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이제 3주도 남지 않았는데 스타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왜 이렇게 조용한 걸까? 그가 직업을 바꾼 것도 아니고, 지금도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들은 왜 그를 인용하지 않는 걸까? 그가 2016년 대선의 예측에 실패해서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인기를 잃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현대 정치 환경에서 개인의 생각과 여론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네이트 실버에 대해 몰랐거나, 오래 잊고 있었던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해 보자. 네이트 실버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건 약 10년 전이다. 당시 실버의 웹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는 뉴욕타임즈를 통해 소개되고 있었다. 2012년에 출간한 그의 책 'Signal and Noise'는 큰 인기를 끌며 그의 스타덤을 키웠을 뿐 아니라, 지루해 보이는 통계학을 섹시하게 만들게 해줬다. 이 책은 2014년 한국에도 '신호와 소음'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어 내 주위의 똑똑한 사람들이 읽고 대화에서 인용하곤 했다.

특히 미국에서 네이트 실버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예는 당시 넷플릭스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서 주인공이 광신적인 기독교 신자들에 반대하며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과학을 믿어. 나는 진화를 믿어. 나는 네이트 실버를 믿고, 닐 디그래시 타이슨(Neil deGrasse Tyson,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을 믿고, 가끔은 재수 없을 때도 있지만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종교적 극단주의를 공격했다)도 믿어. 나는 백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 당하고 있는데, 신이 토니상 수상자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믿지 않아. 10억의 인도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간다고 믿지도 않아."

(이미지 출처: Vanity Fair, Amazon, 교보문고)

미국 대통령 선거 때 쏟아지는 여론 조사를 분석하는 통계학자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나 닐 디그래스 타이슨 같은 사람들과 같은 유명세를 누린다는 게 신기했지만, 적어도 10년 전 분위기는 그랬다. 무엇보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2012년 대선에서 50개 주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한 건 그를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어 줬고, 여론조사는 단순히 인용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각 조사의 과거 정확도 등을 고려해 적절하게 무게를 주어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통계 쪽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을 대중이 알게 되는 데 네이트 실버의 역할이 컸다.

그랬던 네이트 실버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국 대선이다. 뒤늦게 얻은 교훈이지만, '트럼프 현상'은 과거의 정치 풍토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고, 일반적인 여론 조사에 그 실체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정확도를 기준으로 개별 여론조사에 무게를 부여해 온 실버가 방법론을 바꿀 이유가 없었고, 그는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예측했다.

워낙 충격적인 일이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개표가 진행되면서 트럼프가 클린턴과의 격차를 벌리며 앞서가고 있었지만, 네이트 실버의 파이브서티에이트 웹사이트에서는 클린턴의 승리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었다. 마치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트럼프는 승리했고, 네이트의 신화는 4년 만에 끝났다.

그 후에 네이트 실버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졌을 뿐, 그는 파이브서티에이트 팟캐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출연하고 있었고, 그가 만든 웹사이트는 ESPN을 거쳐, 2018년에는 ABC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실버는 2023년에 ABC를 떠났지만 (참고로, 그는 현재 Silver Bulletin이라는 서브스택을 운영 중이다) 네이트 실버가 미국 대중에게 잊혀지기 시작한 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고, 그 원인도 2016년의 예측 실패가 전부는 아니다.

ABC는 이름을 FiveThirtyEight에서 538로 단순화했다.

사람들이 그의 예측 실패에 화가 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 직후에 그를 비판하는 글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많이 나왔다. 하지만 2016년 선거를 잘못 예측한 건 네이트 실버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여론 조사에 의거한 예측이 틀렸고, 오히려 실버는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29%)을 다른 조사기관들(2~15%)보다 높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 특히 2012년 이후 실버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데는 이유가 있다.

