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맨 ⛄️ ②
• 댓글 남기기미네소타(Minnesota)주의 연방 상원의원인 에이미 클로버샤(Amy Klobuchar)는 "미네소타주에서는 엄마가 아이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나중에 부통령도 될 수 있단다'라고 말해 준다"는 농담을 종종 한다. 왜 하필 부통령일까? 미네소타주에서는 한 번도 대통령을 배출한 적이 없다. 물론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은 대부분 동부 주에서 배출했기 때문에 유별난 일은 아니다. 특이한 건 1965년 이후로 미네소타주에서 부통령은 두 명이나 나왔다는 사실이다. 만약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세 번째가 된다. 미네소타는 어떤 주일까?
미국인들이 미국의 "중심(heartland)"이라고 부르는 중서부(Midwest)에서도 한 가운데 위치한 주가 미네소타다. 미국을 건국한 사람들이 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많이 사는 곳이 "중심"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중서부는 독일계 이민자들의 후손이 많이 산다. (영국계의 후손은 남북전쟁 때 남부 주, 그러니까 현재 남동부 지역에 많다). 미네소타주도 다르지 않아서 독일계가 가장 많지만,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좀 특이하게도 노르웨이/스칸디나비아계 이민자들이다.
사족이지만, 노르웨이계는 미네소타주의 바로 서쪽에 있는 노스다코타(North Dakota, ND)에도 많이 산다. 영화 '파고(Fargo)'나 같은 제목의 드라마 시리즈에서 자주 듣게 되는 특이한 억양("Yah," “Aw Jeez")의 기원도 노르웨이어를 비롯한 북유럽에 있다고 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중서부를 "미국의 중심," 혹은 "주류(mainstream) 미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기름진 농토를 기반으로 북유럽 특유의 자급자족(self-sufficiency) 문화가 이어졌고, 종교적으로는 북유럽의 보수적인—그러나 합리적인—개신교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다른 대륙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많은 해안 지역(서부의 아시아계, 동부의 유대계, 이탈리아계)과 달리 인종적으로 북유럽 백인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인들은 "중서부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금발에 푸른 눈, 큰 키의 백인들을 떠올린다. (남자들은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러 보면 소변기의 높이가 해안가 주보다 확연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순수한 백인"은 더 이상 미국을 대표하지 않지만, 나이 든 미국인들이 중서부를 이야기할 때 그런 느낌이 살짝 묻어나는 게 사실이다. 이제 인종적으로 그렇게 구분하지는 못해도 문화적으로 여전히 향수를 느끼는 백인들이 많은데, 중서부 중에서도 미네소타주와 바로 아래에 있는 아이오와주가 그런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민주당 선거운동본부에서 보기에 팀 월즈가 가진 최대의 매력이 있다면 바로 이런 중서부의 덕목들—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인들이 중서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을 대변하는 것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한국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것처럼 학교에서 20년 넘게 사회과목(social studies) 등을 가르치며 풋볼 코치를 했고, 같은 기간 동안 내셔널 가드(National Guard)로 비상근 군복무까지 했으며, 미네소타 사람답게 사냥을 즐기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게다가 그가 태어난 곳은 미네소타주 남서쪽에 있는 (역시 중서부에 속하는) 네브라스카주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중서부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팀 월즈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건 2004년, 당시 대선 후보 존 케리(John Kerry)를 위한 선거운동에 참여했을 때다. 그해 오바마가 전당대회에서 지지연설을 하면서 4년 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초석을 놓았다고 하지만, 2004년은 월즈에게도 중요한 해였다. 그때 쌓은 경험으로 월즈는 2년 후인 2006년에 미네소타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직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미네소타 주지사직에 도전해 승리했다.
진보적 주지사
민주당에게 월즈라는 인물이 반가운 이유는, 그렇게 따뜻하고 친근한 중서부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 두 번의 주지사 임기 동안 서민과 노동조합에 유리한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미네소타주는 민주당 우세 지역이기는 하지만 민주당 우세 주 중에서는 가장 보수적인("reddest among the blue states") 곳으로 통하고, 당연히 트럼프 지지자들도 많은 주다.
2020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목을 짓눌러 살해했던 끔찍한 사건이 바로 미네소타주의 최대 도시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났고, 뒤이어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그 시점에 미네소타 주지사가 팀 월즈였다.
팀 월즈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직후 경찰의 폭력을 비판했고, 경찰 조직을 바꾸라는 여론을 받아들여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말이 많았던) 학교 무상급식을 단행했고, 세금 제도 개혁과 총기 규제 강화, 저소득 가정 학생에게 대학 등록금 면제, 성소수자 보호, 여성의 임신 중지권 법제화 등 경제적, 사회적 진보 정책을 통과시켰다. 그야말로 "따뜻한 진보"의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인 셈이다.
민주당은 2022년 미네소타주 상하원을 모두 가져왔다. 주지사까지 민주당이니 미네소타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작년에 나온 NBC 뉴스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서는 미네소타주를 권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서 진보적인 정책을 통과시키는 하나의 모델, 혹은 "실험실(laboratory)"로 생각한다. 월즈 주지사가 통과시킨 진보적인 정책들이 단순히 민주당의 성공이 아니라, 유권자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 성소수자의 권리나 여성의 결정권을 제한하는 사회적 보수 정책에만 매달리는 공화당의 정치인들과 확실한 대비가 된다는 거다.
