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소셜미디어 ①
• 댓글 1개 보기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귀환은 얼마나 필연적인 일이었을까? 선거 패배 후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패인을 분석했다.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가령, 바이든이 건강 상태를 과신하고 뒤늦게 후보 사퇴를 하는 바람에 내부 경선을 할 기회를 놓친 것, 그로 인한 민주당의 선거 흥행 실패, 뒤늦게 선거운동을 새로 조직하면서 해리스가 불리한 위치에 놓인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패인이다. 하지만 유권자(투표자) 집단을 중심으로 패배 원인을 살피면 훨씬 더 분명한 이유가 보인다.
민주당은 거의 모든 유권자 집단에서 트럼프에 패했지만, 2020년 바이든이 승리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변화가 가장 눈에 띄는 유권자층이 젊은 유권자, 그것도 남성 유권자들이다. 트럼프는 2020년 선거 때 젊은 남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15% 차이로 패했지만, 2024년에는 14% 차이로 승리했다. 젊은 유권자들을 놓치는 당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이들은 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에게 등을 돌렸을까? 전 세계적으로 젊은 남성 유권자들이 보수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특정 유권자들의 '성향'이 돌변했다고 보는 게 과연 적절할까? 그렇다면 이들은 왜 갑자기 트럼프를 지지했을까? 성향이 돌변한게 아니라면 이들의 트럼프 지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평가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극우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하는 것이 뉴미디어다. 한국에서는 유튜브, 미국에서는 팟캐스트가 대표적인 채널로 통한다. 작년 말, 한국기자협회 웹사이트에 실린 기사가 이를 잘 설명하는데, 기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공화당)의 재선(1956년) 이후 68년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온 진보성향의 신문 뉴욕타임스 구독자는 1100만명으로 세계 1등이다. 보수 성향의 미국 1위 팟캐스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의 팔로워 수는 유튜브 1860만명, 스포티파이 1500만명을 넘는다. 팟캐스터 한 명이 뉴욕타임스만큼의 양적 파워를 갖는 현실이다. 선거 2주 전인 10월26일, 3시간에 걸친 조 로건 팟캐스트의 트럼프 인터뷰는 1주일 만에 유튜브에서만도 4500만건(30초 이상 시청 기준), 스포티파이와 애플 등 다른 플랫폼에서 2500만건 이상의 뷰를 기록했다. 테오 본, 앤드류 슐츠 등 트럼프가 출연한 다른 팟캐스트 조회수도 유튜브에서만 각각 1500만회, 800만회에 달했다. 카멀라 해리스도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젊은 흑인 남성 타깃의 ‘클럽 쉐이쉐이’와 ‘올 더 스모크’, 여성 타깃의 ‘콜 허 대디’ 등에 나갔다. 이들 유튜브 조회수는 선거가 다 끝난 11월 말 기준으로도 각각 약 160만회, 약 60만회, 약 80만회다. 트럼프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상위권 팟캐스트를 보수권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주류 언론들은 압도적으로 해리스를 지지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우회하는데 깔끔하게 성공했다."
민주당의 뉴미디어 전략의 실패가 대선 패배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위의 압도적인 숫자 차이를 보면 젊은 남성 유권자들에 다가가지 못한 중요한 이유인 것은 분명하다. 위의 기사에서 언급된 조 로건(Joe Rogan), 테오 본(Theo Von), 앤드류 슐츠(Andrew Schulz) 같은 사람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들은 청취자 중 남성 비율이 80% 이상으로, 이들의 팬덤은 "남초 커뮤니티(manosphere, 매노스피어)"에 해당한다.

따라서 민주당에서 지난 대선의 패배를 뉴미디어 전략의 실패, 혹은 "메시지 전달(messaging)"의 실패로 규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가령, 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Gavin Newsom) 같은 사람은 아예 자기가 직접 팟캐스트를 만들어 운영하며 정치적인 좌우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지지기반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민주당의 노력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를 짐작해 보기 위해서는 팟캐스트와 트위치(Twitch),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인기있는 채널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젊은 남성들이 듣는 팟캐스트, 트위치 채널에 대한 글은 과거에도 많이 나왔지만, 최근 뉴요커의 앤드류 마란츠(Andrew Marantz) 기자가 쓴 'You Mad, Bro?'라는 기사(온라인 제목은 The Battle for the Bros) 만큼 깊이 있고 편견 없이 다룬 글도 드물다.