이를 처음 자세하게 설명한 건 2019년에 나온 뉴리퍼블릭의 기사, 'The Fall of Nate Silver (네이트 실버의 추락)'이었다. "그가 변한 건가, 아니면 우리가 변한 건가?"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2000년대 중반, 여론조사를 분석, 평가하면서 미국인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실버는 여론조사를 무시하는 공화당 사람들과 전문 지식도, 특별한 근거도 없으면서 방송에 나와서 떠드는 소위 "전문가들(pundits)"과 블로거들을 숫자에 기반한 논리로 비판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네이트 실버가 유독 민주당 지지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우연도 한몫했다. 흑인에, 이름도 이상한 버락 오바마가 2008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유권자들은 그의 당선 가능성을 의심했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들을 잘 들여다보고 오바마가 승리할 것 같다며 민주당 지지자들을 안심시킨 사람이 실버였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2012년 오바마의 재선 때는 50개 주의 결과를 모두 맞춰서 네이트 실버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팬들은 네이트 실버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를 간과했다. 사람들은 그저 그가 중도-진보의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고, 조용히 숫자로만 말하는 전문가(wonk) 정도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가령 버니 샌더스가 많은 기부금을 받았다는 것에 민주당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기부금 액수보다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지지율이 중요하다고 말한 게 그렇다.

실제로 네이트 실버가 "조용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건 일찍부터 드러났다. 그는 2012년 선거를 앞두고 MSNBC의 인기 아침 뉴스쇼 '모닝 조'의 진행자 조 스카보로(Joe Scarborough)와 공개적으로 서로를 조롱하며 싸웠다. 스카보로는 실버가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이 73.6%라고 한 것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양쪽 진영 모두 승리 가능성을 50.1%로 생각하는 박빙의 승부라고 주장했다. 한쪽이 크게 앞서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진보 성향의 스카보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승리를 낙관하고 투표소에 가지 않을 것을 염려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네이트 실버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의) 평균을 내고, 선거인단의 숫자를 세어서 누가 270명을 확보하는지 보면 됩니다. 간단한 팩트의 문제인데, 조(스카보로)가 수학 실력이 달리니 안됐네요"라고 반격했다. 그해 선거에서 오바마는 332 대 206으로 공화당의 롬니 후보의 도전을 가뿐하게 물리쳤다.

2012년 경의 조 스카보로와 네이트 실버 (이미지 출처: Salon.com, Statistics Views)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네이트 실버는 숫자와 팩트만을 근거로 얘기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를 살펴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앞서 쓴 것처럼 실버는 (버니 샌더스가 받은) "기부금의 액수보다 여론조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2018년에 쓴 트윗에서는 "기부금 모금액이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버에 실망한 결정적인 계기는 그가 자기가 그토록 비판하던 "전문 지식이 없이 떠드는 전문가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다. 뉴리퍼블릭이 예로 든 그의 주장 중에는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기부금을 내는 부자의 자녀들을 얼마든지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것도 있었고, 트럼프가 IS 테러리스트를 사살한 후 그가 "개처럼 죽었다"며 국가수반답지 않게 지독한 말을 쏟아낸 것을 옹호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은 대통령이 그런 말도 못 하게 하느냐"고 반박했던 것도 있다.

뉴리퍼블릭이 2019년 기사에서 내린 결론은 네이트 실버는 미국 정치와 정책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부족한 사람인데 그런 얘기를 소셜미디어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실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 '신호와 소음'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치 프로세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화가 난 결과"라고 했다. 미국 의회는 2006년에 온라인 포커 게임을 금지했는데, 도박을 좋아하고, 온라인 포커 게임으로 40만 달러를 딴 실버는 이런 의회의 결정에 화가 났다는 거다.

