 왜 그 단순한 걸 하지 않지?"하고 물었다. 그 친구는 내게 "주민이 아파트 지상층에서 배달 트럭을 보기 싫어하는 아파트들이 있어서, 그럴 경우 (층고가 낮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저상 탑차를 써야 한다고 들었다"고 알려줬다. 자기가 주문한 물건이 오는 건데 트럭을 보고 싶지 않다는 심리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의 고급 호텔, 아파트 중에도 직원들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저상 탑차에서 작업하다가 허리를 다치면 결국 기업이 거액의 치료비와 재활비를 배상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정상적인 화물차를 사용하는 게 낫지 않나? 이런 나의 의문은 필연적으로 21세기 배달 노동의 구조적 문제인 '종속적 자영업자' 혹은 '긱(gig) 노동'의 실체를 이해하게 해줬다. 이들은 그 업체의 직원이 아니라 (무늬만)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허리를 다치는 건 기업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업에 중요한 건 고객에게 약속한 시간 안에 물건이 배달되느냐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최근에 나온 책,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21세기 한국이 숨기고 있는 구조, 숨겨야 하는 노동자들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책이다. 배달 노동자는 그나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눈에 띄는 사람들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일부일 뿐이다. 저자는 책 도입부에서 긱 노동자나 조선업계의 80%를 차지하는 하청 노동자는 물론이고, 청년 노동자나 여성 노동자처럼 업종이 아닌 세대, 젠더로 구분될 수 있는 다양한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를 소개한다.

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이라(proletariat)라는 의미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다.

인류 사회에는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노동 형태가 존재해 왔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는 계급이 노동의 형태를 결정하는 일이 흔했다. 그런가 하면 노예 노동은 자본주의의 등장 후에도—심지어 지금까지—인류가 뿌리 뽑지 못하는 노동 방식이다. 20세기에 태어나서 21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노동 방식은 기업에 취직해서 출퇴근하는 월급 노동이다.

월급 노동에도 워낙 다양한 형태와 처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어도 대부분의 산업화 국가에서는 이런 노동 형태를 중심에 두고 사회 제도를 만들었다. 건강 보험도, 퇴직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연금도 전부 학교를 졸업한 후 성인기의 대부분을 월급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기본 모델로 설계된 제도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가령, 가정주부나 아이들—도 '월급 노동자의 피부양자'라는 형태로 같은 제도 안에 존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가령 종속적 자영업자처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노동자들이 급증했고, 월급 노동자도,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도 20세기와 같은 사회 계약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본격화한 건 고작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새롭게 변화한 노동 형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 계약'은 고사하고, 이런 노동 방식—혹은 노동자의 존재 방식—에 대한 정확한 파악도 되지 못한 상황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그런 파악을 시도하는 책이다.

학자의 접근

저자는 중앙대학교 교수다. 한국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은, 그것도 사회과학 분야의 교수가 된다는 것은 정부가 만드는 무수한 '위원회'에 들어갈 예비군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권자를 위한 정책으로 표를 가져와야 하는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혹은 원하지 않는 정책을 속으로 이미 결정했어도 이를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고, 이럴 때 요긴한 게 바로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그것도 '불안정노동'을 연구하는 교수라면 정부가 얼마나 좋아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21세기 한국의 노동 현장에서 20세기식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 저자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시선을 조금씩 자기 내부로 옮겨간다. 그런 변화가 처음 보이는 건 청년 노동을 이야기하는 3부다. 정부의 '청년정책조정위원회'라는 곳에서 부위원장을 맡게 된 저자가 첫 모임에서 인사말로 전태일 열사를 언급했다가 한 청년위원에게서 반박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청년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며, 자기는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고, 그런 청년들도 많이 있다고 한 그 청년위원은 명문대를 졸업한 스타트업의 대표였다고 한다. 저자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청년 문제'라는 것이 과연 세대의 문제인지 계급의 문제인지 고민한다.

더 나아가 교수인 자신이 "시그니처 정책"을 하나 만들어 주기 원하는 정치인들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갈등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학자라는 역할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자기 자녀를 블루칼라 노동자로 키우지 않을 중산층 지식인이 그런 노동자를 연구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청년들의 노동 시장에서 남녀 격차에 주목해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2002년부터 2022년까지 청년의 불안정노동을 분석해 본 결과, 여성 청년 중에서는 '매우 불안정한 노동자'의 비율이 줄어든 반면, 남성 청년 중에서는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동안 여성이 불안정노동에 훨씬 쉽게 노출된다는 연구가 많았기 때문에 본인도 그런 결과를 예상했다가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저자는 이 결과를 발표한다는 얘기를 듣고 "왜 이승윤 교수(여자 교수)가 그런 연구를 시도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부터 "‘반(反)젠더적" 연구 결과를 보고 난처하다며, 발표할 때 분위기를 감안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지만, 연구의 존재 이유, 학자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연구의 완결판도 아니고, 현 노동 시장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책도 아니다. 그래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저자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현장에서 측정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기업가, 정부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서두를 때, 누군가는 객관적인 관찰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관찰에 근거하지 않고 내놓는 해결책은 잘해야 공허한 것이고, 많은 경우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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