진보적인 캘리포니아주에서 왔지만, 검사 출신으로 중도/온건 진보 성향의 카멀라 해리스에게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같은 당내 진보세력의 협조가 중요했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위해서라도 팀 월즈처럼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해온 정치인을 데려오는 게 유리하다.
카멀라 해리스가 팀 월즈를 선택하게 된 과정을 들려주는 뉴욕타임즈의 기사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해리스가 최종 후보 세 명(팀 월즈, 조쉬 샤피로, 마크 켈리) 중 누구를 선택해도 이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샤피로나 켈리를 선택한다고 중요한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나 애리조나를 확실하게 가져올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해리스는 대선 승리를 위한 계산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후보를 고를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러닝메이트 후보 1순위로 꼽았던 조쉬 샤피로가 선택받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를 봐도 '샤피로 카드'가 가진 문제, 즉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적극적으로—보기에 따라서는 지나칠 정도로—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입장도 궁극적으로 카멀라 해리스에게 큰 단점으로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샤피로가 후보가 될 경우 친팔레스타인 단체들이 민주당 전당대회에 찾아와 시위를 벌일 것을 걱정했지만 해리스는 자기가 가자 문제를 충분히 잘 다루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고 한다.
카멀라 해리스는 사람에 관한 한 자기의 '감(gut feeling)'을 믿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선거 결과에 미칠 영향에 큰 차이가 없는 세 명 중에서 골라야 하게 되자, 결국 해리스의 마음을 산 것은 팀 월즈의 성격이었다. 샤피로는 해리스와 보좌관들에게 자기가 부통령이 될 경우 어떤 역할과 책임이 따르는지 꼼꼼하게 물어 본 반면, 월즈는 해리스에게 내놓고 "내가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되면 선택하지 마시라"고 말했단다. 월즈의 개방적이고 (어쩌면 풋볼 코치 특유의)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태도는 부통령직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샤피로의 태도와 대비되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유머 감각도 비슷해서 금방 친해졌다는 얘기도 있다.
조쉬 샤피로는 기회가 되면 대통령직에 도전하려는 야망이 있다고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따라서 부통령이 될 경우 자기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월즈는 대통령에 도전할 마음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해리스가 보기에는 월즈가 팀 플레이어로서 충실한 2인자가 될 것으로 보였다.
트럼프 진영은 카멀라 해리스가 팀 월즈를 선택한 것을 반기고 있다.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도 성향의 유대계 주지사인 조쉬 샤피로를 공격하는 것보다, 민주당 우세의 미네소타에서 진보적인 정치를 해온 월즈를 공격하기가 훨씬 쉽다는 판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해리스는 이 점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해리스를 오래전부터 "급진 좌파"로 몰아왔기 때문에 그걸 믿는 유권자들이 있다면 이미 현재 지지율에 전부 반영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카멀라 해리스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는 건 아니다. 정치 전략가이자,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인 리엄 도노번(Liam Donovan)은 팀 월즈가 지금은 좋은 후보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해리스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근소한 표차로 지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노번의 생각처럼 경합 주의 주지사를 골랐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지, 팀 월즈라는 후보에 대한 반감은 아니다. 공화당원인지, 민주당원인지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 중도 성향인 조 맨친(Joe Manchin) 상원의원과 급진 좌파로 분류되곤 하는 AOC가 모두 팀 월즈로 결정된 것을 반기고 지지했다는 사실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준다.
후보직을 사퇴한 바이든을 대신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는 2주 만에 러닝메이트를 선정해야 했고, 그렇게 선택된 팀 월즈와 정확히 석 달 동안 대선 레이스를 해야 한다. 앞의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런 스케줄은 전국 유권자들에게 자기를 알려야 하는 후보들에게는 무척 부담이 된다. 하지만 해리스의 경우 이게 반드시 불리한 건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해리스는 당내 경선을 거치지 않았다. 당내 경선은 무명의 후보가 자기를 알리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경선 중에 경쟁 후보에게서 받은 비판과 지적은 나중에 본선에서 상대 당 후보가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게다가 당원을 대상으로 어필하는 것과 일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일반 유권자들이 받아들일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태도를, 공화당 후보들은 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이때 한 말들 역시 본선에서 상대 당 후보가 공격에 사용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짐이 된다. 하지만 경선을 건너뛴 해리스는 이를 피할 수 있었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은 또한 뜨거운 열기를 이어가기에 유리하다. 아무리 인기 있는 후보라고 해도 일 년 넘게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다 보면 식상해지기 쉽고, 지지자들의 열정도 식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해리스는 후보가 된 지 몇 주, 월즈는 며칠밖에 되지 않아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과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바이든이 일 년 전에 재선을 포기했다면, 그래서 해리스가 쟁쟁한 당내 경쟁자들과 경선을 치렀다면 지금처럼 하나로 뭉친 민주당 당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진보 진영 일부에서는 바이든이 빨리 물러났어야 했다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만약 카멀라 해리스가 11월에 승리한다면 사람들은 그 일등 공신이 바이든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가 막판까지 지지자들의 마음을 졸이는 바람에 때문에 쌓였던 불안감이 카멀라 해리스의 등장과 함께 뜨거운 지지 열기로 변해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열기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야 하는 카멀라 해리스가 "트럼프 쪽 사람들은 이상하다(weird)"라는 말로 바이럴을 일으킨 팀 월즈를 주목한 건, 대중 친화력에서 해리스보다 더 뛰어난 월즈가 해리스의 당선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전과 같은 대선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예전과 같았다면 해리스가 후보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은 모든 게 다르다.
'미네소타 맨 ⛄️ ③'으로 이어집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