파이브서티에이트 팟캐스트를 들어 본 사람이라면 진행자들이 네이트 실버가 그날 방송에 참여하지 못한다면서 그가 "지금 라스베이거스에 있다"는 말을 꽤 자주 하는 것을 알 거다. 통계학자인 그에게 가장 큰 관심은 포커 게임과 스포츠, 특히 숫자가 많이 등장하는 야구다. (스포츠 베팅이 그의 관심사인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프로페셔널 포커 플레이어로 활동했고, 그가 올해 새로 내놓은 책도 포커를 통해 세상을 읽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포커 게임을 하는 네이트 실버 (이미지 출처: Card Player)

네이트 실버가 팟캐스트에 나와 선거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는 여론 조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한 조롱 섞인 말이 자주 등장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게 느껴진다.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한 때 최고의 정치 여론조사 분석을 했다는 건 아이러니일까? 여기에 관해 뉴리퍼블릭의 기사는 통찰력 있는 설명을 한다. 실버에게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성적인(rational) 것이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국민이 나서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을 뿐 아니라,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딴지를 건다는 것. (기부금 액수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버니 샌더스의 기부금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건 아마도 이런 그의 정치관 때문일지 모른다.)


네이트 실버는 4년에 한 번씩 사람들의 미움을 산다. 그가 평소 정치와 관련한 발언을 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대선이 있는 해에 그의 말이 주목을 받기 때문일 거다. 올해도 다르지 않아서 지난 9월, 그가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59.6%라고 하자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그가 공화당에게 매수된 거 같다는—근거 없는—말도 나돌았다. 이번에는 복스(Vox)가 기사를 썼다. "What happened to Nate Silver (네이트 실버에게 무슨 일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위에서 이야기한 2019년 뉴리퍼블릭 기사의 업데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사에는 2019년 기사에는 나오지 않은 중요한 사건이 등장한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기사에 따르면 네이트 실버가 진보적인 사람들의 미움을 산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그가 했던 발언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숫자에 기반해 상황을 분석하고 "빠르게 백신을 보급한 후에 셧다운을 끝내고 빨리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의 상황에서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의료전문가들이 병원이 몰려들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이트 실버는 의료 전문가들이 손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비난했고, 이는 트럼프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 진영의 주장과 일치했다. 게다가 그는 당시에는 근거 없는 소리로 여겨졌던 '코로나19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기원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여기에 대해서는 오터레터의 '실험실을 나온 바이러스'에서 이야기했다)을 해서 진보 세력의 분노를 샀다.

팬데믹 때의 뉴욕시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물론 진보 쪽에서도 셧다운 중지와 일상 복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보수 쪽의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기의 정치적 성향을 진보과 리버태리언 사이라고 말하는) 실버가 의견을 밝히는 방식은 민주당과 진보 쪽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때가 많다. 2024년 대선과 관련해서 실버는 지난해부터 바이든의 나이를 문제 삼아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 트럼프 2기를 각오해야 한다면서 "바이든이 XX 걸어 다니는 송장인 건 너무나 명백한데도 대통령을 4년 더 할 수 있다는 건 망상(It’s just the most obvious thing in the world, this guy’s a fucking walking corpse. To say he could be president for another four years was delusional)”이라고 했다. 이게 그가 말하는 방식이다.

그의 경고는 맞았고, 바이든이 재선되어야 한다고 믿던 민주당 지지자들도 트럼프와의 토론 참패 이후 생각을 바꿨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네이트 실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아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나온 말처럼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갈수록 (그가 blue MAGA라고 부르는) 진보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실버는 진보 세력의 비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그들과 갈등을 빚는 게 재미있다"고 말한다. 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때 진보의 사랑을 받았던 J.D. 밴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네이트 실버도 트럼프 쪽으로 돌아선 걸까? 그의 말에서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읽히는 걸로 보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새 책에서 실버는 세상을 강(The River)과 마을(The Village)로 나눈다. 전자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사기죄로 체포된 FTX 샘 뱅크먼 프리드, 오픈AI의 샘 얼트먼 같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후자는 정치와 미디어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강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모험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모험을 회피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 봐야 알겠지만, 그가 자기를 어느 쪽으로 분류하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네이트 실버와 그의 새 책 (이미지 출처: WB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