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이 나온 2003년은 가장 나이가 많은 밀레니얼이 22살이 되던 해. 영화 속 주인공이 얼추 그 나이였다. 삶의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꼼짝없이 갇혀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고 느꼈던 세대가 밀레니얼만은 아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1971년생 X세대다.) 이들은 풍요로운 선택지를 가졌지만, 동시에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경제 위기와 불황, 높은 청년 실업률, 치솟은 집값으로 내 집 마련이 힘들어지는 상황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런 어려움은 대중문화에서 밀레니얼이 성인이 되는 과정을 대표하는 하나의 주제가 되었다.

가령, 일 년 후인 2004년에 나온 잭 브래프(Zach Braff) 감독, 주연의 영화 '가든 스테이트(Garden State)'가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만큼의 호평은 받지 못했어도–인기를 끌었고, '퍼니 하 하(Funny Ha Ha)'와 '프랜시스 하(Frances Ha),' '러브, 비하인드(Celeste and Jesse Forever)' 같은 영화들이 뒤를 이었다. 이 영화들은 모두 기운 없고 성장이 멈춘 듯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멈블코어(mumblecore) 장르다.

멈블코어(Mumblecore)는 독립 영화의 하위 장르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한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 양상에 초점을 두어 인물들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게 특징이다. 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기를 보여주는 내츄럴리즘이 중시된다. 작품들은 주로 저예산으로 많이 제작된다.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의 2002년 영화 '퍼니 하 하'가 최초의 멈블코어 장르 영화로 평가된다. 앤드루 부잘스키 이외 주요 인물로는 린 셸턴, 마크 듀플래스 & 제이 듀플래스 형제, 그레타 거윅, 에런 캐츠, 조이 스완버그, 라이 루소영 등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바비(Barbie)'를 만든 그레타 거윅이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프랜시스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멈블코어 영화의 좋은 예. 이 클립이 (영화의 분위기를 다르게 표현한) 예고편보다 이 영화의 느낌을 더 잘 표현한다. 이 영화의 표현법을 잘 설명한 이 영상도 추천.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이 그런 감정을 잘 전달하는 영화다. 만약 이 영화가 5년 뒤에 만들어졌다면 주인공 샬럿은 아이폰을 꺼내 들고 스크롤링하고 있었을 것이고, 지금 만들어졌다면 폰에 깔린 앱을 뒤적거리거나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포스팅하면서 실제로는 우울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이 밀레니얼 세대에 일상화되기 직전에 나온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은 이들의 불안을 증폭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도구가 없이도 이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걸 샬럿이 들었다면 같잖다는 표정으로 비웃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 영화를 보는 젊은 관객이라면, 영화 속 나이 든 배우인 밥 또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나 20대 중반의 위기(quarter-life crisis) 모두 정상적인 과정이다. 정말로 운이 좋아서 20대 중반에 그 위기를 맞아 극복할 수 있으면 중년의 위기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1999년, 제프리 유제니디스(Jeffrey Eugenides)의 소설을 영화화한 'The Virgin Suicides(처녀 자살 소동)'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커스틴 던스트가 주연한 이 영화는 나온 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작품성을 인정 받았고, 시간이 지날 수록 존재감이 커진다. 그의 두 번째 영화인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은 부모가 모두 감독(소피아의 어머니 엘리너 코폴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탄생 신화를 갖고 있다. 일 때문에 도쿄에 머물며 (샬럿처럼) 기운 없이 일본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다.

샬럿을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가운데)은 외모도 소피아 코폴라와 무척 닮았다. (이미지 출처: X)

물론 아시아의 도시에 머물며 소외감을 느끼는 동시에 영감을 받은 서양인은 코폴라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다. 이 영화가 아시아 문화를 경험하는 서양 사람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일본 문화가 아니라, 도쿄에 와서도 호텔 방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미국인들이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이 도쿄에 대해 가진 애정은 영화에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자동차 도로와 도시의 스카이라인, 대형 광고판, 네온사인을 훑는 카메라를 보면 코폴라는 도쿄를 보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런 도시가 있지'하고 감탄하는 듯하다.