아래는 마란츠의 기사와 그 기사를 두고 인터뷰한 내용에서 눈길을 끄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오터레터의 독자 중에는 기자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의 사고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들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앤드류 마란츠 기자는 우선 '매노스피어(남초 커뮤니티)'를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매노스피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매노스피어라는 말을 들으면 여성혐오자이자 성범죄자인 앤드류 테이트(Andrew Tate) 같은 인물의 팬들을 떠올리기 쉽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매노스피어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매노스피어는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여성을 혐오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젠더/성역할에 관해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매노스피어에 속하고, 아예 정치,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게임이나 (한국에서는 흔히 '헬창'이라는 비속어로 표현되는) 헬스,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하는 남성들의 커뮤니티도 전형적인 매노스피어에 속한다.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집단을 전부 여성혐오나 인셀(incel)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게 마란츠의 주장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매노스피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들을 뭉뚱그려서 거대한 여성혐오 집단으로 묘사하는 일이 흔하다 보니, 진보적인 정치인들이 함부로 찾아가지 못하는 동네가 되었다는 데 있다. 비속어를 쉽게 사용하며 거친 농담을 때로는 공격적으로 보일 만큼 주고 받는 채널에 찾아갔다가 대화 중에 실수하는 순간, 좌우 양쪽에서 모두 욕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이런 위험이 있는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피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달랐다.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트럼프는 거친 말과 도를 넘는 농담을 해도 평생을 그런 캐릭터로 살아왔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트럼프는 원래 그런 인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한다. 따라서 다른 정치인이라면 경력을 끝낼 만큼 심각한 언행도 트럼프가 하면 무사하다. 그러니 심한 말이 오가는 트위치, 팟캐스트 채널에 출연하는 게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트럼프가 매노스피어를 장악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아무말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매노스피어의 지지를 받게 된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를 이해하는 데는 유사사회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는 개념이 도움이 된다.
패러소셜(Parasocial)
유사사회관계란 실제 사회관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쪽에서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관계를 말한다. 좋아하는 인플루언서를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거다. 일주일에 몇 번씩, 어떤 경우에는 거의 매일 시청하는 유튜버, 심지어 채널의 라이브 방송도 놓치지 않고 챙겨 보는 유튜버의 팬 중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족이나 친구보다 훨씬 많은 경우가 흔하다. 이들에게 인플루언서는 단순한 방송인, 스타가 아니라 일상을 같이 하는 중요한 사람이다. 물론 인플루언서는 특정 팬을 알지 못하지만, 그 팬에게 인플루언서는 매일의 일상에서 함께 하는 존재가 된다. 일방향이니 진정한 사회관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팬의 입장에서는 유사한 사회관계, 즉 유사사회관계다.
마란츠 기자에 따르면 2016, 2020년의 미국 대선이 '소셜미디어 선거'였다면, 2024년의 선거는 '패러소셜미디어 선거'였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디어는 더 이상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수년 동안 꾸준히 많은 팬덤을 형성해 온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 즉 패러소셜미디어였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 특히 민주당의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이제 비로소 소셜미디어를 이해하기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패러소셜미디어의 돌풍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다. "카멀라 해리스도 유명 팟캐스트에 출연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그 위력을 몰랐던 건 아닐 텐데?" 마란츠 기자는 해리스 선거운동본부에서 조 로건 팟캐스트 출연이 불발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듣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고 한다. 선거참모가 "(카멀라 해리스가 팟캐스트에서) 나눌 대화 자체보다도, 거기에 출연했다는 소식이 (주류) 매체를 탈 수 있기 때문에"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싶었다고 했단다.
패러소셜미디어가 CNN 같은 방송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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