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28개조 평화 구상안을 전달한 시점은 젤렌스키에게 아주 불리했다. 2019년에 취임한 젤렌스키는 현재 정치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를 아주 힘들게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흔들지는 않았다. 전시에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가 미국과 EU를 오가며 무기와 전쟁을 수행할 자금을 끌어오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타국 정부와 국민의 마음을 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그걸 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의 헌법에 따르면 전쟁 중에는 대통령 선거가 유보된다.
지금은 다르다. 젤렌스키 정권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상황이다. 세상에 부패하지 않은 정부를 찾기 힘들고, 특히 오랜 소비에트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동유럽에서 깨끗한 정권은 더욱 드물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정치 신인이었던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겪고 있던 부패에 대한 피로감이 있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경제 엘리트와 올리가르히(재벌)의 영향력이 강했고, 공공부문과 사법기관에는 부패가 만연했고, 우크라이나 사회에는 고질적인 뇌물 문화가 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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