Watching Tokyo Through the Eyes of Outsiders
Tokyo-tourist films act almost as brochures, and their narrative beats are as predictable as those in a romantic comedy.
주제에서는 좀 벗어나지만, 뉴요커의 모에코 후지이(Moeko Fujii)가 쓴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바라본 도쿄"라는 글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관련이 있다. 후지이는 외국인이 도쿄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자기가 떠나온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는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인 동시에, 이 영화가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생각을 떠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특히 남자 주인공 밥이 샬럿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마지막 장면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다. 두 배우 사이의 키스는 즉흥 연기였고, 밥이 샬럿에게 했던 말은 두 배우와 감독만 알고 있고,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 사운드 장비를 사용해 희미하게 들리는 밥의 말소리를 구분해 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냥 풀리지 않는 퍼즐로 남겨두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 속 대사보다 더 궁금한 건 밥과 샬럿의 관계다. 완전히 플라토닉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정확히 로맨틱한 관계도 아니다. 코폴라 감독은 이를 두고 "친구 관계 이상이지만, 그렇다고 연애(love affair)라고 하기는 힘든 그런 관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관객은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옷을 급하게 벗기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멋진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밥과 샬럿은 상대방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질문을 해서 답을 얻지는 못해도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줬다는 데서 오는 따스한 느낌 말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앞서 말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샬럿이 밥에게 자기는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샬럿은 침대에 함께 누워있는 밥에게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자기가 쓴 글이 싫었고, 사진작가가 되려고 한 적도 있지만 너무 뻔한 사진만 찍었다면서 "여자애들이 다들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시기를 지나죠. 말 사진을 찍고, 자기 발을 찍는 한심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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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샬럿에게 글을 계속 쓰라고 한다. 이건 분명 좋은 충고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이 편안함을 주는 이유는 샬럿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임을 관객들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샬럿이 이미 풍족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똑똑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이 영화는 그런 샬럿의 세계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샬럿의 자기 인식(self-awareness),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망이나 활력이 없는 태도 역시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문화적 특징으로 흔히 언급되는 것이다.

밥의 옆에서 잠이 들었던 샬럿은 밥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서로 반대되는 사람과 살아야 하는 거죠?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살 수는 없나요?" (둘 다 성격이 다른 배우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옮긴이) 밥의 대답은 이랬다. "그건 너무 쉬우니까." 그의 대답은 철학적인 답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유는 몰라도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 그런 대목이 종종 나온다. 새털처럼 가볍지만, 종이에 베인 것처럼 아픈. 코폴라 감독이 만든 뛰어난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이렇게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남기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각 관객의 심리를 보여주는 로르샤흐 테스트다. 관객이 자기 삶에 만족하거나, 슬프거나, 사랑에 빠졌거나, 가슴앓이를 하고 있거나, 호기심이 가득하거나, 지쳐있거나 상관없이 모두 영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관객이 원한다면 말이다.

(이미지 출처: Fort Mason Center)

지난여름, 위의 대사가 들어간 17초짜리 영상이 틱톡에서 인기를 끌면서 9만 번 이상 재생되었다.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영상들은 틱톡에서만 3억 7,95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이 영화를 검색하면–보통 새벽 2시쯤 그런 일을 하게 되지만–밥과 샬럿이 바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머리를 기대거나, 도시의 인파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영화 속 스틸컷을 잔뜩 보게 될 거다. 그럼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보라. 눈물을 쏟는 이모지, 가슴앓이 이모지가 줄을 잇고,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면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심정이 뭔지 정확히 안다는 댓글들을 보게 된다.

그게 바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이 아름다운 영화가 레거시를 남기는 데 성공한 이유다. 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묘사함으로써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독백을 끌어내고, 그들을 연결해 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